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공동체는 소규모이고, 구성원들이 혈연이나 지연으로 이어져 있고, 정서적인 관계를 맺는 것으로 이해된다. '공동체'라는 용어는 누구나 당연한 것처럼 써왔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공동체가 우리의 일상 언어로 자리 잡은 것은 커뮤니티(community)가 공동체(共同體)로 번역된 이후의 일이다. 
 '공동(共同)'이라는 용어는 일상적으로 '공동생활'처럼 '함께'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당시 한자 '同'도 '같음'보다는 '어울리다', '같이한다.' 등의 의미가 강했다. 이후 새롭게 등장한 용어가 '커뮤니티(community)'의 번역어인 '공동체(共同體)'이다. 이를 풀이하면, '같음(同)'을 '함께(共)'하여 하나의 '몸(體)'을 이룬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공동체는 '함께' 보다는 '동일성'을 강조하는 의미로 해석됐고, 공동체는 '공통인 것을 공유'한 유사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으로 이해됐다. 여기서 공통인 것은 지리적 근접성과 민족, 계급, 종교, 심지어 생활방식과 가치관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이제 '동(同)'은 '함께'보다는 '하나' 곧 동질성의 의미가 강조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커뮤니티'의 개념사를 살펴보면 동아시아의 공동체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동아시아는 서구와 교류하면서 번역을 통해 새로운 용어와 개념을 자신의 전통 용어를 통해 번역해야만 했다. 그런 과정에서 기존 용어와 개념이 질적으로 달라지기도 했다. 그래서 개념사는 동아시아의 근대를 이해하는 주요 연구 방법이다. 그리고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현존(現存)한다는 점에서 개념으로 인해 의미의 한계가 생기고, 이는 우리의 인식을 한정하게 만든다. 이를 쉽게 표현하면, 고정관념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용어인 '공동체'라는 개념 역시 다르지 않다. 이제 동아시아 특히 일본의 커뮤니티 개념사를 살펴보자. 그런데 왜 일본인가? 일본은 '탈아입구(脫亞入毆)'를 내세우며 서구와 적극적인 교류를 시도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서구 근대개념을 전통 언어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 지식인들의 번역어는 자연스럽게 한국에 유입되어 우리의 일상용어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1881년 독일 유학 출신 이노우에 데츠지로(井上哲次郞)의 『철학자휘』에는 공동체(共同體)라는 번역어는 등장하지 않았다. 'Common'을 '普有'로 'community'를 '普有性'으로 번역했다. 이러한 번역 과정을 통해 우리는 당시 커뮤니티는 공통성을 중심으로 번역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여러 사전에서도 커뮤니티는 어떤 무엇인가를 공유하는 성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러한 이유는 무엇보다 공동체 개념을 체계화한 독일 사회학자 퇴니에스(Ferdinand Toennis)의 영향이었다. 퇴니에스는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와 게젤샤프트(gesellschaft) 개념을 통해 공동사회와 이익사회를 구분했는데, 일반적으로 공동사회는 공동체로 이해되고 있다.
 일본에서 '공동체(共同體)' 용어가 최초로 등장한 것은 1888년 『行政法』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에서도 '공동체(共同體)는 혈연이나 지연 등 본질의지(일체성)의 결합체인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 의미로 해석되었다. 오늘날 일본의 대표적인 사전인 『고지엔』의 'community' 항목 역시 "일정한 지역에 거주하고, 공통의 감정을 지닌 사람들의 집단"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렇게 '커뮤니티'는 여전히 연대와 협력보다는 '동질성'에 기초한 집단을 지칭하는 용법이다. 이러한 공동체 용법은 일본의 동아시아 공동체 담론으로 이어졌다. 일본은 " 대동아공영권", "동아 협동체" 등 다양한 개념을 통해 동아시아 지역 주변국과의 협력을 제안했다. 특히 동아협동체론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한 철학자 미키 기요시(三木淸)는 서양과 대비되는 동아의 통일 근거를 찾았다. 이렇게 일본의 아시아 연대론은 동일성을 강조하면서 다른 국가들을 통합 혹은 동화시키려는 목적을 담고 있었다. 더불어 미키 기요시는 동아협동체가 동질성을 근거로 한 동양의 평화라는 동아시아 전체 이익을 위한 것이라 말했지만, 일본 중심의 차별구조를 설정하여 일본 중심의 새로운 질서를 주장했다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공통점이 조금도 없는 공동체 
 이탈리아 철학자 로베르토 에스포지토(Roberto Esposito)는 『코무니타스-공동체의 기원과 운명(Communitas: The Origin and Destiny of Community)』(윤병언 옮김, 크리티카, 2022)_ 서문에서 "공통점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공동체"를 주장했다. 지금까지 공동체는 다수의 주체를 하나의 동일한 전체에 소속된 존재로 특징짓고, 구성원들 각자에 '고유한' 종족적, 지역적, 정신적 특성들을 하나의 유일한 정체성 안에 통합시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고 비판한다. 이후 그는 다른 공동체 의미를 찾기 위해 커뮤니티의 어원인 라틴어 코무니타스(communitas)에 주목한다. 그에 의하면, 영어의 '커뮤니티(community)'는 라틴어 '코무니타스(communitas)'가 어원이고, 이 '코무니타스'는 '함께'를 뜻하는 '쿰(cum)'과 주지 않을 수 없는 선물을 의미하는 '무누스(munus)'와 결합되어 있다. 그래서 코무니타스는 증여의 의무 관계로 서로 연결된 이들의 집합체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코무니타스라는 집합체는 받은 선물을 돌려주어야 하는 의무로서의 '무누스(munus)'가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존재들을 묶는 끈의 역할이 된다. 즉 코무니타스는 받는 것이 아닌 돌려주어야 하는 선물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코무니타스는 공통으로 소유하는 속성을 통해 엮어지는 것이 아니다. 코무니타스는 공동의 의무, 책임 그리고 선물 등을 함께 하는 집합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종교, 언어, 혈통 등 공동체 속성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의무를 함께하는 주체들의 집합체이다. 그래서 에스포지토는 어느 공동체 속함이 개인적 정체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비판한다. 부연하면, 공동체는 공통점이 조금도 없을 때만 성립되며, 폐쇄성이 아닌 항상 타자에게 개방되어 있다. 
 에스포지토가 '무누스'에 집중했다면, 낭시는 함께라는 의미의 ''쿰에 주목한다. 낭시는 공동체라는 용어보다 '공동-내-존재', '함께-있음'을 더 선호한다. 동질성을 강요하지 않은, 아니 강요받지 않는 타인과 함께 있는 것은 무엇을 나누고 공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함께 있기 위한 집체이다. 이는 주변과 중심을 구분하지 않고, 타자를 배제하지 않으면서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환대의 집합체이다.

승자독식, 약육강식에서 '공생(共生)'으로 
 한국, 러시아, 북한, 일본, 중국 등의 영토를 포괄하는 동북아시아는 패권과 전쟁 그리고 피해자와 가해자 구도로 인해 어떤 공통의 이해를 만들어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최근 한국의 경제성장과 중국의 개혁개방 등 다양한 변동을 경험하면서 지식인들은 대안적 공동체를 구상하고자 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동북아시아의 문화적 정체성을 근거로 한 동북아문화공동체이다. 동북아시아 문화론으로 서구적인 것 혹은 서양 문명과 다른 '아시아적인 것'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그 실체를 종교나 문화 영역에서 찾고자 했다. 이것은 여전히 공통성, 동일성을 중요한 요소로 파악하는 연대의 논리이다. 하지만 동북아시아라는 개념은 언어나 문화 등 지역 내의 동질성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동북아시아는 지리적 근접성에 기초한 공동이익 창출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무엇보다 안보, 정치, 경제 등 협력의 필요성에서 제기된 연대이기 때문이다. 철학자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와 장-뤽 낭시(Jean-Luc Nancy)는 공동체가 어떤 무엇을 공유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인식할 때 그 공동체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상상했던 동북아시아 공동체도 이와 다르지 않다. '동북아시아'는 경제, 정치, 안보, 평화 등 여러 문제를 공유하면서 형성된 네트워크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동북아시아'는 단순히 지리적 공간이 아닌 다양한 행위자들이 공통의 의무 관계와 책임들이 얽혀있는 '집합체'이다. 그리고 동질성을 강조하는 '공동체'는 경계 짓기의 문제로 정체성 정치가 개입되고 배제와 억압 그리고 혐오의 대상을 생산한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제 패권 경쟁과 약육강식이 만연한 동북아시아에서 벗어나 공생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지금이야 '공생'이 우리 삶의 질서 최고의 가치로 인식되고 있지만 과거는 그렇지 않았다. 공생은 19세기 말 진화적 사고의 주류에 대항한 용어였기 때문이다. 공생이론이 오랫동안 서양의 과학계에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당시 냉전이라는 세계정치 지형과 관련된다. 즉 세계대전, 민족주의 등 세계정치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공생은 생물학적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정치운동으로 간주된 것이다. 
 가장 치열하게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했던 자연계도 그들이 최종적으로 찾은 답이 공생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먹고 먹히는 관계가 반복된다. 그런데 자연계에서 생물은 경쟁하고 싸우면서 서로 공생관계를 구축했다. 서로 싸우기보다 서로 도우면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그들이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터득한 답이었다. 가령, 속씨식물은 다른 생물들과 서로 돕는 공생관계를 구축했다. 식물은 꽃을 피워서 벌과 같은 곤충을 유혹한다. 그리고 곤충에게 꽃가루와 꿀을 주는 대신 곤충의 도움을 받아 꽃가루를 운반한다. 또 식물은 열매로 새를 유혹해서 열매를 먹게 하고, 그 새의 도움을 받아 씨앗을 옮긴다. 이렇게 자신의 이익보다 상대방의 이익을 위해 베풀어 주는 것, 이것이 공생관계를 구축할 방법이었다. 이제 동북아시아도 무한경쟁과 적자생존보다 '함께-삶을-만들어 나가는' 공생의 집합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기후변화 그리고 팬데믹은 인간중심의 공동체 구상의 실패 결과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간과 인간,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인간과 비인간 등 모든 행위자들의 새로운 동맹을 이끌 수 있는 새로운 생활세계를 구상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공생의 집합체가 아닐까?

 

 허남진 교수
(원광대 HK+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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