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나라 영화이야기-아름다운 시절

 신작 영화 한편을 보고 극장문을 나서다가 문득 거대한 극장건물이 엄청난 공룡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나절에 들은 아들과 녀석의 친구 대화 때문이었을까.
“너 공룡이 왜 죽었는지 알어?”
유난히 통통한 볼을 지닌 아들녀석이 묵직한 책 가방을 맨 녀석에에 물었다.
“지구가 추워져서!”
친구녀석의 대답에 통통한 볼의 아들녀석이 뻐기듯 말했다.
“아니야. 밥을 많이 먹어서 음식이 다 떨어져서 굶어 죽었대. 운동도 안하고 밥만 많이 먹으면 공룡처럼 다 죽는대” 아마 얼마전 유난히 통통한 녀석의 다이어트를 위해 애미인 내가 해준 이야기였던 것 같다. 운동이 없는 대식(大食)… 누구에게나 혹은 어느 분야에나 그것은 사망선고가 아닐까?

 웰빙이 시대적 화두가 된 이쯤에 영화라는 분야 또한 한번쯤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할때가 된것은 아닌지… 영화에 있어서의 건강, 건강을 위한 기초운동, 그것은 거대한 영화산업 저편에 숨어버린 순수영화 예술영화 그 가장 맑은 열정들은 아닐런지… 온갖 매체에서 영화를 이야기 한다. 백억의 자본을 이야기 하고, 영화제 수상의 감독과 작품을 이야기 하고, CF에 얼굴을 내미는 스타을 주시 한다. 이제 영화는 충분히 상업적이다. 관객은 이미 천만을 넘어섰고, 세계화로 눈을 돌릴 때라고 너나 없이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 진정한 예술의 뼈대가 된, 근육과정신, 순수 예술은 어디에 있는가? 영화사 ‘백두대간’은 10년간 상업영화의 범람 속에 자칫 말라버릴 수도 있었던 예술영화 시장을 지켜준 지킴이였다. 멀티플렉스와 상업 영화들의 파상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색깔을 주장한 영화사이다.

 2월 25일은 예술영화 전문수입, 배급사 백두대간의 열 번째 생일이었다.
 1995년 2월 25일 영화사 백두대간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을 시작으로 예술영화 수입, 배급에 뛰어든 후, 2월 18일 <독일, 창백한 어머니>까지 총 69편을 국내에 선보였다. 그 동안 백두대간은 예술 영화의 마니아들의 갈증을 해소하는 오아시스였다.

 백두대간이 10년간 모은 관객 수는 1천115만 4천537명으로 요즘 개봉하는 상업영화에 비하면 초라하겠지만 참 잘 견뎌낸 값진 성과라 볼 수 있다. 여기는 백두대간의 대표인 이광모 감독이 1998년에 제작한 <아름다운 시절>의 관객수 18만도 포함돼 있다. <아름다운 시절>은 제51회 깐느 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동경 국제영화제 금상과 기린상, 하와이 국제영화제 그랑프리, 벨포르 국제영화제 그랑프리 등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며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라고 불릴 만큼 극찬을 받았다.

 백두대간은 예술영화의 확산을 위헤 다양한 노력도 기울리고 있다. 1995년 11월에는 짐 자무쉬 감독의 <천국보다 낯선> 개봉과 함께 대한민국 최초 예술영화 전용관 ‘동숭씨네마’의 프로그램 기획을 시작했고, 2002년 12월에는 ‘프로노그래픽 어페어’ 개봉과 함께 씨네큐브광화문을 개관하였다. 2002년 ‘영화로 떠나는 유럽배낭여행’을 필두로 ‘영화로 떠나는 실크로드 배낭여행’등 진중한 주제의 예술영화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접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했고, 2000년‘아듀20세기 영화제’를 시작으로 ‘영화로 보내는 발렌타인 러브레터’등의 참신한 아이디어 상품도 내놓았다. 그리고 김기덕, 박찬욱, 앙겔로폴로스 등의 감독 특별전, 호주, 프랑스 등 각국 대사관과 기획하는 영화제도 개최했다. 또한 그 동안 각종 기획 강좌를 개최했고 2005년부터는 ‘시네큐브 여름학교’도 운영할 계획이다. 씨네큐브 홈페이지도 새로운 회원제도로 3월에 재오픈했다.

 백두대간은 창사 10주년 기념으로 ‘10년만의 외출’이라는 타이틀로 3월 18일부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희생>, <노스탤지어>등이 재개봉됐고, 차기작품들로 영화사적으로 의미있는 감독의 영화들이 앵콜 상영된다. 예술영화가 영화제나 특별 회고전이 아닌 일반적인 상영으로 앵콜되는 것은 국내 영화시장에서는 볼 수 없다. 이러한 것은 외국에서는 아주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있다. 이젠 관객들에게 예술영화를 대형 스크린 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와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본다.

 산책하기 좋은 날이다. 통통한 아들녀석의 손을 잡고 봄길 산책을 나서야겠다. 이렇게 함께 걷다보면 어느날인가 이 녀석도 탄탄한 청년이 되어 엄마를 놀래키겠지…
이처럼 우리 영화도 한걸음 한걸음 걷다보면 어느 해 봄엔가는 건장한 청년이 되어 있으리라.      

   이 영 (유럽지역어문학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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