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내를 활공하는 카이탁 발 민항기 / 사진: Flicker
홍콩 시내를 활공하는 카이탁 발 민항기 / 사진: Flicker

 하늘길이 다시 열렸다. 오랜만에 해외에서 이국의 문화와 공기를 마시고 새 학기를 맞이한 이들도 있으리라. 유난히 엄격했던 동아시아 각 지역의 록다운 해제는 한국을 비롯한 이 지역 전통의 관광지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근 삼여 년 동안 한산하던 인천국제공항은 드나드는 여행객들로 분주하다. 한국의 일본 여행객 숫자는 록다운 이전 수치를 빠르게 회복 중이다. 동남아를 찾는 여행객도 폭증했다고 한다. 거리를 걷다 보면 한동안 보기 어려워진 외국인 관광객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그래, 원래 이랬었지. 해외 방문이 자유로워지면서 다시 샘솟는 여행의 감각 그리고 거리에 보이는 외국인 관광객. 이제야 비로소 지긋지긋했던 팬데믹 시국이 끝나고 코로나 이전을 회복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난다. 
 그러나 록다운 해제 이후 이전과는 다른 현실을 마주한 지역도 있다. 바로 홍콩이다. 겨울 성수기를 맞아 한국, 일본, 대만, 동남아 관광산업이 다시 활기를 찾는 동안 홍콩을 찾은 관광객 숫자는 기대를 한참 밑돌았다고 한다. 세계를 상대로 '홍콩방문'을 홍보하며 공짜에 가까운 항공권 바우처를 발행하기까지 했는데도 말이다. 누군가는 항공권 바우처를 나눠주면서까지 관광업 부흥에 나서는 홍콩당국의 조처에 과도하다는 느낌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홍콩에서 민간항공에 기반한 국제관광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다. 식민지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홍콩의 가장 중요한 도시 정체성인 코스모폴리타니즘의 물적 근간이다.
 이십 세기 내내 홍콩은 아시아의 국제 민간항공 여객을 선도해온 명실상부한 허브였다. 이는 당시 국제여객 산업을 선도했던 영국과 미국 양쪽 이익에 부합하는 절묘한 홍콩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었다. 국제 민간 항공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1930년대였는데, 당시 이를 주도했던 나라는 거대한 영토를 기반으로 장거리 항공 노하우를 일찌감치 보유한 미국이었다. 미국은 당시 식민지였던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를 허브로 낙점하고 아시아 지역에 민간항공 기반을 쌓아나갔다. 이에 질세라 같은 시기 영국은 동남아 최대 항구였던 식민지 싱가포르를 대영제국 민간항공의 아시아 허브로 지정하여 민간항공 여객을 개시했다.
 싱가포르와 마닐라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시작된 아시아의 민간항공 여객 산업은 두 지역 중간에 위치한 홍콩의 항공산업 번영으로 이어졌다. 그 시작은 홍콩의 중심지 침사추이 옆에 마련된 작은 활주로인 카이탁이 영국과 미국이 각각 선정한 아시아 허브의 중간 기착지로 활용되면서부터였다. 카이탁은 싱가포르와 마닐라행 항공 여객에 더해 남중국의 막대한 항공 수요를 급속하게 흡수하면서 1940년대에 이르러서는 싱가포르와 마닐라를 넘어 아시아 민간 국제항공의 사실상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러다 세계 이차대전 이후부터는 싱가포르와 마닐라 기착지를 넘어 아시아 항공 여객의 허브라는 위상을 확고히 하였다.
 이후 카이탁은 아시아-유럽, 동남아-태평양을 연결하는 중심으로서, 이십 세기 내내 세계에서 항공 스케줄이 가장 빡빡하고 번잡한 공항이 되었다. 이는 지배계층인 영국인들의 항공 동호회에서부터 시작된 탓에 애초 국제항공 허브로서 부적합했던 카이탁 공항의 입지와 열악한 인프라 탓이기도 했다.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허브공항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내던 카이탁 공항은 1998년 홍콩섬 인근 란터우 섬에 챕락콕 공항이 건설되면서 폐쇄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카이탁 공항의 열악한 입지는 이십 세기 홍콩의 국제도시로서의 번영과 영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를 만들었다. 한 번쯤은 주거밀집 지역을 저공 비행하는 여객기 사진을 본 적 있을지 모르겠다. 이 이색적인 경관은 지난 세대 한국인들에겐 아시아의 개방적인 국제도시 홍콩에 대한 동경을, 오늘날 홍콩인들에게 지난날의 추억을 상징하는 풍경이다. 
 이십일 세기 이후 아시아의 국제항공 허브로서 홍콩의 위상은 예전만 못한 실정이다. 오늘날 아시아의 민간 항공산업은 홍콩이라는 하나의 허브로 연결되는 네트워크가 아니다. 아시아 항공 허브라는 패권을 놓고 인천국제공항, 싱가폴 창이공항, 북경의 수도공항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다극적 각축장이다. 홍콩의 첵랍콕은 여전히 아시아의 대표 허브공항이지만 그 위상은 이십 세기의 카이탁과 같이 독보적이지는 않다. 이십 세기에는 도쿄 외에 비교할 데가 없었던 아시아의 국제도시로서의 위상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아시아에는 서울, 싱가포르, 쿠왈라룸프르, 상하이 등 홍콩의 국제적 개방성과 코스모폴리탄 문화경관에 비견될 만한 대도시들이 많다.
 홍콩 관광산업의 축소는 온전히 코로나 때문이지는 않다. 1997년 중국반환 이후 누적된 홍콩 사회체제의 문제가 누적된 결과이다. 이십 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일국양제는 시진핑 집권 이후 점진적으로 축소되는 중이다. 이에 반발하여 분출된 홍콩 시위에 대해 중국당국은 '홍콩 보안법'을 밀어붙이는 권위적인 대처로 일관했다. 국제도시로서 홍콩의 위상이 추락하는 가운데 일어난 미중 갈등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홍콩의 국제적 도약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대내외적 조건 속에서 이루어진 홍콩당국의 항공권 바우처 지급은 관광 부흥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오래도록 유지해왔던 아시아의 코스모폴리탄 국제도시라는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특단의 조치인 것이다. 홍콩은 스스로가 처한 이 어려운 난국을 돌파하고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까.

〈참고문헌〉
*Thomas S Hale, "When Hong Kong stood still", Financial Times, March 17 2023.
*John D. Wong, Hong Kong Takes Flight: Commercial Aviation and the Making of a Global Hub 1930s-1998,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Asia Center, 2022.

 윤재민 교수(원광대 HK+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