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名作)은 '이름난 훌륭한 작품'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닙니다. 명작을 권하기에 앞서 세상의 어떤 작품이 명작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그러다 문득, 피에르 바야르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서 언급한 "독서는 우선 비(非)독서라 할 수 있다. 삶을 온통 독서에 바치는 대단한 독서가라 할지라도, 어떤 책을 잡고 펼치는 그 몸짓은 언제나 그것과 동시에 행해지는, 그래서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그 역(逆)의 몸짓을 가린다."라는 말을 떠올립니다. 그가 말하는 '역(逆)의 몸짓'은 스스로가 무엇인가를 선택한 순간, 선택한 것 이외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명작은 세상의 모든 작품을 포기하면서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최근 제가 세상의 모든 책을 포기하고 선택한 한 권의 책은 강윤미 시인의 산문집 『마침내 우리는 같은 문장에서 만난다』입니다. 책의 겉표지에는 커다란 몬스테라가 심어진 화분 아래, 귤이 놓여 있습니다. 그 옆에는 어린 왕자가 책 제목인 <우리는 마침내 같은 문장에서 만난다>를 지그시 바라봅니다. 몬스테라, 귤, 어린 왕자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책의 끝에 다다르면, 어린 왕자 옆에 나란히 앉아 귤을 까먹으며 몬스테라의 갈라진 잎 사이로 들어온 햇살을 만끽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증명된 사실은 아니지만, 몬스테라의 잎이 갈라지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아랫잎에 햇빛이 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문득, 일상에 깃든 시적인 순간을 독자에게 전달해주는 시인의 마음이 몬스테라와 닮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윤미 시인은 육아를 시작하면서부터 시를 쓸 수 없어 불안했고, 아이들에게 온 마음을 내주는 동안 시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할 만큼 외로웠다고 고백합니다. 아울러 시를 쓰는 자신이 잊고 있던 산문이 자신의 손을 잡아주었다고 말합니다. 
 두 아이가 잠든 새벽에 책상에 앉아 천천히 쓴 『우리는 마침내 같은 문장에서 만난다』를 찬찬히 들여다봅니다. 책 속에는 제주에서 나고 자란 이야기, 시를 쓰기 위해 섬을 떠나 육지로 나온 이후의 삶, '자신의 다른 이름'이라고 일컫는 남편과 두 딸과의 일화 등이 담겨있습니다. 한 장, 그리고 빠르게 또 한 장을 넘기면서 서랍 깊숙이 숨겨 둔 일기장을 몰래 보고 있는 기분이 듭니다. 어떤 문장은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다 들킬 정도의 시간만큼 시선이 머뭅니다. 덕분에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보게 됩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사유가 몰려옵니다. 이는 한 시인이 견뎌야 했던 간절한 시간의 사유가 담긴 일상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책 속에 담긴 일상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언어를 마주하게 됩니다. "눈이 내리지 않는 겨울은 우는 방법을 잊어버린 외로운 사람의 얼굴 같다."(겨울의 질량), "우리는 다 자라서 어른이 됐지만, 어머니는 더 자랄 데가 없어서 외로웠을 것이다"(드라마와 국수), "누구에게 그 헛헛함을 고백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별들을 보고 밤바다를 보고 음악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밤공기는 누가 사랑했을까), "헤어지고 만나는 일은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고 시간이 허락해야 함을 깨달았다."(스무 살의 기숙사), "어떤 것들은 뒤늦게 도착한 편지 같다. 열지 못한 편지 안에 아직 스무 살의 봄이 있다"(봄에게 닿다), "밤은 내가 잠들지 않으면 밤으로 남을 것이다."(내가 사랑해서 밤은 아침이 되는 것을 잊고) 등의 문장과 사유는 독자를 시적인 순간으로 초대합니다. 독자는 시인의 언어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복기하면서, 공감하고 설레고,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는 마침내 같은 문장에서 만난다』를 읽는 내내, "섬을 떠나온 일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방랑이며 용기였다. 그때 몸에 남은 기운을 다 써버렸는지 이제 나는 어디로도 쉽게 떠날 마음을 내지 못하며 살고 있다"는 문장이 마음속에 맴돌았습니다. 섬사람이 뭍으로 나오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섬을 떠나온다는 것은 섬처럼 외로워지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감히 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로움에서 비롯된 그리움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산문을 읽는 내내 시를 읽는 듯 마음이 울렸습니다. 동시에 "귤밭을 보며 자란 아이가 귤밭이 없는 곳에서 오랫동안 그럭저럭 지내고 있"듯이, 저 또한 고향을 떠나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는 위안을 받기도 했습니다.
 삶의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분이라면, 세상의 모든 책을 포기하고 『우리는 마침내 같은 문장에서 만난다』를 선택하기를 권합니다. 명작이란 시대를 견딜 수 있을 만한 사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대를 초월하고 난 뒤에도, 그 감정이 오롯이 자기 감정으로 전이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명작입니다. 
 『우리는 마침내 같은 문장에서 만난다』는 한 시인의 고백을 넘어, 우리 모두에게 '엄마'라는 존재의 위대함을 깨닫게 해줍니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흘러도 '마침내' 변하지 않는 어떤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선물해 줍니다. 그 순간 우리는 마침내 같은 문장이라는 '명작'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박성호 교수(인문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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