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오늘날 한국 사회는 문화적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여기에는 한국 대중문화의 세계적인 확산이라는 배경이 있습니다. 2004년 무렵, 일본에서 방영된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는 일본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주연배우인 배용준은 일본에서 대스타가 되었습니다. 당시 많은 한국인들은 일본이 한국 드라마와 연예인에 열광하고 있다는 사실을 신기하고 놀라워했습니다. 이때부터 한국에서는 일본에서의 한류 드라마 확산 나아가 동아시아에서의 한류 열풍에 관심을 가지며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드라마, K팝 등이 중심이 된 한류는 중국과 동남아는 물론 BTS를 기점으로 미국 등 비아시아 지역에까지 펴져 나갔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1990년대의 상황을 기억하는 70년대 생 이상의 세대의 경우, 이러한 현상을 더욱 놀랍게 느낄 것입니다. 그들은 1990년대에 동아시아를 주름잡던 일본의 대중문화가 한국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뚜렷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한국은 일본 대중문화의 수입을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만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J팝, 게임 등 일본의 대중문화는 합법과 불법을 가리지 않고 한국으로 유입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사회는 한국이 문화를 개방할 경우, 일본의 대중문화가 한국을 잠식할 것을 크게 걱정했습니다. 가령 『경향신문』의 1995년 8월 15일자 기사는 우리 사회가 방송 프로그램, 광고, 가요, 만화 등 문화적인 거의 전 영역에서 일본 문화를 베끼고 있다고 지적하며, 한국이 일본의 문화 식민지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당시에 퍼져있었던 반일 정서 그리고 정치·경제·문화 등에서의 일본 경계론과 함께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그중에서도 만화는 특히 위태로운 영역으로 꼽혔습니다. 이미 1980년대 후반에 만화 〈드래곤볼〉(1984)이 정식 수입된 이후, 일본 만화는 불법과 합법을 가리지 않고 대량 유입되어 한국 만화 시장을 잠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일본 만화의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대응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한국형 애니메이션의 제작이었습니다. 당시 일본 만화는 높은 퀄리티로 인기를 얻고 있었고, 이것은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극장 혹은 TV시리즈로 방영되고 있었습니다(물론 오늘날에도 그렇습니다). 이것을 보고 한국에서도 높은 퀄리티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대작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이를 히트시켜, 단시일 내에 한국의 만화 및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끌어올리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깔린 것이었습니다.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과 〈남벌〉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과 〈남벌〉

 그 결과 〈블루시걸〉(1994), 〈돌아온 영웅 홍길동〉(1995), 〈아마겟돈〉(1996),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1996) 등의 대작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아기공룡 둘리 '얼음별 대모험'〉을 제외한 대부분의 작품은 흥행에 실패했음은 물론, 관객의 평가도 좋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는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1992), 〈오! 나의 여신님〉(1993),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 등이 제작·방영되고 있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비해 별로 재미가 없다고 느낀 것이었지요. 위의 애니메이션 외에도 1990년대에는 다수의 극장용, TV시리즈의 국산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습니다만, 일본 만화 및 애니메이션의 인기를 꺽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의 만화가 및 제작자들이 좌절감과 위기감을 느끼게 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1993년 11월 만화가 김형배는 '한국 만화의 살 길은 무엇인가'라는 세미나에서 2000년대 한국 만화의 앞날을 "한 마디로 절망적"이라고 토로했습니다. 또 1998년 일부 젊은 만화가들은 「8·15코믹스」 시리즈를 출간하며 일본 만화에 대응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 만화는 한국 만화 시장을 석권했고, 그 결과 한국 만화 시장은 성인 대상의 극화 만화·일부 순정만화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본 만화에 의해 잠식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당시 만화가들이 느낀 위기감은 매우 현실적인 걱정이었던 셈이지요. 
 한국 내에서 일본 만화 및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던 때는 아마도 1997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때 한국은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과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에반게리온 극장판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진심을, 너에게〉(1997)가 새롭게 공개되자 사람들은 또다시 열광했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은 느꼈을 것입니다. 한국이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따라잡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입니다. 스토리 전개, OST, 작화, 연출, 고증 등.
 그 결과 한국 사회는 언젠가 문화를 개방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일본의 대중문화가 한국에 더욱 많이 유입되어 만화 및 애니메이션은 물론 영화, 드라마, 음악, 패션, TV콘텐츠 등 대중문화의 거의 전 영역을 잠식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렇기에 1998년에 출범한 김대중 정부가 단계적으로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한다고 발표했을 때,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아직 한국 대중문화의 경쟁력이 약하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정부는 개방을 시작했고, 이후 단계적으로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한국 대중문화 잠식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한국은 대중문화를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드라마, 영화, K팝, 패션, 웹툰, 예능 콘텐츠 등 말입니다. 
 특히 웹툰의 경우가 주목할 만합니다. 한국의 만화 시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웹툰을 중심으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웹툰은 초기에는 국내에서만 인기를 끌었지만, 나중에는 네이버, 카카오를 통해 세계로 뻗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과거에 어른들은 젊은 세대가 일본 만화 보는 것을 우려했지만, 바로 그 세대가 지금은 작가가 되어 웹툰 문화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경우에는 여전히 일본이 한국보다 뛰어납니다. 그러나 한국의 웹툰은 주로 드라마로 제작되어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로 펴져 나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더이상 일본의 한국 대중문화 잠식에 대해 걱정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일본 대중문화를 걱정했던 1990년대는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2023년이 되었습니다. 약 30여 년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여전히 한국 사회는 많은 문제점과 갈등을 안고 있습니다. 특히 1945년 이후 여전히 분단 상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문화적으로는 온전히 독립된 나라, 심지어 문화강국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앞으로 한국의 대중문화가 어떻게 발전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의 삶, 우리의 마음이 윤택해지는 만큼 문화도 더욱 윤택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윤현명 교수(원광대 HK+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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