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외교안보와 경제에 쓰나미 같은 위기가 덮쳐오고 있다. 위기가 다중적이고 복합적이어서 최고의 지혜를 발휘하지 않으면 쉽게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이 10여년 전부터 세계 패권 유지를 위해 중국을 견제·봉쇄해 오다가 트럼프 시절 교역 규제와 각종 제재를 가했고 바이든 행정부는 이에 더해 인권과 자유를 내세워 반중 봉쇄 진영을 구축하면서 투자를 제한하고 공급망 규제를 강화해 대립구도를 확대·심화시키고 있다. 미·중 사이에 낀 한국은 국가전략에서 선택적 기로에 처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작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국과 서방이 단합해 러시아에 누적적으로 제재를 가하고 한국도 참여하자 러시아는 한국을 비우호국가로 지정했다. 북한은 서방과 중러과의 갈등구도 심화를 오히려 국가전략의 기회로 삼아 이 두 강대국을 비호세력으로 삼아 지속적으로 핵 무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작년 4월에 전쟁 초기에 핵무기로 공격하겠다는 핵 독트린을 내놓고 9월에는 이를 법제화까지 했다.
 경제 문제도 심각하다. 우크라이나 전의 여파로 공급망이 교란되고 물가가 상승한데다 미국의 대중 디커플링 정책이 공급망 혼란을 더 촉진하고 있으며 미국의 급속적이고 대폭적인 이자율 인상은 전세계적인 고금리를 초래하고 있고, 환율도 크게 상승했다. 더구나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적 산업 보호정책을 펼쳐 한국의 주력 제품인 반도체와 전기차에 차별적인 불이익을 주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 원인과 국제질서의 변화를 살펴본 뒤 한국의 외교안보 대응전략을 살펴본다.

폭격을 맞아 무너진 아파트 단지 / 출처 : 인사이트
폭격을 맞아 무너진 아파트 단지 / 출처 : 인사이트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원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원인은 제반 분야에서 다양하다. 러시아에 우크라이나는 역사·문화·종교에서 중첩되고 지정학적으로 사활적 위치에 놓여 있으며 장기 집권 중인 푸틴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애국주의를 내세우면서 소련 시대의 유라시아 제국을 재건하는 꿈을 펼쳐왔는데, 인구, 경제력, 자원 등에서 이에 필수적인 협력국가라는 점을 우선 들 수 있다. 국제정치적으로는 독일 통일시 미국과 서방은 동독에 주둔한 37만명의 소련군을 철수시키기 위해 동독과 동구지역은 중립 완충지대화 하기로 약속했는데, 나토는 이를 어기고 동구에 이어 발트 3국 등 구소련지역까지 동진했다. 이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나 그루지아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고 경고해왔는데 나토 가입이 맹렬히 추진되므로 침공을 감행한 것이다.
 또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정치 기반이 약해 과반수 국민의 열망인 나토와 EU 가입을 선도해왔는데, 가입 필수조건인 분쟁 중단과 부패 척결은 하지않고 러시아와의 평화를 약속한 민스크 협정을 어겨 러시아와 대립하면서 나토 가입을 노골적으로 추진하다 침공을 자초한 셈이다.
 미국은 전쟁 발발 방지에 소극적이었다. 러시아의 침공 징후를 파악하고도 제재만 가할 뿐 군대 파견은 없다면서 전쟁 발발을 사실상 방치했다. 마치 전쟁이 상당한 전략적·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줄 것을 계산한 듯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국제질서 변화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제질서를 신냉전적 구도로 몰아넣고 있다. 유럽의 일부가 러시아에게 침공당하자 유럽국가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동맹인 나토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지원과 대러 제재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국가들에게 강력히 요구했지만 실패했던 방위비 증액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 덩달아 일본 역시 5년 내에 방위비를 두 배로 증액하겠다고 나섰다. 2차대전 전범국으로 방위비 증액을 자의반타의반으로 자제했던 독일과 일본이 신속히 군사강국화하고 있다. 나토는 미국의 주도에 따라 러시아를 적국으로 지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중국도 미래의 안보위협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지구 전체의 군사화가 진행되고 중러 대 미국 및 서방의 진영 간 대립구도가 보다 명확해졌다.
 그렇지만 현 세계 질서를 냉전으로 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군사안보 대립은 냉전과 유사하지만 냉전과는 확연히 다른 점들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는 국제질서가 다극적 경쟁 및 협력 상황이다. 작년에 미중 교역이 역사상 최대였고 중국과 EU 간에도 중러 간보다 8배 정도의 교역이 행해지고 있으며, 동맹관계인 미국은 한국에게 전기차와 반도체 부문에서 큰 시련을 주고 있다. 더구나 대러 제재에 동참하는 국가의 GDP를 더하면 세계 GDP의 55% 정도이지만 인구는 36%에 불과하다. 특히 미국과 우호관계를 가지지만 대러 제재에 불참하는 소위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로 불리는 많은 나라가 건재하다. 인도,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레이트, 튀르키예,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거의 모든 나라와 싱가포르를 제외한 아세안 국가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처럼 미-서방 대 중러 간 대립 속에 국제정치의 다극화와 다원화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에서 누가 이득을 보고 있는가?
 국제정치의 불공정성을 확인해주듯이 전쟁의 이득은 강대국들 차지이다. 먼저 패권국 미국은 노심초사했던 대유럽 장악력을 확보했다. 패권 유지의 관건인 중국 견제에 유럽의 합류가 필요했는데, 우크라이나 전을 통해 중국이 러시아 편임을 보여주어 작년 6월 말 나토 정상회담에서 중국을 안보 위협국으로 각인시켰다. 경제적으로도 세계 무기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미국 업체들이 막대한 수익을 누리고 있고 판로를 모색 중이던 셰일가스업체들은 갑의 위치에서 유럽으로 수출하고 있다.
 중국도 상당한 혜택을 보았다. 중국 견제를 제1 목표로 삼아온 미국의 관심이 러시아 쪽으로 분산되었고, 부족했던 원유와 가스, 식량을 러시아로부터 할인된 가격으로 종전보다 더 수입해 국내 물가를 안정시키고 큰 수익을 챙겼다. 서방이 철수한 러시아 시장도 중국이 손쉽게 접수하고 있다. 인도도 종전보다 세 배 이상의 원유를 할인된 가격으로 수입해 재수출함으로써 막대한 차익을 누리고, 전략적으로는 미국의 구애를 받으며 쿼드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한편, 중국 및 러시아와는 BRICS와 상하이협력기구(SCO) 차원에서 협력도 지속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황이 소모적 장기전 국면으로 접어든 상황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 철군 여부로 타협이 불가능한 가운데 전쟁에 영향을 미칠 미국과 중국, 인도 등이 이득을 보고 있다면 이 전쟁이 조만간 끝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국의 외교안보 전략
 한국의 외교안보에 쓰나미 같은 위기가 몰려오고 있는데, 정부는 현 국제질서를 쉽고 간편하게 신냉전 질서로 규정하고, 북한,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는 방기해도 미국과 일본과의 관계 강화에 열중하면 국제 위기를 극복하고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전략을 펴고 있는 것 같다. 중첩되고 복잡다단한 과제들을 냉전적 이념 구도를 통해 보면서 마치 옳고 그름과 너편 내편을 가려 쉽게 해결하겠다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미 북한과는 정부의 정면 대결 불사의 단호한 의지가 전달되어 남북 대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고 자칫 우발적 국지전이라도 벌어질 형편이다. 미 바이든 행정부도 8년간 북한과 대화 한번 해보지 못한 오바마 행정부 시절의 '전략적 인내'와 유사한 기조의 대북정책을 펼쳐 북미 대화 가능성은 거의 보이지 않고 큰 위기를 거치지 않고는 대화가 어려워 보인다. 정부의 대미, 대일 편향정책은 자연스럽게 불편한 한중관계로 이어지고 있다. 단지 중국이 아직은 우리에게 추가 제재를 가하거나 직접적인 위해행위는 자제하고 있지만,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사드 배치가 정상화되고 미국이 주도하는 칩4 연합이나 IPEF에서 반중적 합의가 도출되거나 한미일 안보협력이 중국에 위협적으로 강화된다면 중국이 더 이상 참지 않을 수 있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비책은 있는지도 우려스럽다. 러시아도 한국을 비우호국가로 지정했다. 우리가 아직까지 우크라이나에 인도주의적 지원만 제공해왔지만 미국과 나토는 지속적으로 한국에게 탄약이나 공격용 무기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에 푸틴은 작년 10월 한국이 그렇게 한다면 한러관계는 파탄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강제징용에 대해 일본의 사과나 가해 기업의 배상없이 일본을 방문해 사실상의 면죄부를 주어 논란을 야기했다. 더구나 안보를 강화한다는 명분 하에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복원 없이 지소미아를 복원했는데, 이 또한 우리의 안보 이익보다는 일본의 안보에 더 큰 이익이 되고 자칫 한국이 북중러를 막는 전초병이 될 수 있는 조치를 섣불리 취한 셈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대북 억지력 확보를 위해 미국의 전략 폭격기가 한번 방문하고 돌아가 일년 중 350일 이상을 북한의 핵 위협을 우려해야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시적인 확장억지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방안을 미국에게 얻어내야 한다.
 또한 대북 강경 및 대미, 대일 일변도정책의 실패를 북한의 중대 도발로 만회하려 하지말고, 북한의 도발을 사전에 예방하고 억지하는 것이 정부의 소명임을 자각해 북한과의 대화와 호혜적인 협력을 가동하며 북한의 도발 의지도 관리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도발할 경우에도 북한 탓만 하지말고 이를 막지 못한 정부의 책임도 크다는 것을 자각해야 하고, 도발 시 피해를 최소화하는 만반의 대비도 사전에 해야 할 것이다.
 한편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가 우호적이지 않으면 북핵문제 해결,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북한의 급변사태 시 원활한 수습, 평화통일 등 한국의 중차대한 외교안보 과제 해결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신뢰에 의거한 호혜적인 한미동맹, 적절한 한미일 안보협력과 함께 우호적인 한중 및 한러 관계를 회복해 외교의 균형을 회복하고, 미래 안보 과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게 해주는 우호적인 국제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전국립외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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