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지역의 일부와 시베리아·극동은 러시아 연방의 영토로 '러시아의 아시아지역'이라고 불린다. 흔히 '동토의 왕국'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곳에도 짧지만 아름다운 사계절이 존재하며, 우리 한국인과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고아시아인종'을 포함한 다양한 토착종족들의 오랜 삶의 터전이다. 이들 중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 수가 약 4만 명 정도 되며, 과거 원주민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담긴 '사모예드'로 불리기도 했던 툰드라 네네츠인이다. 
 북극과 시베리아·극동지역의 토착종족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툰드라 네네츠인도 전통적으로 사냥과 순록을 이용한 유목 생활을 해왔기에 연중 내내 순록을 방목하는 것과 계절에 따라 장거리 이동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에게 일 년 내내 지속되는 '여행'은 삶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애니미즘과 샤머니즘 같은 고유한 종교적 세계관, 오랜 세월 혹독한 자연적·지리적 조건 속에서 체화된 경험과 지식이 정교하게 얽혀서 만들어지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켜지고 있는 툰드라 네네츠인의 전통적 여행 문화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툰드라 네네츠인은 연중 내내 이어지는 순록 방목을 위해 계절에 따라 경로를 결정하고 해마다 수백에서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장거리 이동을 자주 반복했다. 이들은 '춤'이라고 불리는 천막집에 소규모로 흩어져 살면서 친지 방문이나 신붓감 물색, 성지순례, 생필품 교환, 낚시 등 다양한 목적으로 장거리 여행을 계획하곤 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이동 수단은 순록 썰매인 '나르타'이다. 현대에는 스노모빌이 이동의 새로운 수단이 된 것은 맞지만, 네네츠인은 여전히 보다 저렴하고 '고장 날 걱정이 없는' 순록 썰매로 이동하는 것을 선호한다.

순록썰매 대회 / 사진: www.pexels.com
순록썰매 대회 / 사진: www.pexels.com

 툰드라 네네츠인이 살아온 가혹한 기후·자연조건을 고려했을 때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데 적절한 시기를 선택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출발 당일까지도 날씨를 예측할 수 있는 몇 가지 사항을 고려하면서 출발 계획을 그대로 진행할 것인지 미룰 것인지에 대해 의논하곤 했다. 예를 들어, 붉은 석양은 길조이나 아침의 밝은 붉은 빛은 악천후를 예고한다고 믿었다. 태양 주위에 나타나는 테두리는 몇 시간 후 눈보라를 알리는 징후이다. 별이 유난히 반짝이는 밤하늘은 아름답지만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를 예고한다. 개가 등을 바닥에 대고 눈 속에서 뒹굴면 몇 시간 후의 눈보라를, 선두에 있는 순록이 바닥에 누워버리면 곧 뇌우를 동반한 악천후를 예상하며 출발을 취소하고 춤에서 하루 더 머무르곤 했다. '혹한에는 모험하지 않는 것', '장애물이 있다면 가장 빠른 길을 포기하고 우회 경로를 택하는 것'이 이들의 오랜 경험에서 나온 지혜이다. 
 여행 준비를 위한 필수품에는 무엇이 있을까. 따뜻한 모피 옷은 필수이다. 툰드라 네네츠인의 기다란 외투로는 안감에만, 아니면 안감과 겉면을 모두 모피로 채우는 남성용 '말리차'와 '소비크', 여성용 '야구시카'가 대표적이다. 여행 중간에 나무에 걸린 순록 뿔을 자르거나, 썰매를 수리하거나, 눈을 파내는 등 여러 작업이 필요하므로 톱, 활, 밧줄, 불 피울 재료 등도 함께 챙긴다. 
 장거리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필요한 물건을 모두 꼼꼼히 챙겨야 한다. 출발 이후에 잊어버린 뭔가가 떠올라도 다시 되돌아가는 것은 금기이다. 여행 도중 불행한 일을 만나거나 잊어버린 물건보다 더 많은 물건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는 믿음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냥과 숫돌 역시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에게 필수적이다. 현대에 와서 라이터가 있거나 여행자가 흡연을 하지 않더라도 성냥은 먼 길의 동행자로 반드시 지참하게 되는데, 성냥이 있으면 툰드라나 숲속에서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출발 직전 집 앞을 쓸거나 바느질을 하는 것도 터부시 되었다. 다만 비상시에는 바느질을 하되 천에 여러 군데 매듭을 만들고 매듭 사이를 이은 다음 그 이어진 실을 잘라버리면 여행자의 앞길이 깨끗해진다고 믿었다. 가려는 경로에서 누군가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 길로는 여행을 가지 않는다. 여행 중간에 네네츠인의 성소를 지나게 된다면 떠나기 전 정화의식을 치르고 떠나야 한다. 음식 문제도 중요하다. 길을 떠나기 전에는 기름진 음식으로 충분한 식사를 하고 사슴 가죽으로 싼 빵과 차, 설탕, 버터 등을 준비하지만 술은 절대 입에 대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고기가 필요하게 되면 이동 도중에 순록을 도살하기도 한다. 
 툰드라 네네츠인의 전통적인 거리 단위는 순록 한 마리를 타고 다음 휴식 장소까지 갈 수 있는 만큼의 거리를 의미하는 '네달라바'를 사용한다. 장거리 여행에서 휴식시간은 순록의 배변과 먹이 공급의 필요성, 도로 상태, 기상 조건, 순록의 체력, 여행자의 습관에 따라 달라지므로 '네달라바'는 기준이 상당히 임의적일 수 있지만 보통 10km라고 볼 수 있다. 네달라바를 통과할 때마다 순록은 10~15분 정도의 휴식을 취하고, 서너 번의 네달라바를 지난 후에는 여행자가 차를 끓이고 사슴이 목줄을 맨 채 풀을 뜯을 수 있을 정도의 휴식시간이 필요하다. 
 낯선 곳을 통과하거나 중간에 여러 지인을 방문하려는 목적을 띤 여행이라면 매일 저녁 다른 사람의 춤을 방문하여 휴식을 취하는 방식으로 경로를 짤 수도 있다. 손님 환대는 네네츠인의 전통에서 매우 중요하며, 손님이 그 지역을 낯설어할 경우 한 춤에서 다른 춤으로 연속해서 인계하는 방식으로 손님의 여행을 돕기도 한다. 손님은 네네츠인의 달력에 따라 월말에는 남의 춤에 방문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다음 초승달이 뜰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행 도중 묘지나 대규모 정착지를 지나왔다면 집에 도착하기 전에 연기를 몸에 쬐는 '정화의식'을 통해 자신과 가족에게 '불순물'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또 툰드라 네네츠 여행자는 여행 도중 낯선 곳에서 길을 잃으면 묘지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1인 매장지에서 묵는 것은 오히려 초자연적인 무언가에 의해 위협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홀로 있는 영혼이 외로워하기 때문이다. 길을 이동하던 중 왠지 썰매에 무게가 느껴지거나 눈앞에 뭔가가 흐릿하게 보인다거나 하면 무조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척 반응하지 말아야 하고 무서워하는 기색을 보여서도 안된다. 무조건 가던 길을 그대로 달려야만 나쁘고 불행한 무언가로부터 부정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거대하고, 춥고, 외로운 북방의 자연 속에서 긴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광활한 땅에서 유목민으로 살아가며 장거리 여행이 필수불가결한 툰드라 네네츠인은 가혹한 환경적 조건 속에서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신비주의적 정서와 어우러져 여행의 출발 준비와 이동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게 했음을 알 수 있다. 정주민과 달리 적은 수의 사람들끼리 살아가고 이동이 잦으며 끝없이 펼쳐진 대지를 달려야 하는 유목민인 툰드라 네네츠인들이 지키는 이웃과의 관계, 길에서 초자연적 현상을 느꼈을 때 취해야 할 행동 수칙, 떠날 수 있는 적절한 시점을 결정하는 방법, 준비할 물건 등은 모두 그들의 '여행'을 안전하게 해주는 요소들이었다. 
 안타깝게도 현대를 살아가는 네네츠인은 거대 석유·가스 기업들의 러시아 북방지역 진출로 인하여 목축용 토지 부족과 환경오염, 기후변화의 위협을 겪으며 전통적 삶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곧 종족을 유지하는 본질인 정체성의 축소 및 인구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인류의 소중한 문화적, 인류학적 자산인 '러시아의 아시아지역' 토착종족들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대안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김자영 교수(원광대 HK+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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