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경찰청
사진 : 경찰청

 치안은 국가가 주체인 국민을 얼마나 잘 보호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공식적 지표다. 한 국가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적용할 정도로 치안은 만인에게 중차대한 잣대로 작용한다. 우리나라 역시 치안수준이 높다고 알려진 국가로 판명받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들로 그늘이 생기고 있다.

극악범죄의 파도
 지난달 21일, 서울 신림역에서 다수 전과가 있던 '조선'에 의해 4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칼부림 사건이 발생했다. 이어서 8일 경기도 AK플라자 소재 서현역에서 조현병을 앓던 '최원종'에 의해서 차량 돌진·칼부림 사건이 벌어져 14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치안이 높다고 정평난 국가에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범죄가 일주일도 안되는 간격을 두고 백주대낮에 연달아 벌어졌다는 사실에 세간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었다. 
 서현역 사건 이후 SNS를 소재로 시민들을 대상으로 칼부림을 하겠다는 살인예고가 다발적으로 대량발생했다. 검거된 인원만 하더라도 수사 중인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지난   8일 기준 최소 67명으로 밝혀졌고, 전국적으로 범행 미수 및 흉기 소지범 검거 소식까지 연달아 국내외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시민들의 공포와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인터넷 쇼핑물에서 호신용품 구매량이 급증하고 구매 문의가 늘었다. 물론, 강력범죄는 지금껏 시대를 막론하고 발생했지만 이렇게 단기간 내에 살상과 대량 살인예고가 함께 동반된 경우는 극히 드물었던지라 치안 우려로도 이어져서 범국가적으로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

악의의 근원
 그렇다면 이같은 극악범죄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세대 프로파일러로 활동한 표창원 소장(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은 현 상황에 대해 '인간 소외와 미디어로 축적한 폭력적 성향이 사회 불만과 서로 합쳐져 발생한 극도의 표출 현상'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역시 "미디어나 사회 활동 등으로 쌓은 분노, 언론으로 접한 다른 사건을 통한 자극, 모방을 통해 과시하고 싶은 욕구 등을 근거로 뽑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략적으로 종합해보면 인간 소외와 삐뚤어진 과시, 미디어를 통한 폭력성 자극 등이 일련의 사태들을 크게 촉발시킨 근원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이건 어느 범죄사건에도 적용되는 이론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인명피해에 그치지 않고 치안 붕괴에도 이어진다. 
 일련의 사건들 이후, 경찰청에선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하며 대응에 나섰지만 시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민들끼리 살해예고 지역 지도를 따로 만들어 피해 다니거나 호신용품을 구비하는 등 자체적 대응에 여력을 쏟고 있고 이마저도 걱정스러워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를 모방한 연쇄범죄와 허위예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치안 병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 상태나 다름없다. 물론, 치안은 범죄 혐의자 검거율도 포함되지만 해당 국가 국민들이 범죄로부터 느끼는 안전감도 내포돼 있다. 그 내포감이 붕괴된 시점에서 치안은 사실상 붕괴된 것이다. 붕괴된 치안으로 잠재적 위험에 처한 시민들이 느낄 무한한 공포,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의문스러운 대목이다.

우리의 안전
 여러 살인사건이 연쇄적으로 터지면서 국민적 공포와 불안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최근 쇼핑몰 검색순위 1위가 전기충격기, 후추 스프레이, 삼단봉 등이 될 정도다.
 20~30대를 중심으로 외출을 삼가거나 지하철역 등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을 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신림동에 이어 '분당 흉기 난동' 사건 이후 온라인상에서 이와 비슷한 범행을 저지르겠다는 글 10여 건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살인 예고 글 작성자를 조속히 검거, 살인예비죄를 적용해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또한, '묻지마 흉기 범죄'에 강력하게 대응하기 위해 '가석방 없는 종신형' 신설을 추진하기로 했다. 최근 불특정 시민을 대상으로 흉기 난동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 것을 계기로 이른바 '묻지마 테러'에 대한 처벌을 보다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법무부는 지난 4일 "흉악범죄에 대한 엄정 대응을 위해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을 형법에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법원이 흉악 범죄자에게 '기한이 없는 징역형'을 선고했음에도 향후 가석방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런 법 집행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들려 왔다. 이에 따라 법조계에선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즉 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제기돼 왔다. 다만 일각에선 "절대적 종신형 제도가 흉악범죄를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아울러 '현상'뿐 아니라 '원인'에 대한 대책 마련에도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공공장소에서의 잇단 칼부림 사건은 사회 곳곳의 건강이 심각하게 무너졌음을 반영한다. 신림동 사건 용의자는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분노형 범죄였다. 서현역 사건의 용의자는 피해망상을 보였고, '분열적 성격 장애'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 교사 습격 사건은 면식범에 의한 원한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후위기로 기온이 높아지면, 사회 소요 발생 빈도가 높아진다는 해외 연구들도 눈에 띈다. 정신건강을 체크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도 필수적이다. 우선 여러 사건의 개별적, 구조적 원인을 파헤쳐 우리 사회 어느 부분이 병들어 있는지 정확한 진단부터 해야 한다.

배성민 기자 aqswdefr3331@wku.ac.kr
이민서 기자 leeminseo1207@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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