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2022 카타르 월드컵으로 한창 시끄럽습니다. 웃고 울며 밤을 지새우곤 하지요. 우리 모두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코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전일 것입니다. 또한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정치·사회적 이슈도 있습니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새로운 시선을 갖게 합니다. 다시 말해 즐겁고 신나는 행사 이면에 각자가 안고 있는 문제를 꺼내 들어 전 세계에 알리고자 선포하는 장이라는 것이죠. 
 지난 원대신문 사설(2022.11, 제1416호)에서 이 주제를 다뤘습니다.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소수민족 차별에 대해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의 저항을 상징하는 행위, 그리고 인종차별에 대한 반대 목소리로서 콜린 캐퍼닉의 무릎 꿇기 행동이 있었습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잉글랜드 국가 축구대표팀이 경기 시작 전에 무릎을 꿇는 행동을 했습니다. 개최국 내에서 발생했던 이주노동자와 성 소수자의 인권탄압에 대한 항의 표시였습니다. 또한 상대편인 이란 축구 대표도 자국 내에서 벌어지는 인권탄압에 대한 저항으로 국가 부르기를 거부하는 장면이 실시간 중계가 됐습니다. 
 공은 둥글죠. 실력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의 매력은 타고난 재능보다 각고의 노력과 의지에 따라 행운을 안겨다 주기도 한다는 것이죠. 마셜 맥클루언이 분류한 미디어를 토대로 스포츠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미디어가 없는 관람 스포츠를 상상할 수 없으니까요. 축구는 쿨미디어 스포츠에 해당이 됩니다. 반면, 야구는 핫미디어 스포츠입니다. 전자는 고참여성(high participation), 저정밀성 (low defintion)이고, 후자는 저참여성과 고정밀성의 특징을 갖습니다. 즉, 축구는 룰이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역동적인 팀 스포츠이기 때문에 관람자들도 경기에 깊숙이 관여됩니다. 앉아 있을 수가 없지요. 하지만 야구는 룰도 복잡하고 정적인 스포츠로서 편안한 의자에 앉아 팝콘을 먹으며 관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에 응원하는 축구팀에 대한 동일화가 크게 작용해 패배했을 때 보다 더 안타깝게 느껴지고, 심지어 훌리건 난동도 일어나기도 합니다. 
 요즘, 정치가 사라진 우리 사회라고 표현하면 과한 것일까요? 말 그대로 나라를 다스리는 일입니다.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서로 간의 이해를 조정하는 역할인데, 요즘 우린 어떤가요. 최근 재야 뮤지션 노하(老河)가 부른 '부서지기 쉬운 작은 생선 다루듯 60'이 있습니다. 바로 2,600년 전 노자가 설파한 내용으로 나라를 다스릴 때는 개개인 한 명 한 명에 대해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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