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조선 선비의 최고 덕목 중 의리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해석해야할지 고민하던 중 성리학자 밀암 김지행(1716~1774)에 대한 일화가 떠올라 소개해 보고자 한다. 김지행이 활동했던 시기는 숙종, 영조 연간으로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을 같은 것으로 보는가, 다른 것으로 보는가라는 인물성동이론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던 시기였다. 이들 상호간의 치열한 논쟁은 요즘 정치인들의 상호비방처럼 감정싸움으로 비화되었는데, 인성과 물성의 보편적 원리는 같다고 주장한 낙론에 대해 호론들은 "너희들의 주장이 맞는다면 너희들의 아버지 성품과 너희 집 똥개의 성품도 같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며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김지행은 권상하, 한원진, 윤봉구로 이어지는 엄격한 호론의 문인이었다. 일찍이 윤봉구는 김지행의 천재성을 알고 그를 매우 아꼈고 자신의 적통 계승자가 되길 간절히 바랬다. 호론의 인성과 물성을 다르다는 철저한 이론을 고수한 윤봉구와 다르게 김지행은 호론의 학설을 모두 동의할 수 없음을 스승 윤봉구에게 솔직하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나 윤봉구는 호론 학설에 반한 제자 김지행을 배신자로 여기지 않았고 학문적 자세와 의리는 문파의 학설보다 소중하다 여겨 그를 받아들였다. 윤봉구는 운명하기 직전 김지행을 불러 호론의 인물성론에 대해 질문을 하였는데, 김지행은 한참 말을 잊지 못하다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소인은 아직 스승님의 높은 가르침에 한참 모자란 듯 합니다. 스승님과의 의리를 생각하면 따르겠다고 해야 하나 학문의 의리상 아직 따르지 못함을 말씀드립니다." 이 말은 들은 윤봉구는 수 백명이 모인 제자들에게 "너는 참으로 나의 제자이다. 의리는 사람으로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인데, 스승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어떻게 의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 너의 학문에 큰 발전이 있기를 기원하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별세를 한다. 당시 스승의 학설을 따르지 않는 제자는 파문당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심하면 사문난적으로 몰려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중대한 사건이다. 김지행이 당대 최고 호론가인 윤봉구의 일등 제자였지만 맹목적으로 신봉하지 않은 것도 대단하지만 이런 제자를 끝까지 지지하고 진정한 제자임을 인정한 윤봉구도 대스승이라 할 수 있다.
   요즘 스팩 좋은 학식으로 무장한 정치인들은 극단적 이념논쟁을 일삼으며 의견이 다르면 배신자로 치부하며 한 개인의 맹목적 신봉만 일삼고 있다. 이들은 오로지 자신들이 속해 있는 집단적 이기주의만 생각할 뿐, 국민들에게 지켜야할 의리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300여 년 전 학문과 학파 사이에 벌여졌던 의리의 취사선택을 보여주었던 윤봉구와 김지행의 일화는 오늘날 정치인들에게 커다란 일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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