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은 일본제철에게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명령을 판결했고, 2019년 5월 대법원에서 해당 기업의 국내 자산 압류와 매각 명령을 신청했다. 이후 두 달 만인 7월에 수출 규제가 발표돼 보복성 규제 논란이 터지며 우리나라 국민의 공분을 산 것이 일본 불매운동의 출발점이다.  
 지난 2019년을 기억하는가? 그 시절 우리나라 거리를 돌아다니면 곳곳에서 'NO JAPAN' 슬로건을 볼 수 있었다. 그 해 7월 일본 정부가 반도체·디스플레이 등의 생산에 필수적인 품목의 한국 수출규제를 강화하는 조치를 시행한 데 이어 8월에는 한국을 일본의 백색국가 명단(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그 후로 3년이 지나긴 했지만, 거리 풍경은 180도 달라졌다. 어딜가나 길 건너편에 일식당이 있고, 영화관엔 일본 애니메이션이 한 달에 한 편씩 개봉한다. 음원 사이트 인기 차트에는 J팝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일본 특유의 화장법으로, 소녀를 뜻하는 영어 단어 'Girl'의 일본식 발음, '갸루'가 유행하기도 했다. 그 영향으로 갸루가 하는 포즈, 갸루피스 또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본토의 문화를 즐기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는 여행객 수도 늘고 있다. 지난해 국토교통부 항공정보포털에서 공개한 「인천공항을 통한 일본 여행객 수 추이」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출국자가 약 10만 명인 데 비해 무비자 입국이 허용된 10월 출국자는 약 30만 명으로 급증했다. 지난달 일본정부관광국은 지난 1월 일본 방문 외국인 관광객 총 149만 7천 300명 중 37.7%인 56만 5천 200명이 한국인이라는 통계를 발표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 퍼진 일본 문화의 아성이 어느 정도인지 단편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우리는 보더리스 세대?
 한국의 Z세대는 일본 문화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맘껏 즐기면서도 눈치 보지 않는다. Z세대가 일본 문화에 마음을 뺏긴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일본 문화를 접하고 좋아하게 된 계기는 각양각색이었지만 공통된 답은 하나였다. '일본 문화라서가 아니라 콘텐츠 자체가 마음에 든다'는 것이었다. 최근 숏폼 플랫폼인 '틱톡' 챌린지 등을 통해 J팝이 유행처럼 퍼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경이 없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누구보다 익숙한 Z세대는 문화의 국적을 따지지 않는다. 콘텐츠 그 자체의 매력을 우선시한다. 
 이른바 '보더리스(Borderless·국경 없는) 세대'다. 그들에게 문화는 문화이고, 역사는 역사일 뿐이다. 과거사 문제에 관해서 Z세대의 답은 단호했다. 한국일보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절반이 '노재팬 운동' 당시 소극적으로라도 참여했다고 답했다. 이들은 문화와 역사를 분리하지 않는 기성세대의 시각을 의아해한다. 일본 가수를 좋아해 일본어까지 배우는 모습을 보고 '일본어를 왜 배우냐'는 친척들의 핀잔이 황당하게만 느껴진다는 의견이다.

일본 게임기와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모습 / 사진: 이은교 기자 
일본 게임기와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모습 / 사진: 이은교 기자 

역사를 알고 덕질하고 싶어요
 문화를 좋아하는 만큼 역사 공부를 해야 실수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과거사 공부를 했다는 Z세대도 적지 않았다. 서울시립대학 국사학과 박준형 교수는 "역사적인 배경 지식 없이 무조건적으로 일본 문화만 받아들이는 것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이 든다"며, "한국과 일본의 문화 교류는 앞으로 변화될 사회의 경제를 위해 좋은 일은 맞다는 것에는 동의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리에게는 잊지 말아야 할 역사와 해결되지 않은 숙제가 남았으며,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일본 문화를 무조건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역사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어 비판적인 수용이 필요하다. 역사적인 배경지식 없이 일본 문화만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서울 광진구 일본풍 술집이나 종로구의 일본 애니메이션 느낌 카페 등 한국 내에서 일본 분위기를 재현한 장소들이 퍼지고 있다. 이런 장소들을 즐기는 것은 좋지만, 일본 문화 향유가 과해지고 비판적 사고 없이 수용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일본에 대한 이중적 감정과 혐오 감정을 깨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문화 교류와 역사 인식 제고가 필요하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양국 간의 교류를 차단하기보다는 서로 얼마나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지 인정한다면 상호 간 장벽을 허물 수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양국 간의 활발한 문화 교류 자체를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적절한 공간인지 확실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들어선 외국 문화는 결국 고유 지역의 특색을 암암리에 사라지게 만들어 자국의 기존 체계와 흐름을 훼손하는 역풍으로 돌변할 수밖에 없다.
 타국 특색을 과도하게 배제하는 것도 잘못됐지만, 반대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 역시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특색을 해치지 않게 유의하면서 문화적 교류가 이뤄지게 앞장서야 한다.
 한 발 더 진화한 내면적 성장 추구 차원에서 우리 자신과 문화를 함께 발전시키는게 진정한 가치이지 않을까?

이은교 기자 dldmsry11002@wku.ac.kr
이한솔 수습기자 ppoppio1234@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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