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슬픔의 사회적 계승

 선배가 죽었다. 그 선배는 여느 선배들과 다름없이 평범했다. 본과가 되어 많아진 과제와 시험에 힘들어했지만 강의실 앞에서 마주칠 때면 친구들과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며 웃고 있었다. 동아리 활동에 열심이었고, 이따금씩 학교 앞 호프집에서 밤을 새우기도 했는데 스터디 뒤풀이라고 했던가 그랬다. 여름 방학에는 의활을 간다고 했던 그런 선배가 느닷없이, 총에 맞아 죽었다. 
 위 문단은 5.18 민주화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故 임균수 열사를 기리며 쓴 가상의 글이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 속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를 차용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과 슬픔, 감정이입의 속도를 조금이나마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의대 본과 2학년이었던 임균수 열사는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에서 일어난 계엄군의 집단 사살 도중 총상으로 사망했다. 5.18 민주화운동은 우리나라 역사의 큰 상처이지만 그 상처를 제대로 체감하기는 어렵다. 2022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5.18 민주화운동은 활자 너머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시험의 단골 주제로서 무미건조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또 때로는 정치 이데올로기의 표상으로서 너무 거대하게 다가오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5.18 민주화운동을 시험지 속에서 끄집어내고, 이념의 푯대에서 끌어내리기 위해서 우리는 그날의 비극을 개인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원광 구성원은 학생 임균수로 5.18 민주화운동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 날씨와 별반 다를 바 없었던 1980년 봄, 형과 함께 전남도청으로 향하던 임균수 열사의 발걸음을 상상해본다. 매일 같이 열리던 집회라 하더라도 무섭지 않았을 리 없다. 1980년 5월 21일 아침, 만에 하나의 일이 내게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없었을 리 없다. 그럼에도 현관문을 나서던 그 마음을 헤아려본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열망과 기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적 차원의 공감은 이로 인한 사회의 아픔에 대한 공감과 생명을 걸어서라도 수호해야 하는 인류 보편가치에 대한 고찰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개인은 사회 속에 존재한다. 매일의 일상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일들을 겪고, 그 모든 것은 나에게만 특별한 의미를 가지며 삶이 된다. 이렇듯 지극히 개인적이기에 삶이라 불릴 수 있는 시간들은 역설적이게도 공동체의 평온을 담보로 한다. 따라서 이 사회를 묶어내는 최소한의 가치가 몰락했던 1980년 5월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여전한 아픔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던 임균수 열사의 마음에, 그런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의 형언할 수 없는 슬픔에, 광주 전역에 퍼졌던 최루탄 연기의 매캐함에 공감한다면 당대 사회가 공유했던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사회통합의 올바른 방향성에 대해 모두가 함께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온풍에 꽃향기가 불어오는 5월, 공대 앞 잔디밭의 임균수 열사 추모비에도 같은 바람이 분다. 앞서 간 선배의 숭고한 정신과 올바른 발걸음이 우리 캠퍼스 전체에 퍼지길 소망한다.

 

송찬미(한의학과 본과 3년)

 

 

5월의 그날, 잊지 않을 것

 길었던 코로나 시대에도 이제는 끝이 오려나보다. 긴 기다림 끝에 곧 누릴 수 있게 될 자유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겨울의 기다림이 끝나면 봄은 항상 찾아온다. 5월 중간고사를 마칠쯤이 되면 삭막했던 겨울 바람이 가시고 푸르른 봄기운이 느껴지며 5월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당연하지 못했던 봄이 있다. 42년 전, 그 어떤 봄보다 어둡고 차가웠던 광주의 봄의 끝을 보지 못한 채 숭고하게 희생당하신 분들이 있다. 바로 5.18 민주화운동에 관한 이야기이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해서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교과서나 영화같은 다양한 매체에서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주제는 수없이 많이 다뤄졌고, 수없이 많은 책과 문서가 작성돼 읽혔다. 나는 교과서를 통해 5.18민주화운동을 처음으로 접했다. "근현대사에서 무조건 시험에 나온다!" 라고 하셨던 선생님의 말씀과 수능 한국사 시험에서 마주한 문제들이 떠오른다. 지리적으로, 시기적으로, 경험적으로도 겹치는 게 없던 지라 5.18 민주화운동을 다분히 '역사적 사건'으로만 대해왔다.  
 그러던 중 서울을 떠나 원광대학교로 진학하게 됐다.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따뜻한 봄날에 교정을 산책을 하던 중 공대와 학생회관 사이 화단에 자리 잡고 있는 커다란 비석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그 비석에는 5월 21일, 당시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본과 2학년으로 재학 중이던 故 임균수 선배님께서 전남도청 앞에서 시위를 하시다가 총상을 입고 숨을 거두신 안타까운 사건을 추모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故 임균수 선배님께서 학교를 다니셨던 시간만큼의 시간이 지나서 본과 2학년이 된 나는 다시 한 번 그 비석 앞에 섰다. 이전보다 더 깊은 감정이 느껴졌다. 나와 똑같은 학교에서 같은 학문을 배우고 같은 땅을 밟으며 4년째의 시간과 경험을 보내고 계셨을 선배님을 생각하니 비로소 5.18 민주화운동이 멀게 느껴지는 교과서의 사건이 아닌 불과 수십 년 전 우리 주변에서 선배, 후배, 혹은 우리의 가족이 희생당한 사건임을 깨닫게 됐다. 故 임균수 선배님을 비롯한 수많은 우리 곁의 시민들의 희생은 지금의 대한민국의 초석이 됐고, 대한민국을 민주주의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게 한 아픈 발판이 됐다. 
 지난 3월 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빈부, 남녀에 관계없이 18세 이상인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공평하게 한 표를 선사했고, 그 수많은 표들이 모여 대통령이 선출됐다. 지금은 당연시하게 여겨지는 이러한 선거가 선배님의 용기와 결단이 없었더라면 현재에도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비록 선배님께서는 봄의 시작을 보지 못하신 채 돌아가셨지만, 선배님께서 목숨 걸고 지키시고 물려주신 봄이 찾아왔다고, 그리고 우리 후배들이 감사히 누리고 있다고 꼭 말씀드리고 싶다. 또한 故 임균수 선배님의 희생과 의지는 우리의 가슴속에 깊이 남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도.
 누구에게도 강요받지 않고, 오로지 더 나은 내일만을 위해 싸우다가 산화하신 수많은 젊은이들. 5.18일 단 하루라도, 우리가 그들을 떠올리고 기억하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감사한 마음을 표할 수 있지 않을까.

 

이동하(한의학과 본과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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