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시절, 그냥 친구가 좋았다. 매일 만나도 지겹지 않았고 특별한 이벤트도 없었지만 마냥 즐거웠다. 밥처럼 물처럼 공기처럼 자석처럼 맨날 쉬지도 않고 함께 어울렸다. 여기저기 쏘다녀도 전혀 지치지 않았다. 정말로 살맛났다. 얼른 내일이 왔으면 하고 바랬다.
 그러던 어느 날 약속장소에서 두 시간을 넘겨가며 하염없이 기다렸지만 친구는 인기척도 없었다. 세상에 휴대전화라는 게 없던 때라서 친구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한편으로는 불쾌했고 또 한편으로는 염려됐다. 맥 빠진 걸음으로 터덜터덜 귀가했더니 친구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부고가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친구의 신용 없음에 불평불만을 늘어놓던 그 시간, 참사현장은 그곳에서 멀지 않았다. 나를 만나러 나선 도중에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로 황망히 떠나버린 게 분명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안실이라는 곳에 가봤다. 문상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그냥 영정사진만 한없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눈물만 훔치고 돌아섰다. "너 때문에 귀하디 귀한 내 아들이 죽었다"고 책망하실까봐 두려워서 친구 부모님께는 아무런 말씀도 못 드렸다. 비겁했지만 정말이지 무서웠다.
 그때까진 죽음이란 것을 별로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돈 많이 주는 직장에 취업한 다음,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한 뒤, 토끼 같은 아들딸을 낳고 기르면서 나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다그치며 뒷바라지하는 게 인생의 돌고 도는 수순이라고 막연한 꿈을 꾸며 그럭저럭 살아갔다.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솔직히 친구의 죽음이 실감나진 않았지만 그때부터 죽음의 문제가 성큼 다가와서 두렵게 느껴지기 시작한 건 분명했다. 바꿔서 생각해보면 내가 죽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언젠가 어머니께서 "내가 너를 낳은 게 아니라, 낳고 보니 너였다"고 해주셨던 말씀을 곱씹어봤다. 과연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삶을 마감하게 될 것인지 궁금해졌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닐뿐더러, 살고 싶어서 사는 세상도 아닌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른다니 너무 답답하고 억울해졌다. 더군다나 죽은 뒤에는 어찌 되는지 알 길이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노릇이었다.
 어두컴컴한 방에 홀로 오도카니 앉아있는 나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던 어머니께서 원불교 경전을 펼쳐서 건네주셨다. 그 구절은 이랬다. 「불법(佛法)은 천하의 큰 도라 참된 성품의 원리를 밝히고 생사의 큰일을 해결하며 인과의 이치를 드러내고 수행의 길을 갖추어서 능히 모든 교법에 뛰어난 바 있느니라.」(『대종경』, 제   1 서품 3장) 「사람의 생사는 비하건대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것과도 같고,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하는 것과도 같고, 잠이 들었다 깼다 하는 것과도 같나니, 그 조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치는 같은 바로서 생사가 원래 둘이 아니요 생멸이 원래 없는지라, 깨친 사람은 이를 변화로 알고 깨치지 못한 사람은 이를 생사라 하느니라.」(『대종경』제9 천도품 8장) 검은빛 바다에 휘청대는 밤배에게 한줄기 빛나는 등대와 같은 말씀이었다. 그리고 내가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에 진학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종경』은 원불교의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박중빈, 1891~1943)의 언행록이다. 1962년(원기47)에 완정한   15품 547장의 법문이 316쪽에 담겨져 있다. 우리대학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원불교 개교정신에 바탕하여 과학과 도학을 겸비한 전인교육으로 새 문명사회 건설의 주역양성을 건학의 기본정신으로 한다. 따라서 소태산 대종사의 가르침을 쉽게 배울 수 있는 『대종경』을 반드시 읽어보기를 정신개벽의 주역인 모든 원광인들에게 권한다. 좋아요! 구독!

 

고시용 교수(원불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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