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은 현재 사회와 가장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는 문학 장르이다. SF는 기술적으로 포화한 시대의 문학이기 때문이다.(셰릴 빈트, 『에스에프 에스프리』, 전행선 역, 아르테, 2019.) 현재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면서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이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빠르게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SF는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를 과학적으로 바라보면서, 과학으로 인해 가능하게 되는 것과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누락되게 되는 것, 이 두 가지 모두에 관심을 가지며 문제를 제기하는 장르이다. 예컨대 SF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우리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허구적으로나마 상상해 볼 수 있게 하는 문학·예술의 한 장르이다.
 최근 한국문학계에 나타나는 특징적인 변화도 바로 SF소설의 확장이다. 한국문학은 역사적으로 사실주의 경향이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현실 사회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반영하며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내는 것이 문학의 사명감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장르적 문법을 가진 소설들은 주류 문단에서 거의 창작되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 사실주의 문법만으로는 그려낼 수 없는 사회의 급속한 변화 앞에서, 한국문학 또한 사실주의 소설을 넘어서서 현실의 문제를 그려내는 새로운 형식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였다. 그것이 바로 SF소설의 전성기를 맞게 된 이유이다.
 최근 한국 SF소설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김보영, 김초엽, 천선란 등을 들 수 있다. 김보영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등의 스텔라 오디세이 3부작과 『얼마나 닮았는가』 등의 단편집을 출간하였다. 스텔라 오디세이 3부작은 영미권에도 번역 출판되는 등, 한국을 넘어 세계 SF소설 시장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작가이다. 김초엽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SF소설 독자층을 매니아층을 넘어 일반 문학 애호가에게까지 확장시켰으며, 2021년에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과 단편집 『방금 떠나온 세계』을 출간하면서 가장 활발히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이다. 김보영의 작품이 일상을 살아가는 독자들을 우주의 공간으로 손쉽게 데리고 간다면, 김초엽의 작품은 현재의 독자들을 우리가 상상하는 기술이 구현된 미래의 세계로 옮겨 놓는다.
 이와 달리 천선란의 작품은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공간과 시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시·공간적 배경으로 보자면 천선란의 작품은 사실주의 소설의 문법을 기본으로 한다. 다만 천선란의 작품은 현재 우리의 일상에 단 하나의 타자적 존재를 위치시킴으로써 현실의 시·공간을 낯설게 만든다. 천선란의 대표작 『천 개의 파랑』에서는 안드로이드 로봇 콜리가 등장함으로써 현재가 새로운 시·공간으로 바뀌었고, 『나인』에서는 식물에서 태어나는 누브족의 후예인 나인이 존재함으로써 우리의 일상이 외계인과 공존하는 그 어떤 낯선 것으로 바뀌었다.
 천선란의 『나인』(창비,  2021.)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외계인의 성장담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주인공 나인은 고등학교 2학년의 어느 날, 자신의 손가락 끝에서 새싹이 자라는 것을 본다. 그리고 식물들이 자신에게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다. 자신이 남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나인은 고민한다. 친구들이 자신을 과연 받아들여 줄까. 나인은 친구 미래에게 고백한다. 사실은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식물이라고. 나인의 황당한 고백을 들은 친구 미래는 이렇게 묻는다. 그러면 나무야, 꽃이야. 나인의 친구들은 나인이 자신과 다른 존재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나인의 황당한 말을 믿어 준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도 이 세상 속에서 어딘가 남과 다른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남과 다른 존재들을 배척하는 순간 우리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우정과 사랑이라는 것이 가능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천선란의 『나인』은 외계인과 맞서 싸우는 외계인 침략 SF의 전형적 클리셰를 반복하지 않는다. 또는 외계인과 아름다운 우정을 맺는 <E.T.>가 그려내는 판타지도 선사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그저 우리 모두가 외계인일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러한 타자적 존재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지를 이야기한다. 우리가 나와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정체성을 남과 동일하게 맞추어내야 하고, 우리와 다른 이질적 존재를 폭력적으로 배척해야 한다. 동질성만을 강요받는 사회는 억압적이고 폭력적이다.  『나인』은 이러한 동질성의 세계에서 벗어나 나와 다른 타인의 존재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함을 이야기한다. 타자는 나와 다르기에, 나와 함께하며, 나를 보완해 줄 수 있는, 소중한 존재이다.
 나와 다른 타자와 함께 공존해 나가는 사회는 우리 개개인의 다양성을 구현할 수 있는 사회이다. 이렇게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서로 상생할 수 있다. 『나인』이 그려내는 세계에서, 어떤 사람들은 땅에서 태어나기도 했고, 누구는 알에서 태어나기도 했지만, 그 모든 존재들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들의 사회에도 엄마가 레즈비언인 미래가 있고, 다 커서도 무서우면 누나와 자는 현재도 있지만, 그들이 그런 비밀을 가졌다고 해서 인간이지 않은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의 존재는 각자 다양하다. 그래서 찬란하다. 천선란의 『나인』은 SF의 클리셰인 외계인 모티프를 통해, 이러한 각자의 다양성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 각자의 이질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 주는 사회에 대한 소망을 담아내었다.

 

 
이주라 교수(문예창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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