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성인 남녀 300명을 대상으로 심리학 실험을 진행했다. 우선 사람들에게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 즉 '과거', '현재', '미래' 중 어떤 시간대에 가치를 두고 사는지를 측정했다. 그런 다음,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사람들을 선별하는 작업을 거쳤다. 선별된 사람들은 조금 특별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데, 그들 중 한 집단의 사람들은 '현재'의 시점에 유달리 큰 가치를 두고 있었고 또 다른 집단의 사람들은 '미래'가 그 어떤 시점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다른 두 집단의 실험참가자들이 '시각 자극 처리', 즉 사물을 보는 스타일도 다를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실험을 위해 두 집단의 실험참가자들에게 같은 사진을 보여줬다.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다. '현재'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사진을 볼 때 주변부보다는 중심을 보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다. 배경보다는 피사체에 먼저 집중한 것이다. 반면에 '미래'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피사체에 집중하기보다 사진의 전체적인 배경을 보려는 경향이 뚜렷했다. 시간에 관한 가치관의 차이가 눈에 보이는 대상을 인식하는 방식의 차이로까지 이어진 흥미로운 결과다.
 그런데 실험 자체와는 별개로, 실험을 진행하는 동안 나는 뜻밖의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우선 실험 전부터 두 집단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미래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실험을 시작하기로 한 약속된 시간보다   10분에서 15분 전에 모두 실험실에 도착해 실험을 대기했고, 단 한 명도 결석하거나 지각하는 참가자가 없었다. 반면에 현재를 중시하는 참가자들 중에서는 실험실에 미리 도착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실험이 시작되기  5분 전쯤에 연구자가 전화를 걸자 '지금 가는 중'이라고 답하거나 '실험실 위치가 어디냐'고 되묻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연구자의 연락을 받고서야 생각이 났다고 하는 참가자도 있었고, 뒤늦게 다른 날짜로 실험일을 바꿔줄 수 있냐고 요청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실험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보이는 이런 결과를 미루어 미래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현재에만 몰두하는 사람들보다 더 괜찮은 사람들, 우수한 사람들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약속을 잘 지키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실험이 끝난 뒤 두 집단의 참가자들에게 실험에 대해 디브리핑하며 소감을 묻는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두 그룹의 사람들에게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미래 지향형 참가자들, 즉 미래에 가치를 두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응시한 실험의 결과를 무척 궁금해하며 살짝 초조해하는 모습을 내비쳤다. 이들에게는 과제를 얼마나 완벽하게 수행했는지가 중요했던 것이다. 내 점수가 얼마나 높은지,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서 잘 한 것인지가 궁금하기도 했고, 실험에 자신의 능력을 측정했다는 사실에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은 듯 보였다. 하지만 현재 지향형 참가자들, 즉 현재에 가치를 두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달랐다. 과제가 너무 재미있었다고 입을 모은 것은 물론이고 다음번에 비슷한 실험을 하게 되면 다시 불러달라며 들뜨고 밝은 표정을 지었다. 실험 결과가 궁금하다기보다 실험 자체를 즐긴 듯한 모습이었다.
 과연 두 집단의 사람들 중 어떤 집단이 더 나은 마음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둘 중 한쪽의 사람들을 더 나은 인간형, 우수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혹은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기는 한 걸까? 지금에 만족할 줄 아는 마음과 좀 더 완벽해지고 싶은 마음 중 어느 것이 더 나은 마음, 더 괜찮은 마음이라고 단정 짓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럴만한 근거도 없거니와 마음은 우월하다거나 열등하다는 식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두 집단은 그들 나름의 마음을 서로 다른 모습으로 드러냈을 뿐, 우월하거나 열등한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리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혹은 심리학에 관심이 많다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거나 다른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방법을 알 것이라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심리학은 사람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방법을 배우는 학문이 아니다. 물론 인간 심리를 간파해 행동을 예측해내는 학문도 아니다. 그럼에도 심리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사람들의 눈에는 '어디 내 마음도 한번 읽어봐'라는 기대가 섞여 있을 때가 많다. 심리학에 대한 오해가 깊은 건 우리가 우리의 마음에 대해 잘못 알고 있어서다. 더 정확히는 마음에 대한 정의를 좁게 가지고 있었던 탓이다.
 마음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자각하는 것뿐 아니라 자각하지 못한 채 뇌에서 처리되고 있는 모든 일들을 말한다. 우리의 마음, 즉 인간의 심리는 고차원적인 능력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생존을 돕는 원초적 능력들, 예컨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촉감을 느끼는 것도 모두 마음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당신은 글자 하나하나를 읽고 그 글자가 무엇인지 안다. 그런데 그 글자들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 걸까? 어떻게 인식하는 걸까? '광'이라는 글자를 보고 '광'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 걸까? 이러한 질문을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대답을 한다. "그렇게 생긴 글자 모양이 '광'이라고 배웠으니 안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다시 질문해 보자. "그렇다면 당신의 머릿속에는 '광'이라는 글자 모양이 하나만 저장되어 있는가? 아니면 여러 개 혹은 수백 개 저장되어 있는가? '광'을 종이에 작게 쓰든 크게 쓰든 흘려 쓰든 애매하게 쓰든 우리는 '광'이라는 글자를 금방 알아본다. 어떻게 된 일일까?"
 조금 복잡하게 질문하자면, 우리가 흰 종이에 쓴 '광'이라는 글자를 보았을 때, 흰 종이에서 반사된 빛과 검은 잉크로 쓴 '광'이라는 글자에서 반사된 빛의 패턴들이 우리 눈의 각막을 통해서 안구의 안쪽에 있는 망막에 전달된다. 망막에 있는 빛에 대해 반응하는 수많은 세포들 중 어떤 것을 하얀 종이로부터 온 빛에 대해 반응하고 어떤 것은 글자가 점유하고 있는 공간으로부터 온 빛에 반응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각기 다르게 반응하고 있는 세포들의 조합이 우리가 눈을 움직이거나 글자와의 거리를 바꿀 때마다 달라진다는 것이다. 즉 눈에 전달되는 '광'이라는 글자의 물리적 입력값과 신경 신호의 입력값이 같은 '광'이라는 글자에서도 거의 무한대로 다양한데, 어떻게 우리는 종이에 쓰인 '광'이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즉시 그것이 '광'이라고 같은 출력값을 내놓는가 말이다.
 이런 이상한 질문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미처 생각지 못한 마음의 기능은 이처럼 우리가 그동안 아주 당연하고 쉽게 해온 일, 즉 사물을 보고 무엇인지 아는 일과 같은 능력이라 해도 우리가 그 일을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하나의 글자를 알아보고 인식하는 것이 무슨 마음인가 싶겠으나 우리가 마음이라 생각할 만한 고차원적인 생각, 느낌, 정서, 판단, 의사결정과 같은 어려워 보이는 능력들, 이 모든 것들은 마음이 맞다. 하지만 하나의 글자를 어떻게 인식하고 우리가 어떻게 보고 듣고, 어떻게 감각을 느끼는지, 이런 것들도 모두 마음의 문제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아는 것들뿐만 아니라 의식적으로 자각할 수 없지만 우리 뇌에서 복잡하게 처리되고 있는 모든 일들도 다 마음이고, 이것이 우리의 정서, 인지, 행동에 영향을 주고 있다. 사소하고 당연해 보이는 행동들도 마음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마음은 복잡하고 동시에 매우 귀하다. 따라서 이토록 소중하고 귀한 마음을 가장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과학이다. 마음은 반드시 과학적으로 연구되어야 한다. 인간의 마음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되는 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심리학은, 특히 인지 심리학은 이렇듯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학문이다.
 사실 일반인들은 자신이 글자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알 필요가 없다. 그냥 글자를 보면서 그 글자가 무엇인지 알면 그만이다. 마치 운전하는 사람들이 자동차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만 이해해서 운전하면 되는 것과 비슷하다. 운전하는 사람처럼, 모든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운전하고 사용하고 있다. 자동차의 복잡한 구조와 메커니즘을 일반 운전자가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처럼 우리도 마음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모두 알 필요도 없고, 모두 아는 것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일반 운전자들도 기본적인 자동차 구조와 기능을 알고 있어야 하듯 우리도 마음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는 이해하고 있는 것이 좋다. 그래야 잘못된 마음의 운용, 예컨대 잘못된 판단이나 착각, 마음에 대한 오류나 정신적인 아픔은 물론 여러 부적응적인 일들을 사전에 막아내고 줄일 수 있다. 
 심리학은 다른 사람의 마음, 소위 말하는 의도나 기분을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을 배우는 학문이 아니다. 심리학은 어떤 마음도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학문이다. 특히 인지 심리학은 내가 보는 세상과 실제가 다를 수 있음을 알고 우리 마음이 우월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에 가장 적합하기 위해 구성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마음도 허투루 생긴 것이 없다. 우리 마음은 각자에게 최적화한 방식대로 살아가기 위해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당신의, 그리고 우리의 마음들은 전부 타당하다. 걱정이 많은 것도, 남과 다르게 기억하는 것도, 자주 우울한 것도, 가끔은 힘든 것도 모두 이유 있는 마음이다. 실험절차와 결과에서 보듯 더 우월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다. 지금도 내 마음은 내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해 기능하고 있다. 마음의 쓸모없는 기능은 없는 것이다. 
 지식이란 그렇듯 심리학도 마찬가지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이 많아진다. 배우면 배울수록 자신이 몰랐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심리학에 대한 관심을 통해 우리 마음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할 수 있기를 빈다. 인간의 마음에 대해 자신이 무엇을 몰랐는지, 무엇을 잘못 알고 살았는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건 아니었는지 고려해 볼 수 있다면 좋겠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소중해 존중받기를 원하듯 타인의 마음도 당연히 귀함을, 그러므로 존중받지 못할 마음이란 없음을 끊임없이 깨달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이고은(인지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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