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인식장애
이 소 영 (인천부개여자고등학교 3학년)
여기는 햇살이 잘 들지 않아
그늘이야
껴안아 주고싶은 나무 한 그루가
눈부신 초록 웃음을 달고 흔들려
바람이 불고
그 속에 무언가 숨어있어
나는 기억하지 못해, 낯선
기억들이 날벌레처럼 모른 척 다가와
가로로 누운 긴 의자 끝엔
다 식은 커피 두 잔이 공기를 삼키고
망설임으로 닳은 길가의 벽돌들은 갈라져 있어
누군가 신발끈 매는 소리가 들려
느린 발소리가 나고
부푼 마음에 마른 입술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와
나는 기린처럼 긴 목을 세웠을 거야
여기보다 먼 어느 곳에서
숨 죽이며 다가오는 그림자에게 반가운 손인사를
했겠지
그러나 내 손에 닿은 건 입 벌린 냉장고
나는 단단한 사각틀 안에 잠긴
탄산없는 사이다를 들이켜
신나는 것을 원하는 혀가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말라가
바람 끝에서 멈춘 얼굴
우리는 서로 대화를 나누고
식은 커피를 마시며 웃었겠지만
내 손은 냉장고 속에 잠겨있어
내 눈을 누군가 사정없이 지웠을거야
냉장고에선 얼지 않는
얼굴 없는 너의 웃음만이
내 안을 맴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