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오면서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무언가를 주셨다. 밥먹을 때는 항상 꼭꼭 씹어먹으라는 말과 반찬을, 내가 돈이 필요할 때는 용돈을, 내가 영어 공부를 하지 않을 때는 영어책을 주셨다. 자라오면서 항상 내게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시는 아버지였다. 하지만 유형적인 것뿐만 아니라, 무형적인 것도 많이 주셨는데 바로 말씀이었다. 그중 가장 생각나는 말씀 중 하나인 '유시유종'이란 말씀으로 이글을 시작하고 끝내고자 한다. '유시유종'은 "시작할 때부터 처음 끝날 때까지 변함이 없다"는 뜻을 담고 있다. 필자가 군 말년 때 받은 말씀이라 군 생활 끝까지 잘 마무리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유시유종'의 뜻은 대학 4년이 된 지금에도 나에게 유효한 것 같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도 새겨들을 말씀으로 다가온다.
 고등학교 시절에 일반적으로 사회와 제도에 불만이 많았던 나였다. 그 나이 사춘기 특성상 그냥 모든 것이 싫었던 것에 기인할 수 있겠다. 특히, 학부모가 학교에 자주 학교에 드나들고, 선생님들이 공부를 잘 했던 몇몇 특정 아이들을 챙기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싫었다. 하지만 학교가 더 싫었던 것은 솔직히 거의 꼴등을 맴돌았던 성적때문이었다. 모든 게 하기 싫었고, 그냥 대들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다. 그들과 같은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그들과 겨누고 싶었다. 공부 잘하는 애들이 그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무시하고 말이다. 계속해서 비판이라는 허물을 쓴 반항으로 세상을 바라봤고, 그러던 중 세상의 부조리를 밝히는 '기자'라는 직업을 발견했다. "이거였다. 내가 가야하는 길, 힘센 사람들을 무찌르고, 정의가 무엇인지 보여줘야 한다!"며 호기롭게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하고, 대학 신문사에도 입사했다. 세상을 바꾸는 기자, 아버지가 주신 '유시유종' 말씀을 바탕으로 기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약 4년의 대학생활과 편집장이 된 지금 고교 시절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매우 창피함을 감출 수 없다. 
 대학 입학 후 시작한 신문방송학이라는 학문은 살면서 한 공부 중 가장 재미있는 학문이었다. 처음으로 장학금도 받아봤다. 고등학교 시절 꼴찌를 맴돌던 나는 처음으로 대학에서 인정받았다. 모든 게 내 세상 같았다. 진짜 내가 원하는 기자가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신문사 생활에서 나의 밑천은 바로 드러났다. 그동안 내가 살면서 쌓아 올린, 내가 규정해온 '정의'란 이름으로 기사를 써 내려가면서,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과 신문사의 색깔에 참 많이 부딪히고, 깨졌던 기억이 난다. 내가 생각해온 '올바름'이 정의인 것처럼 틀을 짜 글에 접근했고, 종국에는 감정에 치우쳐 오보 기사를 쓰기도 했다. 이 과정 속 참 많이 아팠다. 그러면서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도 했다. "내가 왜 기자가 되고 싶지?", "정말 '정의'를 위해 살고자 했던 것인가?" 아니면 "나만 능력있고, 나만 배부르고 싶은 기자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나는 후자였다. 나만 잘나가고 싶었고, 노력이라는 단계를 생각하지 않고, 쉽게 성공하고 싶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로 살다보면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들로 살아온 나는 무너져내렸기 때문이다.
 나의 어리고, 철없고, 감정으로 호도하는 생각으로 점철된 삶은 단연 '연약한 젊음'이었다. 권력과 능력을 구별하지 못하고, 능력도 없이 권력을 탐하는 생각은 정말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신문사일을 하면서 수습기자에서 편집장까지 능력으로 권력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쌓아 올린 내가 생각한 '정의'를 다시 한 번 처절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신문사를 떠난다. 이 과정 속에서 희망했던 기자의 꿈은 내 밑천을 발견함과 동시에 현재는 답보상태다. 하지만 '정의'에 대한 개념은 확실히 담아간다. 기자에 대한 '유시유종'은 지키지 못했으나, 앞으로 내 삶에 '정의'에 대한 개념은 꼭 '유시유종'하길 소망한다.

강창구 기자 kcg0129@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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