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노인들의 애환을 담은 영화가 아니다.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소개한다. 
 황량하고 무질서한 1980년 6월의 서부 텍사스. 에드 톰 벨(토미 리 존스 역)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자신이 보안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그곳에서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폭력 사태를 보며 슬퍼한다.
   사냥꾼인 루엘린 모스 (조시 브롤린 역)는 틀어진 마약 거래로 인해 유혈 사태가 휩쓸고 지나간 곳을 지나게 된다. 사람과 개의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고 물을 구걸하고 있는 부상당한 멕시코인과 200만 달러가 든 돈가방이 있는 가운데 그는 돈가방을 챙겨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 날 밤 모스는 그곳으로 다시 가 아까 그 멕시코인에게 물을 주려고 했지만 곧 트럭에 탄 두 남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고 타고 다니던 차도 잃어버린다. 집에 돌아온 그는 돈을 챙긴 다음 아내 칼라 진(켈리 맥도널드 역)은 장모 편으로 보내고 모텔로 피신해 객실의 통풍구에 돈가방을 숨긴다.
 자객인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 역)는 돈을 되찾아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벌써 보안관을 목졸라 죽이고 탈주한 다음 권총으로 어느 차 운전자도 죽이고 그 차까지 빼앗은 그는 이제 거래 상대의 돈가방을 쫓는 일을 맡아 하고 있다. 그날 밤 모스의 은신처를 습격한 그는 모스를 숨겨주던 멕시코인들을 찾아낸 다음 죽인다. 하지만 모스는 이미 반대편의 방을 빌려 그곳으로 피한 상태였고 쉬거가 돈가방을 찾아 통풍구를 열었을 때 모스는 이미 돈가방을 들고 모텔을 빠져나간 상태였다. 
 영화는 전형적인 서부극의 배경과 인물들로 출발하지만 어느 순간 장르의 전통적인 흐름에서 이탈한다. 영화 내내 괜히 선의를 베풀려 한 노인들은 위협 당하거나 죽기 일쑤이고, 상대적인 선역이었던 주인공들도 그들의 선행으로 인해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렇게 서부극의 클리셰들과 고정관념들과 대조시켜 코엔 형제는 그들이 보는 허무주의적인 세계관을 강조한다. 선한 자와 악한 자 상관 없이 누구에게나 불행과 죽음이 닥치는, 흡사 동전 던지기와 같이 불확실하고 무정한 현실. 세상을 결정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단순히 원인과 결과, 그리고 약간의 운이라는 것. 황량한 사막 배경과 무미건조한 분위기가 영화의 세계관과 어우러진다. 그러나 이 두 원칙에 명확히 맞지 않지만 살인 동기가 생겼을 때, 그는 살인을 정당화하기 위해, 살해의 명분을 찾기 위해 동전 던지기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 초반에 주유소 주인이 자신의 출신지를 추측하는 듯한 말을 흘리자, 이에 강박적으로 심기가 거슬린 쉬거는 말꼬리를 잡으며 주인을 압박한다. 그를 살해할 좀 더 명확한 명분을 찾는 것이다. 주인이 가게를 장인어른한테 물려받았다는 언급을 하자 쉬거는 갑자기 혐오감이 치민 듯 목이 메어 기침한다. 쉬거가 어떤 정의관을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선한 주인이 뚜렷이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자, 그는 갑자기 동전을 던지고선 그 결과에 따라 그를 살해하려 든다. 선택은 주인에게 달려 있으므로 이것이 공평하고, 마치 이 상황이 불가피한 운명이라는 식의 궤변을 펼치며 살해의 책임을 전가한다. 그러나 주인은 운 좋게 동전을 맞추고, 더 이상 명분이 없는 쉬거는 오히려 그를 축하해 주더니 흔쾌히 떠난다. 이 영화는 해석이 매우 자유로운 편이다. 결말 부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해석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은 다음과 같다.
 삶은 언제나 위험하고 불확실했다. 그렇지만 젊은이는 잃을 게 없기 때문에 세상에 무엇이든 내던져 도전하고, 노인은 잃을 것밖에 없기 때문에 안주하고 세상을 포기한다. 그래서 슬프게도, 이 혹독한 세상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배성민 기자 aqswdefr3331@wku.ac.kr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