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2022년을 마치며, 그리고 돌아올 2023년을 기대하며 원대신문 기자들은 '청춘'을 주제로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청춘은 지금이고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다가올 미래의 불안함보다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할 때이며, 우리는 모두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지쳐도 쉬어 갈 수 있다.
/편집자 

2022학년도 2학기 원대신문 기자들 단체 사진
2022학년도 2학기 원대신문 기자들 단체 사진

끊임없이 도전하며 성장하는 청춘
 청춘(靑春).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혹은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도전할 때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다. 실패 걱정 없이 마음껏 도전해 볼 수 있는 청춘이기에 많은 사람이 최고의 시기라고 한다. 중장년이 되면 잃어버릴 게 많아 도전을 할 수 없지만, 청년일 때는 그런 리스크를 조금이라도 더 덜고 도전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년이 관심을 두는 이야기는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자 하고 어떻게 하면 나만의 길을 걸을 수 있는지 고민해보곤 한다.
 도전. 도전하는 삶. 정말 멋진 단어다. 도전하지 못하는 삶은 정말 재미없는 삶이다. 사람의 가장 높은 욕구는 자아실현의 욕구다. 우리가 이루고 싶은 목표를 향해 하는 도전은 바로 그 자아실현의 욕구와 연결된다. 그래서 도전은 언제나 우리를 즐겁게 한다.
 20대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매우 귀중한 시기이다. 더불어 꿈을 꾸기에 좋은 나이다. 어떤 일이든 도전으로 시작해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성공을 쫓는 데 너무 급급해하지 말고 잘 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무엇이든 시도해야 꿈은 이루어진다.
 실패를 통해 실패의 지혜가 미래에 촉매제가 되는 것처럼 청춘은 도전에 두려워하면 안 된다. 청춘은 소망하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포기하지 않고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행동으로 꼭 실행해야 한다. 끊임없이 자기를 개발해 실패를 극복하는 도전의 전략을 가지길 소망한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겪으면서 고뇌했던 지구상의 단 하나뿐인 당신의 미래가 도전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20대는 완전한 인생은 없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시기이기에 그 사실을 느끼는 순간부터 우리 청춘은 다시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막연하고도 가슴 벅찬 꿈의 여백이 도전으로 인해 성공으로 채워지길 바라본다.

홍건호 기자 hong7366@wku.ac.kr
 

기죽지 말자 청춘아, 행복하자
 최근 사회적으로 시끄러운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화물연대 노조와 서울 지하철 파업이다. 아직 서로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파업은 각자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사회현상이다. 
 행복의 기준은 누구나 다르다. 부유한 삶을 행복이라 여기는 이도 있을 것이다. 또한, 가족들과의 평범한 저녁을 행복이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각자의 기준은 다르다. 사람들이 왜 박탈감을 느끼는지 생각해 봤다. 낮은 자존감? 빈부격차?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타인과 비교하는 행동이 자신의 삶을 깎아내린다고 생각한다. 최근 취업난으로 수많은 청춘이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다. 국가지표체계에 따르면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자살률이 월등히 높다. 특히, 한국의 자살률은 비교 대상 국가들 가운데 최상위 수준으로 OECD 평균보다 두 배 가량 많다. 미디어에서 나오는 소리도 우울하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언제부턴가 행복에 관한 이야기는 사라진 듯하다. 
 비교는 왜 하는 걸까? SNS의 보편화가 삶의 비교를 불러왔다. 기술의 발전으로 자연스럽게 박탈감을 느끼는 사회가 찾아온 것이다. 흔히, 긴장되는 일을 하기 전에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고 한다. 자기 삶을 바라보는 데도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각자의 출발점이 있다. 출발이 느리다고 틀린 것이 아니다. 유명한 이솝우화 중 하나인 토끼와 거북이가 그 예시다. 토끼는 거북이보다 한참 빨리 경주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방심한 나머지 낮잠을 자며 휴식을 취했다. 그 틈을 타서 거북이가 경주에서 승리했다는 유명한 일화다. 중요한 것은 먼저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하는 마음가짐이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하지만 시도하기도 전에 겁먹고 도망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오늘은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청춘들이 비교의 벽에 가둬진 삶을 살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기 삶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필자가 군 복무 시절에 본 문구가 하나 있다. "가장 행복한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적혀있는 가로등 이었다. 타인과 비교하면서 울적한 삶을 살아가는 것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고 가족들과의 일상을 행복으로 느끼며 지내보는 건 어떨까?

강현서 기자 kiki7531@wku.ac.kr
 

열정을 가진 자에겐 청춘이란 봄이 온다
 청춘이라면 느끼게 되는 감정이 있다.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 그것을 열정이라 부르고 청춘의 순간에 그것을 느낀다. 가슴 속에서부터 무언가 끓어오르는 경험을 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청춘이다. 특정 나이대만이그러한 명칭을 갖는 것이 아니다.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도 그런 명칭을 갖는다. 열정만 있다면 누구나 봄을 맞이할 수도 있다.
 보통 청춘을 이팔이라고 한다. 이팔에 십육 해서 16세쯤 되는 시기를 그렇게 부르는데,  내 이팔청춘은 뜨겁지 않았다. 그때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역경의 연속이었다. 최소한 학교는 꼬박꼬박 나가던 기자가 학교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너무 차가워서 타오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팔팔 뜨겁게 타오르는 것만이 열정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미지근하게라도 데워질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다시 청춘을 맞이할 수 있다.
 중학교 시절을 헛되이 보낸 나에게도 새로운 봄이 왔다. 다시금 불타오르고 있다는 뜻이다. 열여섯 살 당시 0에 수렴했던 나의 열정 온도가 80까지는 올라왔다. 지금은 대학생이 돼 학보사인 이곳, 원대신문에서 정기자 직책을 달고 기자활동을 하고 있다. 단순히 경험을 쌓고 싶어 도전한 일이었다. 꿈이 기자인 것도, 과가 신문방송학과인 것도 아니다. 
 가끔은 힘들지만 열정 하나로 이 일을 지속해나가고 있다. 내게 남은 것은 활활 타오르는 불은 아니지만 은은하게 지속돼서 또 다시 봄을 불러온다. 이 불이 꺼지지 않는다면 대학을 다니는 4년 내내 나는 봄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열정은 어떤 이유로든 생겨나고, 반대로 어떻게든 사라지기 때문에 나의 청춘이 지속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래도 열정을 가진 자에겐 청춘이란 봄이 온다는 것쯤은 장담할 수 있다.

조혜연 기자 yeonsop321@wku.ac.kr
 

청춘은 낭만이지
 과학 저서 〈Pale Blue Dot〉에서 칼 세이건은 말했다. "저 창백한 푸른 점에서 사람들은 서로 으르렁 거리며 산다. 인류의 역사 속 존재한 모든 기쁨과 고통이 저 티끌 같은 작은 점 속에 살고 있다"고… 칼이 말하는 그 푸른 점은 바로 지구였다.
 강의 시간에 들었던 이 이야기가 좀처럼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작은 지구 속에 삶에 이유를 갖고, 살아있다는 증거를 남기는 게 신기했다. 자극 없이 무던한 삶을 살던 내게 마음속 어딘가 타오르는 불빛을 만들어줬다. 그리고 느꼈다. "아, 나는 낭만을 갖고 싶다"고.
 이내 낭만이 무엇인지 심오한 생각에 빠졌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낭만이란 힘든 삶 속에서도 그거 하나 생각하며 버틸 수 있는 존재였다. 겨울에 늦게까지 공부를 하더라도 문 밖에서 파는 따끈한 슈크림 붕어빵이 기다려 질 때처럼 말이다.
 낭만이 없었는데 왜 집나간 낭만을 찾느냐 하면, 나는 연신 "피곤하다"를 입에 달고 살았었다. 그래서 하루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싶다가도, 금세 허무한 것처럼 보였다 했다. 피곤하니까. 웃프지만 "만약 네가 복권 486억 당첨자라면 어떡할래?"하며 잠시나마 힘든 순간을 잊어냈다. 그러나 이제는 허무함을 달래려던 놀이도, 습관처럼 내뱉던 말도 잘 하지 않는다. 현재는 내게 처한 수십 개의 과정에 보람을 느끼려 노력하고 있다. 
 저축한 돈을 보며 설레기 위해서, 과제하나 끝내고 책 한 권,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서. 그렇게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내 작은 낭만들을 지켜내는 중이다. 
 당신의 작은 낭만은 무엇인가? 운동? 맛집 탐방? 뭐든 괜찮다. 청춘에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없는 것 같다. 내가 지금 지내는 시간에 후회 없이 즐길 수 있다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무슨 상관일까. 청춘은 낭만이지.

서진 기자 913seojin@wku.ac.kr
 

우정, 청춘의 한 페이지
 대학에 처음 왔을 때 친구를 사귀고 우정을 배웠다. 꿈을 가지는 것도 사랑의 마음을 품는 것도, 도전도, 성적도 그 모든 것이 우정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너에게서 나를 보고, 나에게서 너를 볼 수 있다. 친구란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라 마음 깊이 느낀다. 곁에 있으면 편하고,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으며, 어려운 문제에 함께 도전할 수 있다. 혼자서는 하지 못할 일도, 친구와 함께라면 극복할 수 있는 일도 있다. 친해져야 즐겁고, 친하니까 싸우고 다툰다. 헤어질 때 슬프고 다시 만날 때 엔 기쁘다. 아무 생각 없이 함께 할 수도 있다. 친구들과 만들어낸 그 모든 추억들이 남아 청춘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친구와 함께한 시간의 곱절로 아쉬운 일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곱절로 즐거운 일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다양한 감정들을 느낀다.  가족 이외에 가장 먼저 관계를 쌓는 것도 친구이고, 마지막까지 함께 가는 것도 친구이다. 하지만 그만큼 쉽게 깨져 사라지기도 한다. 우정이란 그렇다. 사랑보단 얇고 오래가지만, 얇은 만큼 쉽게 깨진다. 그리고 우정의 범위 또한 다양한데, 말 한마디 해본 적 없는 사이여도 단순히 같은 곳에 속해있거나, 나이가 같다는 이유만으로도 친구가 되기도 한다. 나이나 성별, 인종이나 국가가 달라도 마음이 맞고 생각이 통하면 그것도 분명 친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긴 인생의 여정 속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살아갈 것이다. 그 긴 인생의 끝에 당신의 슬픔에 울어줄 수 있는 친구 한 명만 있어도 괜찮은 인생이지 않았을까. 지금 이 청춘 한복판에서 만난 친구가 그러할까. 기자는 전혀 알 도리가 없지만, 지금 함께해서 즐거운 이 기분만으로도 충분하다. 복잡한 문제도, 함께하면 쉽게 풀어낼 수 있다. 불안한 마음도, 함께하면 잠재울 수 있다. 닥쳐오는 고난도, 함께하면 이겨낼 수 있다. 즐거운 청춘일수록 유효기간이 짧다. 순식간에 지나간다. 이 대학생활 중에, 진정으로 믿을 만한 친구를 한 명이라도 사귀고 졸업한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없을 것이다. 언젠가 다시 만나 입학의 설렘, 졸업의 아쉬움, 짧았던 사랑, 길었던 후회와 고독을 얘기하며 이 시절을 그리워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배성민 기자 aqswdefr3331@wku.ac.kr
 

꿈은 청춘으로부터
 청춘(靑春), 푸를 청에 봄 춘,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이다. 
 '청춘'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마냥 행복하다가도 어딘가 모르게 아련한 마음이 든다. 모든 인생에서 한 번 뿐이겠지만, 청춘은 왠지 모르게 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그 돌아오지 않는 시절엔, 우리의 꿈이 있다. 
 청춘과 꿈,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다.
 10대 시절, 기자는 참 되고 싶고, 가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은 학생이었다. 그 때 우리가 상상한 청춘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문화생활을 즐기고, 한 해에 한 번 정도는 여행을 가는 삶이었다. 그렇게 상상 속에서 작가가 되고, 가수가 됐다. 꿈을 이룬 모습을 상상할 때 두 눈은 초롱초롱하게 빛이 났다. 하지만 그 시절 두 눈에 가득 찼던 푸른빛은 점점 흐려진다. 진학, 독립, 취업, 직장생활 등을 하면서 마주한 상처를 치유하기에도 바쁘다. 
 그렇게 꿈은 잊는 게 아니라 잃는 것이라는 것을 배운다. 미처 준비가 끝나지 않은 채 덜컥 세상으로 나온 청년들은 추운 사회에 잔뜩 몸을 웅크려야 했고, 오랜 시간 가슴 속에 품은 꿈은 점점 현실 속 조건과 타협해야 했다.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싶은 것이 전부인데, 거기엔 너무나 많은 지출이 따른다. 열정 하나면 순탄할 줄만 알았던 꿈은 매번 현실 앞에 멈춰 선다. 우리 사회는 청년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강요하지만, 마음 편히 꿈을 꾸기에 안락하지만은 않다.
 누군가는 아프니까 청춘이라 말하고,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속담도 있다. 하지만, 그 아픔을 견디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꿈은 예고편도 없는 미래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소중히 간직해온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려 나가는 청춘은 아름답다. 청춘은 바로 지금! 마음껏 꿈꿔라, 청춘들아!

이은교 수습기자 dldmsry11002@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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