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대만에서 개최된 한국 민주화운동 사진전 포스터

한국-대만의 근현대사적 공통성?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한국과 대만의 관계는 두 국가/지역이 공유하는 근현대사 궤적의 유사성 때문에 주로 주목되어 왔다. 일각에서는 이것이 동아시아 근대성, 제국주의 혹은 (탈)식민 과정에 대한 대단히 풍부한 세례로서, 우리에게 중대한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는 관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동아시아 각 지역을 대상으로 활발히 이루어진 비교연구(한국-일본, 일본-대만, 중국-일본, 중국-대만 등)의 질적·양적 팽창에 비교하면 한국(조선)-대만의 비교연구는 상대적으로 미진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는 1987년 이후 두 국가/지역이 수행하는 국가·민족적 기획이 서로를 철저히 외면할 수밖에 없는 길을 걸어가는 탓이라고 생각된다. 한국은 1987년 이후 탈냉전 구도를 위시한 북방정책, 무엇보다 1992년 한중수교(대만단교)를 체결하여 통일을 위시한 궁극적인 미래 기획을 이루기 위해 노력 중이다. 같은 시기 대만은 대만인들의 현실과 유리된 중화민국 통치를 벗어나 본토화를 향한 정체성 정치 시대로 접어들어 현재에 이르렀다. 그러한 가운데 한국은 하나의 중국(一個中國) 원칙에 따라 대만의 상황에 침묵하고, 대만은 탈중국화를 위시한 내셔널리즘 기획을 어렵게 이어가는 중이다. 21세기 이후 더욱 급속하게 전개된 두 국가/지역의 이처럼 상이한 '주체화'를 위시한 정체성 형성과정의 난맥상이야말로 한국-대만 관계 연구의 상대적 궁핍의 핵심적인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인문사회적 기획은 단순히 과거를 탐색하고 추수하는 작업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오늘날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현재에 입각한 미래를 위한 기획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대만 모두 민주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민주화 이후 나타난 한국-대만 관계의 난맥상은 실상 각자가 마주한 근현대사적 모순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두 국가/지역 인민들의 지난한 사회적·지적 투쟁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대만의 지식인 일각은 1970년대 말에서 87년, 즉 후기 냉전기라 불리는 시기에 각자가 마주한 탈식민·제국주의적 과제를 위해 사회문화적으로 분투했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가 처한 상이한 로컬적 조건과 문화 안에서, 민주화라는 공통의 목표를 지향하는 일련의 문화 운동의 와중에 연결되기도 했다. 이호철과 전형준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된 대만의 작가 황춘밍의 「두 페인트공」이 <칠수와 만수>라는 이름의 연극(1986)과 영화(1987) 제작으로 이어진 맥락이 그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국과 대만 사이의 기이한 난맥상, 근현대사적 공통성 그리고 현재와 미래기획에 따른, 서로 간의 외면과 비관계라는 역설적인 존재론적 지평을 보다 발전적으로 계발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후기 냉전기 한국-대만 민주화 과정·문화 연쇄
 '황춘밍에서 박광수까지'로의 연결은 매체와 행위자를 넘나들며 일본·미국·자본주의·그리고 그 외의 지적 실천을 끊임없이 재배치하며 뒤얽히게 하는 우발적인 기획의 결과이다. <칠수와 만수는> 이호철의 일본을 경유한 제3세계 문학론과 민중주의 리얼리즘을, 카메라를 통해 원작인 대만 향토문학 「두 페인트공」과 비연결/비관계였던 한국이라는 로컬과 지역의 구체적인 이미지로 구현하여 그 지평을 확장한다. 이호철의 『사요나라, 짜이젠』 번역은 일본을 경유한 그의 제3세계 아시아 문학론에 등장한 적 없었던 대만의 향토문학을 바로 그 이념에 입각한 구체적인 수행으로 한국에 맥락화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민주화 과정의 일환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특히 주목되어야 한다. 한국과 대만의 민주화 과정과 그 문화적 실천들은 특정한 행위자들에 의해서만 가능한 역내의 구조적 관계 속에서, 두 지역의 비관계성을 자율적으로 재배치하여 구성된 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그것이 랑시에르가 통치의 자격이 부여되지 않은 이들에게 통치의 조건을 부여하는 태도와 지평이라고 말한 의미에서, 민주화 과정의 결과이기에 중요하다. 이를 고려할 때, 민주화 과정에 수반한 한국-대만 사이의 고립과 비연결은 그 사이에 발생한 어떠한 문화적 연결과 연쇄만큼 중요할 수 있다. 한국과 대만의 민주화라는 각 국가/지역의 민족 정체성과 관련된 로컬적 기획이 아시아적 지평에서 확장될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분명 일정 부분 연결이다. 그러나 오늘날 역내 질서하에서 딱 그만큼 연결되지 않는 채로 존재하는 것들의 지평을 끊임없이 재배치하여 구체화한 문화적 상태이다. 나는 이를 한국-대만의 민주화의 존재론이라 가정하고 싶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기존의 상관주의-주체적 아시아주의를 환기할 미학적 지평을 위한 기획으로서, 객체지향 아시아주의라는 가설을 제안하고 싶다. 

객체지향 아시아주의?
 객체지향 존재론의 주요한 논점을 간단히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객체지향 존재론은 퀭텡 메이야수 이후 태동한 철학적 비-상관주의의 여러 분파 중 하나이다. 주지하다시피 철학적 비-상관주의는 인간(주체)의 인식에 선행하거나 그와 상관없이 존재하는 사물(객체)의 존재(선조성)에 주목한다. 이는 객체와 인간의 인식 사이의 본원적인 균열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 객체지향 존재론은 특이한 위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인식론적 균열과 심연이 인간과 객체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모든 객체와 객체 사이 그리고 모든 연결과 상호작용의 존재론이라 주장한다. 인간의 인식과 사유의 우위를 내려놓고 철처히 '객체지향적으로' 전도함으로써, 모든 사물을 존재론적으로 동등한 지평에 놓는 철학적 기획의 일환이다. 객체/사물의 실재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어떻게 사물을 인식하는지가 아니라, 철저하게 객체(혹은 사물의 조직)가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주체의 인식론에 집중하는 방법으로는 객체가 존재하는 실재(연결)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객체와 사물을 온전히 인식하는 게 불가능한 가운데, 그것은 그저 조직, 상호연결 그리고 관계를 통해, 인간에게 그 실재가 부분적으로만 감지된다. 이는 사물에 대한 재현과 의미 작용(담론)의 역량을 불가피하게 제한적으로만 인식할 수 있음을 뜻한다. 인간의 사물 인식은 언제나 '부분적인 연결이나 조직'인 것이다.
 객체지향 존재론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객체에 행위자성을 부여하여 그것을 관계와 영향 같은 '운동'으로 환원하는 게 아니라, 사물을 인식하는 그 상태 그대로 유지 시키는 '비연결'과 '고립'의 존재론적 성격에 적극적으로 주목한다는 것이다. 사물이나 객체가 인간에게 인식되기 위해서는 그 상태로 연결·조직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그 상태로 단절·비연결되어 안정화될 필요도 있다. 이때 강조해야 할 것은 연결·조직은 활성화이고 비연결이 비활성화 즉 부정적이거나 잠재적이라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양자 모두 그 자체로 동시다발적인 존재의 구성 조건이며, 어떤 연결이나 조직이 대상이나 객체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바로 그만큼 적극적으로 비관계 되어야 한다.
 위의 테제는 민주화 이후 한국-대만 관계를 새로운 차원에서 이해할 시금석이 될 수 있다. 두 국가/지역은 주로 근현대사의 '공통성'이라는 상관관계(연결)를 통해서 주로 인식됐다. 그러나 오늘날 이를 통해 파악되는 한국-대만의 관계에는 두 국가/지역이 처한 존재론적인 비연결과 고립의 자율적인 지평이 수반된다. 여기서 고려해야 할 사안은 비연결과 고립이라는 존재론적 지평이 과연 무엇 때문에 나타난 것이냐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과 대만은 19세기 이후 일본과 미국이라는 근대적 패권국가라는 주체의 목적을 위한 수단 즉 도구적 성격의 객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에 있어서 한국과 대만은 각각 중국과 열강의 동남아 식민지로 진출할 제국의 관문(imperial gateway)이었다. 1945년 이후에는 공산주의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수단, 소위 제국의 군도(imperial archipelago)의 일각으로서, 미국 패권의 동아시아 최전선으로 동원됐다.
 마루카와 데쓰시는 19세기 후반 메이지 유신, 20세기 신해혁명에 이어 20세기 후반 한국과 대만의 민주화가 동아시아 담론을 이끌었다고 평가하며, 바로 이 지점에서 '21세기 동아시아 구조적 변동의 기점'을 사유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한국과 대만의 민주화와 그리고 그와 연루된 동아시아 담론은 각자가 마주한 국가/지역적 과제에 따라 교착된 채 남겨진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탈냉전 이후 완화되던 동아시아의 갈등과 긴장은 더더욱 강화되어 전후 냉전 구도와 배타적 내셔널리즘으로 회귀하는 듯 보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시기에 20세기 말 한국과 대만의 민주화 기획의 아시아적 의의를 다시 묻는 작업은 중요하다. 근대적 인식론에 따라 아시아 담론의 객체로 발견되어 시작된 한국과 대만이라는 두 국가 지역이, 그전까지 철저하게 대상화됐던 '선조적인 것'을 통해 기존의 지역적 구도에서 '물러나는' 맥락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오늘날 한국과 대만의 인식론적 비연결과 고립이다. 20세기 후반 한국과 대만 민주화 기획의 아시아적 의의를 고찰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한국과 대만이라는 동북아 역사의 두 객체 사이의 '물러남', 다시 말해 인식론적 교착을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는 이는 곧 두 국가/지역의 관계를 객체지향적으로 재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제안하고 싶다. '황춘밍에서 박광수 까지'를 비롯한 두 지역/국가의 근현대사 가운데 나타난 결정적이지 않은 문화적 연쇄들은 이에 다가갈 중요한 참조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가설에 불과할지도 모르나, 나는 바로 이 작업에서 한국과 대만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본다.

 

윤재민 교수
(원광대 HK+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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