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칸타 교수는 우리대학 약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네팔 국립대학인 카트만두 대학교에 약학과 교수로 임명됐다. 또한, SCI(국제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에 논문이 7개가 실리기도 했다. 국경을 넘나드는 교육 정신으로, 약학대학생들의 교환학생 프로그램 우리대학과 카트만두 대학의 교류 영역을 확장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이번 〈원대신문〉에서는 교육의 소중함과 다양한 문화를 경험한 라마칸타 교수의 견문과 교육 가치관을 소개한다. /편집자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나마스테! 안녕하세요. 네팔에서 온 라마칸타 교수입니다. 저는 네팔 포카라 대학에서 약학 과정을 수료하고, 약사 겸 강사로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한국에 와서 우리 대학 약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카트만두 대학교에서 약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국에 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한국에 온 지는 13년 정도 됐습니다. 네팔에서 학사 과정을 마치고, 강사로 일하다가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한국에 오게 됐습니다. 일본과 한국 중 한 곳을 정해야 했는데, 일본으로 가려면 지인 교수가 있어야 했어요. 하지만 한국에는 그런 제도 없이 입학이 가능해서, 한국에 있는 대학교 중 약학과가 있는 우리대학에 오게 됐습니다.

 포카라 대학에서의 생활과 우리 대학에서의 생활이 다른 점이 있나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차이가 많습니다. 포카라 대학은 그 당시에 기숙사가 없었어요. 지금은 생겼지만, 그마저도 여자 기숙사뿐이에요. 그래서 집에서 통학을 했어요. 우리 대학에서처럼 기숙사 생활을 안 했었죠. 또, 포카라 대학은 행사가 거의 없었어요. 방학도 짧았고요. 한국처럼 MT 같은 문화가 없고 대신 신입생 환영파티를 했어요. 그리고 우리 대학에 와서 객관식을 처음 접했는데, 그 문제 방식이 신기했어요. 네팔에선 모든 시험이 주관식으로 이뤄졌었거든요. 졸업하는 학기에 프로젝트 연구를 해야 졸업이 가능했습니다. 또 다른 점은 우리 대학은 자원봉사 활동이 많다는 것과 방학이 길다는 것입니다.

 우리 대학에 와서 적응하는 데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려면 한국어 기초 시험에서 3~4급을 취득해야 입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입학하지 못해 어학원에 다니면서 기초 시험공부를 1년 동안 준비했는데요, 이 과정이 좀 힘들었습니다. 언어에 대한 장벽이 아무래도 컸던 것 같아요. 한국어로 수업을 듣고, 한국 학생과 이야기하고, 통화를 할 때 원활한 소통이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또, 힘든 점은 음식이 입에 안 맞았다는 것인데요, 한국에 오고 초반에는 기숙사나 학생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서 적응하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먹다 보니 한국 음식과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적응이 많이 됐지만, 여전히 힘든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제가 종교 문제 때문에 소고기를 못 먹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일화가 하나 있는데, 정부가 주관하는 유학생 모임에 갔어요. 그날 점심으로 소고기 요리가 나와 종일 쫄쫄 굶었어요. 한국에 소고기 요리가 은근 많아서 이 점은 아직도 힘드네요. 반대로, 학교에는 적응을 잘했어요. 우리 대학이 원불교 재단 학교잖아요. 네팔엔 많은 종교가 있는데 보편적인 종교가 불교에요. 그래서, 우리대학에 왔을 때 어색하기보다 친근했던 것 같아요. 교무님들과 명상도 하면서 좋은 시간을 많이 보냈던 기억이 나네요.

 학위 취득 과정 중 인상적인 일화가 있나요?
 먼저 교수님, 학과 동기들과 실험에 쓸 식물을 채집하러 갔던 일이 생각이 납니다. 학교에 있는 도로 근처에서 약용 식물을 캤을 때, 재밌었어요. 네팔에서 대학 다닐 때가 생각나기도 했고요. 또 기억에 남는 일은 후배의 실수로 연구실 싱크대가 넘친 사건이에요. 비닐 소재를 녹여버리는 유기화학 용매가 있는데, 후배가 그것을 연구실 싱크대에 부어버려서 싱크대가 조금 녹았어요. 그 상태로 수도꼭지를 제대로 잠그지 않아서, 다음날 실험실에 갔을 때 물난리가 나버렸어요. 그래서 연구실에 있던 모두가 넘친 물을 치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황당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재밌는 추억이네요. 마지막으로, 한국말로 졸업 발표를 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학생 때는 한국말이 서툴고 어려워서 영어로 졸업 발표를 했는데, 석사 졸업 발표 때는 한국말로 발표했어요. 서툴긴 했지만, 성장해가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우리대학 약학대학 석사 및 박사과정 중 한국 정부와 지자체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료시켰다고 들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과제물은 무엇이고, 그 이유가 어떻게 되나요?
 봉독에 관련된 과제입니다. 봉독은 약에 대한 재료로 많이 사용합니다. 관절과 뼈에 많이 쓰이고, 꿀벌 침(벌침)을 사용합니다. 벌침만 따로 빼서 연구실로 보내주는 업체에 의뢰하면 벌침만 빼서 연구실로 보내줍니다. 봉독은 여러 가지의 알레르기가 있어요. 받은 벌침에서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성분을 제거하고, 약으로 사용될 수 있는 성분을 채취해 주사와 약으로 사용해요.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뼈와 관절이 약해지는데 이를 바탕으로 알러지 반응을 없앤 봉독을 뼈와 관절에 주입해서 사람에게도 좋은 효과를 주고, 약과 주사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연구해서 만들었습니다. 이 과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실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약을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다른 과제들은 성분 채취에 그쳤는데, 이것은 약이라는 결과물을 얻어서인지 애착이 더 가네요.

 SCI 논문으로 등재된 것이 7개나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논문을 썼는지 궁금합니다.
 SCI는 국제학술논문 데이터베이스로, 과학기술분야 학술지 중 기여도가 높은 학술지를 뜻합니다. 감사하게도, 제 이름이 들어간 논문 7개가 SCI 논문으로 선정됐습니다. 제가 SCI 논문 7개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실험 결과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물론, 좋은 결과도 논문에서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여러 가지 방법과 과정으로 연구를 해 다양한 결과를 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또한, 논문은 글이기 때문에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읽으면서 사람들이 지루하지 않아야 하고, 재미를 느끼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저만의 기술을 가지고 논문을 썼어요. 그렇게 해서 7개의 SCI 논문을 낼 수 있었습니다. 

 네팔과 카트만두 대학교를 소개해 주세요.
 네팔의 문화에는 네팔이라는 국가를 두 번째 엄마로 여기는 것이 있어요. 즉,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있고, 존경을 한다는 겁니다. 한국의 애국심과 비슷하면서 다른 문화라고 생각해요. 또, 한국과 네팔은 면적으로 따지면 네팔이 면적이 더 크지만, 인구는 한국이 더 많습니다. 한국은 사계절이 있지만, 네팔은 지리적 위치 특성상 기후가 곳곳마다 매우 다릅니다. 네팔의 기후는 온대, 냉대, 한대, 열대 기후가 존재하고, 히말라야 산맥 중앙부의 남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각 지역과 네팔 위치마다 기후가 달라서 다양한 식물들과 동물들이 여러 종류가 존재하고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요. 수도에 따라 여러 가지의 민족이 살고 있고, 여러 가지의 다양한 언어가 존재해요. 카트만두는 네팔의 수도이고, 카트만두 대학교는 네팔의 수도 대학이며 1975년 설립됐고 네팔에서 유명해요. 제가 일하고 있는 약학대는 1994년에 시작해서 지금 학생 수는 1만 6천 명 정도가 있어요. 카트만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 일한 지는 1년 정도 됐습니다. 코로나가 시작됐을 때 아예 네팔로 갔다가 우리대학에서 저를 불러줘서, 약학과에서 교수로 잠깐 일을 했고, 이번 여름에 다시 네팔로 돌아갑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재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주세요.
 모든 학생은 열심히 공부하고 배울 기회가 있습니다.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학교생활이 어렵고 공부할 때 정말 힘들지만, 지금이 가장 빛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에게 동기부여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여러분들이 노력했던 시간은 반드시 좋은 결과로 찾아올 것입니다. 대학 생활을 하며, 교수님과 좋은 사제관계를 맺는 것도 좋습니다. 유학생도 많으니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만나 보고, 또 여러 곳을 다녀보고, 여러 분야에서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도전하고 찾아보세요. 재학생 여러분에게는 항상 좋은 기회와 시간이 기다리고 있어요. 여러분이 하고 싶은 것과 이루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안되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면서 다른 방향도 찾아보고 노력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약학대학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IPSF(세계약학대학생연맹)에서 진행하는 교환학생 교류 프로그램입니다. 다른 나라의 약학대학에 가서 서로 문화적 교류를 하며 약국 실습 등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88개국에 회원 조직을 두고 있는 IPSF에서 70개 이상의 기관과 함께 학생 교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국가에서 교류를 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우리대학 약대생들이 네팔 카트만두 대학교의 교환학생으로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끝으로 마치겠습니다.

조혜연 기자 yeonsop321@wku.ac.kr
이한솔 수습기자 ppoppio1234@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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