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흔히 진리(眞理)는 영원불멸하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영원불멸’이라는 것이 과연 있을까? 그래서 말을 바꿔본다. "영원불멸한 것은 없다는 것이 곧 진리이다".


시간이라는 잣대로 볼 때, 고전(古典)이란 과거 시간의 어떤 것들을 지칭한다. 고전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우선 시간적으로 일정한 시기를 지난 어떤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래된 것이라고 다 고전이 아니다.

즉 시간이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중세시대 종교음악이 고전일 수 있듯이 19세기 말의 유행가도 고전일 수 있고 오늘날의 유행되는 문화도 100여년 정도 지나면 고전일 수 있다.


그렇다면 고전이라는 개념에는 단순히 시기를 구분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새길 수 있다. 즉 클래식(classical)이라고 하는 고전에는 ‘오래 된’이라는 뜻과 함께 ‘가치 있는’이라는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오래 전에 생겨나서 많은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정하고 오늘날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훗날에도 본보기가 된다’ 라고 고전의 의미를 정리하자면, 단순한 시기 구분을 초월한 어떤 고지식함의 뜻을 담고 있다. 마치 불변의 가치를 지니기에 이런 것들에 대해 후대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주석(commentary)이외의 그 어떤 개조나 변경을 용납하지 하지 않겠다는 듯 한 느낌도 아울러 다가온다.


고전이란 재해석에 의해 되살아난다. 고전은 끝임 없이 인용되고 재해석되고 그리고 패러디되어야 한다. 오늘날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를 되돌아보기 위해서도 ‘고전’이 필요하다. 그래서 옛말에 ‘온고이지신’이라 하지 않았던가.



클래식의 원시림
소위 무리를 지어 갔다 오는 단체관광 여행은 점(點)의 여행이라는 생각이다. 노랫말마냥 그저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의 여행이다. 반면에 갈 곳도 딱히 정하지 않고 그저 배낭하나 둘러메고 떠나는 여행은 선(線)의 여행이다.


고음악(Early Music)을 듣는 것은 ‘선의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 길에는 낯익은 풍경보다는 처음 보는 풍경이 더 많다. 새로운 풍경이 그득한 여행은 낯설음에 설레고 호기심에 우리의 마음을 한껏 부풀게 한다.


사전적 뜻풀이로 고음악은 말 그대로 ‘옛날 음악’이다. 그러나 이렇게만 정의한다면 뭔가 아쉽다. 고전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시대 개념으로서의 고음악뿐만 아니라 작곡가가 살던 시대에 사용되던 악기를 가지고 그 시대의 방식대로 연주한다는 것이 고음악에 담긴 또 다른 의미가 아닐까.


옛날 악기는 오늘날 악기와는 달리 악기의 재료가 달랐을 것이고, 그래서 그 소리도 지금과는 좀 다를 것이다. 예컨대 옛 악기의 현은 양의 창자로 만든 가트(gut) 현이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고 소리는 둔탁하게 느껴지지만 깊이가 있다.

오늘날 현은 쇠줄이다. 재료부터 다르니 소리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음량은 작지만 섬세하고 자연스럽고, 그래서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한 소리로 느껴지는 것이 옛날 악기들의 매력이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악기도 바뀌듯 음악도 달라졌지만, 고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단순함, 소박함이라 하겠다. ‘Simple is good’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고음악의 단순함은 원시적이라는 것보다는 근원적이라는 느낌의 단순함이요 소박함이다. 지금으로부터 4~500년 전,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의 사람들의 음악과 삶을 시공을 초월하여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고음악의 매력이라 하겠다.



클래식 오디세이
독일 프라이부르크에 자리잡고 있는 도이체 하모니아 문디(Deutsche Harmonia Muindi, DHM)라는 음반사가 창립 50주년을 맞이하여 기념 음반집을 내놓았다. DHM에서 내놓고 있는 음반들은 고음악이 많고, 명료하고 투명한 고음질의 사운드를 자랑한다.


도이체 하모니아 문디 50주년 기념 음반집은 모두 50장으로, 천년의 시공을 넘는 음악사가 걸쳐 있고 무명씨부터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를 비롯하여 비버(Heinrich Ignaz Franz von Biber, 1644-1704), 보케리니(Luigi Boccherini, 1743-1805), 프레스코발디(Girolamo Frescobaldi, 1583-1643), 마레(Marin Marais, 1656-1728),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 첼렌카(Jan Dismas Zelenka, 1679-1745) 등의 작곡가의 주옥같은 음악이 담겨 있다.


이 음반에서는 깊은 산속 옹달샘같은 고음악을 만날 수 있다. 간결하고 담백하며 덜 기교적이어서, 그 샘물에 귀를 씻으면 순수한 노스텔지어의 피안에 다다를 수 있다. 단순함과 간결함이 주는 환희, 그 희열은 고음악의 바다에 빠져들게 만드는 궁극의 동인이다. 감미료를 치지 않은 청정무구한 선율과 특유의 깊이감을 느낄 수 있다.


장규원 (경찰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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