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2020년 초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로 전세계에서 6백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미국에서 발생한 사망자만 1백만 명에 당할 정도로 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코로나19가 미국과 전세계 각국에 막대한 경제적 타격을 안겼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문화적 갈등도 초래하였는데, 특히 아시아계 미국인에 대한 인종 차별이 급증하면서 각종 증오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 사태 초기부터 미국 언론들은 코로나19의 발원지가 중국임을 강조하며 마치 아시아인에게 코로나19 사태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호도하였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등 주요 정치인 역시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르며 아시아계에 대한 미국 내 혐오를 부추겼다. 이로 인해 미국 각지에서 아시아인 증오 범죄가 기승을 부리게 되었는데, 미국의 경우 2021년 아시아인 증오 범죄가 전년 대비 339%나 증가하였고 최근까지도 미국 도시에서 아시아인이 공격당한 사건에 대한 보도가 심심치 않게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19 이후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증오 범죄가 급증하였지만,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19세기부터 미국 내 아시아인은 "기괴한 음식을 먹는 사람들", "병균 덩어리"라는 원색적 비난을 들어왔다. 코로나19가 이를 훨씬 악화시켰을 뿐이다.

아시아인의 미국 이주와 자라난 편견
 아시아인이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 건 19세기 초 영국이 대서양 노예무역을 금지하면서였다. "쿨리(Coolie)"라 불린 중국인 저숙련 노동자들이 기존 아프리카 출신 노예를 대체할 노동력으로 관심을 받으면서 미주 각지의 플랜테이션에서 고용되어 일하기 시작하였으며, 1850년대 "골드 러쉬" 시기 미국 서부 지역의 금광을 개발하고 철도를 부설하기 위해 대규모 노동력이 필요해지자 미국으로의 이주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이주 초기엔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금을 받으면서도 성실한 자세로 일을 하여 미국인의 환영을 받았지만, 미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는 중국인의 수가 점차 증가하자 이들을 바라보는 미국인의 시선도 부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1860년대에 들어서면 미국 서부에서 중국인 공동체에 대한 인종차별적 시각이 만연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다양한 편견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우선 중국인이 미국인보다 저렴한 임금을 받으면서 기존 백인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경제적인 이유가 당시 크게 작용하였다. 여기에 아편 전쟁에서의 패배 이후 중국 문명이 후진적이고 부패하였다는 인식이 크게 확산하면서 중국인의 문화가 유럽 문화의 영향을 받은 미국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주장도 나오게 되었다. 이는 우생학적 사고로도 이어져서, 중국인처럼 "열등한 인종"을 받아들이면 이들의 유전인자와 이들이 가져올 질병이 미국 "백인" 국민의 우수성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차별적인 시선까지 더해지며 중국인을 더욱 철저하게 배척하였다.
 미국 서부 지역에서 이와 같은 인종차별적 불만이 퍼져나가자, 미국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일련의 아시아인 차별 법안을 통과시키며 이와 같은 차별을 제도화하였다. 1862년 캘리포니아에서 일하는 아시아인에게 추가 세금을 부과하는 일명 "반쿨리법(Anti-Coolie Act)"이 제정되었고, 1870년 통과된 귀화법은 노예였던 흑인이 미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했지만, 아시아인은 국적 취득을 여전히 불허하였다. 1875년에는 중국인 노동자뿐만 아니라 "매춘을 한다"는 이유로 중국인 여성의 입국도 금지한 페이지(Page)법이 통과되었으며, 1882년에 이르면 "중국인 배제법"이 통과되어 중국인의 입국을 전면 불허하였다.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가 드러났던 분야가 이민 정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19세기 후반 미국 서부의 주요 도시인 샌프란시스코는 항구 도시란 특성상 타국 선박의 왕래로 인해 천연두, 선(膳)페스트를 비롯한 전염병이 간헐적으로 발생하였는데, 이때마다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이 늘 희생양이 되었다. 1875년 천연두가 발병했을 때는 시청 공무원들이 차이나타운의 "불결한 주거환경"과 중국인이 내뿜는 "더럽고 구역질 나는 증기"가 발병 원인이라고 맹비난을 퍼부었으며,     1900년 페스트가 창궐할 땐 샌프란시스코 시청이 차이나타운에 거주하는 1만 4천 명의 중국인을 격리하고 심지어 이들을 강제수용소로 이주시키는 방안까지 고려할 정도로, 중국계 미국인을 향한 노골적인 인종 차별과 적대 행위는 개인부터 시, 주, 연방정부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에 만연해있었다. 이처럼 단순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이국적이거나 역겨운 것으로 다루는 타자화 방식은, 코로나19의 발병지로 중국 우한의 재래시장이 지목되면서 다시 한번 아시아 음식 문화와 아시아인 전반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인종차별적으로 중국인을 묘사한 미국의 세제 광고
인종차별적으로 중국인을 묘사한 미국의 세제 광고

 

"영원한 이방인"인 아시아계 미국인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중국인 배제법은 철폐되었지만, 그 근간이 된 아시아인 혐오는 꾸준히 이어지며 미국인이 아시아인을 바라보는 방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태평양전쟁 중에는 미국 시민권을 가진 일본계 미국인들은 문화적, 인종적 이유로 미국에 충성하지 않고 일본제국에 협조할 것이라는 미국 정부와 시민의 편견 때문에 강제수용소로 보내져야 했다. 그리고 냉전 시대가 들어선 뒤에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을 거치며 공산권 아시아 국가에 대한 적대적 태도가 증가하고, 여기에 1970년대 이후 일본, 한국, 중국 등 동북아시아 국가가 연이어 고속 경제성장을 이루자 이들 국가가 경제적 위협으로 보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아시아 국가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여전히 "타자"로 인식되는 아시아계 미국인에게 그대로 반영되며 꾸준히 아시아계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다. 아시아계 미국인은 근면 성실함과 높은 교육열 때문에, 미국 사회에서 "모범적 소수자(model minority)"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역시 아시아인을 백인들이 생각하는 틀 안에 끼워 넣는 또 다른 차별일 뿐이며,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자 이 얇은 포장도 벗겨져 다시 한번 아시아계 미국인이 폭력적인 차별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현재 만연하는 아시아계 증오 범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역사적, 구조적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미국 사회 전반의 이해와 노력이 필요하다.

권의석 교수(원광대 HK+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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