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평생 아버지 흉내만 낸다』(조정근, 고려원북스)

◈ 서평- 조정근 『나는 평생 아버지 흉내만 낸다』 /고려원북스

 아마 금년 2월말이 가까울 무렵이었을 것이다. 어느날 나는 총부 앞 신호등을 기다리는 중인데 법인 사무국 교무가 책을 한 아름 안고 낑낑거리는 것을 목격하였다. 효산 조정근 원광학원 이사장의 교육관을 담은 책이라고 했다. 『나는 평생 아버지의 흉내만 낸다 (주·고려원북스 275쪽, 1만원)』. 나는 발걸음을 총부 서점으로 되돌려 책을 사들었다. 얼핏 책을 살피는 가운데 전주 북중학교 시절의 얘기와 아버지를 회상하는 대목에 오래 눈이 멎었다.

 며칠 후 나는 법인이사장실로 찾아가 효산 님의 신년 하례식 법문인 ‘天網恢恢---'에 대한 나의 화답을 선 보인 후 책을 펼쳐 싸인을 받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답지하는 기증본 홍수 시대에 내 손으로 직접 사 들인 금년의 유일한 책이었다.

 이미 머리 하얀 할아버지 효산 님이 회상하는 아버지는 말수가 많지 않았으나 매우 다감하고 자애로웠던 것 같다. 형님이 대학 합격통지서를 들고 왔을 때도 빙그레 웃더니 그저 “어머니께서 기다리신다. 들아가 뵙도록 해라.” 그 한 마디 뿐이었다고 한다. 나를 가장 감동시키는 대목이었다. 문면에 번지는 매우 따뜻하고 자애스러운 모습의 아버지를 모신 소년 효산 님은 행복했을 것이다.

 아들의 존경을 받는 부모 되기가 어디 쉬운 일이랴. 아들의 흠모를 받는 아버지 또한 행복했을 것이다. 그런 부모는 가장 훌륭한 농부라는 말을 떠올렸다. 먹거리가 어려웠던 일제시절 자·소작 논밭을 모두 합쳐 백 여두락 남짓으로 8남매를 모두 입히고 가르치고 큰집 작은 집의 가사까지 두루 살피는 책 속의 아버지는 배움의 열망이 컸던 소년이었다.

 부안 개화도로 당시 이름 높은 유학자 간제 선생을 찾았고 거기서 윤제술씨(전 국회부회장)를 만나 전주의 신흥학교를 거쳐 서울의 중동학교에 입학하지만 중도 하차하고 만다. 큰아버지가 올라와 “장가도 가야하고 집안 살림도 맡아야 한다.”며 고향으로 끌고 내려간 것이다.

 “나는 한강을 건너오면서 아버지가 흘렸을 눈물을 생각하곤 한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뿌렸을까.” 라고 효산 님은 술회한다.
 “어서 일어나라고 하실 때의 기침 소리와 어서 나와 청소하라고 하실 때의 기침소리는 확연히 달랐다. 아버지의 기침소리는 우리 집안에서 가장 권위 있는 말씀이었다.” 

 아버지는 아마 어린 효산을 향해 말없는 가운데 참으로 많은 말을 남겼던 모양이다. 어린 소년이 아버지의 기침 소리마저 구별해 들을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새겨듣던 그 소년이 그 시절에는 흔치 않는 이름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의 명문 대학을 마다하고 원광대학에서 원불교 성직자의 길을 익힌다. 그리고 지금껏 원불교 교정원정, 수위단원, 잊혀진 아이들을 모아 교육하는 대안학교 이사장을, 현재는 원광학원 이사장으로 원광대학, 보건대학, 원대 병원을 이끌며 사람을 버리지 않는 교육관을 실천하고 지휘한다.

 이 책에 담긴 8년동안의 서울 휘경여중 교장직은 무너지는 학교교육의 중심을 교사와 부모의 바로서기에서 찾아 실천하는 노력으로 점철된다.

 부모 바로 세우기의 모범은 아무래도 어린 시절 엿보았던 아버지의 과묵 속에 언뜻언뜻 들어나는 ‘바로 섬'을 흉내내는 것은 아닐지 모를 일이다. 역설적이게도 문제 아이 뒤에는 문제 부모가 서 있다는 확실한 교육관은 어린 날 아버지의 무언의 사랑속에 익힌 자연스런 발로였을 것만 같다. 아버지의 유산일 것이다.

 이쯤 되면 독자는 『나는 평생 아버지 흉내만 낸다』는 책명의 근원을 모두 파악했을 것이다. 책 속의 아버지는 주막을 지날 때면 동네 조카들의 막걸리 값도 미리 던져주고 가는 어른이다.

 퇴학 없는 학교 만들기나 어린 학생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려는 효산 교장 님의 노력 뒤에 도사린 부모 바로세우기는 무너진 한국 학교 교육을 바로 세우는 화급한 현안이며 대안일 것이다. 이 책의 울림이 큰 이유이다.

박 영 학 (정치행정언론학부 교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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