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엘지비티가?" 지난 1월 공개된 웨이브의 오리지널 연애 프로그램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에서 한 남성 출연자가 여성 출연자에게 한 질문이다.
 프로그램이 공개된 직후 이 질문은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빠르게 오르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도대체 '엘지비티'가 무엇이길래 이러한 반응을 불러일으킨 걸까? '엘지비티(LGBT)'는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의 영문 첫자를 딴 단어로,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포용적인 단어다. 그간 일부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담아 사용하던 '동성애자' 등이 아니라, 혐오적 시선이 담기지 않은 엘지비티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러한 반응이 나온 것이다. 필자 또한 이러한 현상이 매우 반가웠다. 그래서 그런 의미로 '엘지비티'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모어>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이 영화는 지하에 있는 드랙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서, 세상에 탄원서를 시원하게 뿜어보는 것이 콘셉트이다. '드랙(Drag)'이란 '사회에 주어진 성별의 정의에서 벗어나는 겉모습으로 꾸미는 행위'이다. 영화의 주인공 모지민은 드랙 아티스트다. 발레리나이자 뮤지컬 배우, 안무가, 누군가의 자식, 친구, 연인, 성소수자, 드랙 아티스트, 끼순이 그리고 토슈즈 신는 미친X. 인간 모지민을 부르는 이름은 이렇게나 많다. 
 그리고 그 혹은 그녀는 스스로를 '모어'라고 부른다. '털 모(毛)'에 '물고기 어(魚)', '털 난 물고기'란 뜻이다. XY 염색체로 태어나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발레리노'로 합격했지만, 그는 사실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속엔 보여주고 싶어 하는 자신과 숨고 싶어 하는 자신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남들과 다른,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살기 힘들었다. 가족이 주는 부담과 사회적으로 눈에 띄지 말라는 문화 때문이다. 덕분에 모지민은 발레리노와 발레리나 그 어느 것도 되지 못했다. 편견이 가득한 사회적 시선에서 자유를 느끼기 위해서 이태원에서 춤을 췄고, 치열한 창작의 삶을 통해 자신의 예술적 길을 찬란하게 나아갔다. 그렇게 그는 드랙퀸에서 배우로, 다시 드랙퀸의 삶을 살며 이태원의 지하 클럽 '트랜스'에서 뉴욕 전위예술의 메카 '라 마마 극장' 무대에 서기까지 성장한다. 그저 당당한 자신이 되고 싶었던 것뿐었던 그의 마음과 의지는 그를 성장으로 이끌었다. 
 그 성장엔 비록 쓰라린 성장통이 따랐지만, 그의 곁엔 가족과 연인이 있었다. 누구보다 본인을 믿어주고, 함께 있어주는 그들 덕분에 그는 성장통을 이겨낼 수 있었다.
 광화문에서 드랙 아티스트 복장으로 춤을 추는 모지민의 모습이 나오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 속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라는 가사가 흘러나온다.
 "<모어>는 퀴어 영화 아닌 변방서 애쓰는 인간 모지민의 성장기" 주인공 모지민이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영화를 보고 필자는 이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낯설고 이질적이고 사회 어디에도 속하기 애매한 존재, 모어가 이 사회를 어떻게 살아가는지 영화를 통해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내가 원하지 않은 무기징역 불행" 모지민의 내레이션이 들리는 듯하다. 그렇다. 그들도 원했을까? 선택권은 아무에게도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래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큰 결과를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의 외침이 그 작은 목소리가 됐으면 좋겠다. "이 세상 어디에 있든 나는 나로서 살아갈 거야"고 말하는 모지민의 인생을, 사회에서 규정한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 나 자신을 찾길 원하는 사람들 모두의 인생을 응원하고 싶다.

  이은교 기자 dldmsry11002@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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