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매독은 영국사람들에게 프랑스 발진으로 불렸고,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독일 질병, 플로렌쯔사람들에게는 나폴리 질병, 일본인들에게는 중국 질병으로 불렸다."

 

 수전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에』에서 "상상된 질병은 상상의 타자 또는 외부의 영역과 결부된다."고 썼다. 질병은 알 수 없는 먼 곳에서 도래하는 천벌이다. 그래서 인간은 질병을 은유한다. 치료가 어려운 병일수록 질병은 추악함과 타락의 징후를 암시하는 용어와 결합된다. 염병(장티푸스), 병신(병든 신체), 지랄(간질), 문둥이(나병)처럼 질병에 대한 공포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욕설에도 흔적을 남겼다.
 질병은 '신의 분노'라는 은유의 역사 또한 깊다. 그리스 최고의 대서사시 『일리아스』는 그리스 진영에 역병이 도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가멤논이 신관 크리세스의 딸을 취한 것에 대한 아폴론의 보복으로 역병이 창궐한다.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 왕』역시 테베에 역병이 도는 것으로 시작한다. 부친을 살해하고 어머니와 동침한 오이디푸스의 불결함을 정화 하는 것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다. 이처럼 질병에 대한 인류의 서사는 속세의 타락과 강하게 결부된다.
 인간의 타락과 질병의 상관성은 끊임없이 은유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 『은유로서의 질병』은 질병을 질병으로 바라보지 않는 우리의 왜곡된 사고와 언어를 밑바닥까지 추적한다. 결핵, 암, 에이즈와 같이 근대 이후 적절한 치료법이 개발된 질병 역시 꾸준히 은유되었다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질병은 나와는 무관한, 타락한 곳의 타락한 인간들이 만든 불행이다." 코로나 시대를 힘겹게 지나온 우리가 성찰해 봐야할 문제다. 코로나는 중국의 어느 도시, 불결한 어느 시장바닥에서 창궐해 흘러들어왔고… 대구에서, 특정한 종교 집단에서 코로나가 몰래 증식했다고 여기저기에서 떠들어댔다. 코로나는 중국, 대구, 신천지와 같이 나와는 무관한 곳에서 창궐했다고 우리는 생각했다. 지금도 변함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수전 손택

 

 하지만 옆집에 사는 불량한 중학생이 코로나에 걸렸다는 사실에 옹졸하게 분노했던 것에 대해서 우리는 잊고 있다. '평소에 행실이 바르지도 않고 조심성 없이 돌아다니더니 몹쓸 병에 걸렸지'하는 원망과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부모형제가 코로나에 걸리고 나니 옆집의 중학생이 '불량학생'이라는 생각은 좀 과했던 것 같다. 코로나의 후유증은 기침, 가래, 무기력과 같은 것이 아니다. 질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혐오, 타인에 대한 차별이다.
 이처럼 타자를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것이 『은유로서의 질병』의 주된 문제의식이다. 질병에 대한 은유가 정치적,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됐던 사료가 제시되며 이 책은 더욱 빛을 발한다. "유대인은 암적인 존재다"라는 나치의 선전 문구는 질병에 대한 은유의 위험성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실제로 암의 이미지는 그들의 목적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것이었다. 1930년대 내내 '유태인 문제'를 둘러싸고 나치가 각종 연설에서 떠들어댔듯이,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 부위에 있는 건강한 조직의 상당부분을 잘라내야만한다. 나치는 암의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결핵에 어울리는 '부드러운' 치료법과 대비되는 '발본적인' 치료법을 제시했던 것이다."

 1930년대 당시 나치는 유대인을 결핵과 암이라는 질병으로 은유했다. 결핵은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치료가 가능하지만, 암은 썩은 조직을 뿌리부터 도려내는 근본적 시술이 행해져야 한다. 나치가 유대인을 암적인 존재로 은유하고 난 이후에 벌어진 일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수전 손택은 다음과 같이 썼다. "암의 은유야 말로 최악의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암의 은유는 잠재적으로 집단 학살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군사적 은유는 타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궁극적인 모습이다.  
 『은유로서의 질병』은 코로나 후유증에 대한 처방이다. 이 책은 타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어떠한 맥락 안에서 은유되고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질병에 대한 왜곡과 은폐, 은유는 늙고 병드는 것을 삶의 배후로 내몰고 우리를 더 고독하게 한다. 로마에서는 개선장군의 행렬 맨 앞에 노예를 앞세워 이렇게 외치게 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그들은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조차 죽고, 늙고, 병드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늙고 병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질병은 질병일 뿐이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다. 

 

서덕민 교수(자율전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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