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었고 따뜻한 봄날이었습니다. 나는 평소처럼 점심을 건성 때우고, 소파에 습관적으로 널브러져 있었어요. 일요일이었으니까 조금은 봐줄 만한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지요. 나는 일요일의 몸을 가진 사람처럼 비스듬한 자세로 소파에 누워 라이터 같은 리모컨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어요. TV에서는 일요일 정오 뉴스가 담담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뉴스를 접한 나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어요. 뉴스 헤드라인에는 "프랑스 파리의 심장, '노트르담 대성당' 불타고 있어"라는 자막이 커다란 글자로 붙어 있었기 때문이에요. 처음 노트르담 대성당 관련 뉴스를 접할 때는 내 눈과 귀를 의심했어요. 하지만 만우절도 훌쩍 지난 마당에 그 사실을 믿지 않을 재간은 없었지요. 그러면서 엄청난 화마로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을 여러 번 돌려보며 내 안에 아껴두었던 탄식을 반복하여 사용했어요. 그렇게 2019년 4월 15일, 프랑스 파리의 심장인 노트르담 대성당은 실제로 무너져 내렸지요.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 사건을 접한 뒤, 이상하게도 나는 자주 마음이 뜨거워지는 감정과 교류했어요. 대부분은 화마에 무너져 내린 대성당의 모습을 수시로 찾아보면서 혀를 끌끌 차기도 했지만, 가끔은 나도 알 수 없는 미학적 카타르시스와 묘한 감정 상태와도 수시로 연락이 닿았어요. 이후 빅토르 위고가 쓴 『노트르담의 꼽추』를 괜히 뒤적여 보기도 하고,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를 소재로 삼은 영화 〈노트르담 온 파이어〉를 보기도 했어요. 사실과 허구가 가미되긴 했지만, 우리나라의 남대문 화재 사건도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하고, 화재 시작 단 10시간 만에 아름답고 정교한 성당의 첨탑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감정이 재를 타고 날아오르기도 했어요. 오죽하면 영화 속 대사인 '불길하군'이라는 문장이 아무 설명 없이도 이해되었겠어요. 

 여기에 더해 내 미학적 감정에 불을 확 집힌 건 바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속 '대성당들의 시대'였어요. 리카르도 코치안테가 작곡하고 뤼크 플라몽동이 작사한 곡인데, 음악 좀 들어본 사람이라면 금방 아는 곡 중 하나이지요. 클리셰가 강한 작품이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작품의 클래스를 느끼게 해주는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런지 '대성당들의 시대'라는 곡만 들으며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게 돼요. "아름다운 도시 파리"로 시작되는 이 뮤지컬의 가사 속에는 1482년 무명의 예술가들이 제각각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욕망과 사랑을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뒷부분의 가사를 듣다 보면 엄청난 희열이 전해져오기도 해요. 잠시 옮겨보면, 

"대성당들의 시대가 무너지네 / 성문 앞을 메운 이교도들의 무리 / 그들을 성안으로 들게 하라 / 이 세상의 끝은 이미 예정되어 있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한 장면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한 장면

 어떤가요? '운명'이란 단어가 귀에 쏙쏙 박히지 않나요? 실제로도 노트르담 대성당은 수많은 역사적 기억을 간직하고 있어요. 특히 노트르담 대성장 앞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람들이 성당의 벽에 남긴 '운명'이라는 글자는 말 그대로 운명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게 돼요. 뮤지컬 곡의 가사처럼 대성당들이 무너지면, 누구라도 머리에 이고 사는 제 하늘이 곧 성당의 지붕으로 변하게 되지요. 굳이 성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성문 앞을 가득 메운 이교도의 무리들도 성안으로 들어올 필요 없이 성스러운 공간에 모두 편입되는 효과를 가져오지요. 그래서 그런지 어디서든지 '대성당들의 시대'라는 뮤지컬 곡만 흘러나오면 나는 아직도 온몸에 소름이 돋기도 해요. 

 2019년 4월 16일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 사건이 발생한 후 나는 줄곧 파리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상상을 했어요. 850년 동안 프랑스 파리의 심장을 자처해 온 노트르담 대성당의 불에 탄 모습을 내 눈으로 직접 담고 싶었어요. 하지만 웬걸요. 이 사건이 발생한 직후 몇 년 동안 팬데믹 상황이 나를 지속하여 괴롭혔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쁜 일들은 내게 화마보다 더 무서운 재앙이었어요. 그렇게 최근 몇 년 동안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 사건은 내 기억에서 점점 재를 남겼어요.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다시 TV를 보면서 활활 불타오르는 내 감정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바로 뮤지컬 배우 마이클리가 <노트르담 드 파리> 속 '대성당의 시대'를 공연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왔어요.

 나는 곧장 항공권을 예약하고, 일정을 조율한 뒤 프랑스 파리로 날아왔어요. 그리고 복원 중인 노트르담 대성당의 모습과 다시 마주했어요. 성당에 새겨진 '운명'이라는 단어를 찾고 싶었지만, 찾을 수 없었어요. 이 또한 운명이었지요. 어쨌든 지금 아주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지만, 첨탑이 사라진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 와 있어요. 프랑스의 작가 미셸 트루니에가 자신의 산문집에서 언급한 모든 존재는 완전히 무너진 후에야 온전히 완성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고 있어요. 여기에 더해 노트르담 대성당에 새겨진 '운명'과 '숙명'의 차이와 가치를 다시 불살라내고 있어요. 뒤에서 쏜 화살처럼 숙명은 결코 바꿔낼 수 있지만, 운명은 언제든 '힘에의 의지'에 의해 바꿀 수 있다는 사실도 재건해 내고 있어요. 그렇게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내 안에서 완성되었어요.

 

 

김정배 교수(문예창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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