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센터에서 이번 학기부터 진행하는 2008년 세계고전강좌의 여덟 번째 강좌 '인간문제와 식민지 자본주의(2008년 12월 10일)' 강연의 주요 내용을 미리 게재한다. 원광대신문사에서는 총 8회에 걸쳐 세계고전강좌의 주요내용을 게재한다. /편집자


자본주의와 식민주의의 연관성 그려낸 리얼리즘 걸작
민중의 관점에서 식민지 자본주의를 비판… 일관된 민중 연대성 보여줘

 강경애 문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일관된 민중연대성이다. 강경애 문학의 일관된 민중연대성은 식민지시대의 대표적인 진보적 문학운동조직이었던 카프 작가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그러하다. 『인간문제』는 바로 민중의 관점에서 식민지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조망하고 그것의 극복 가능성을 고민한 결과물이다. 이 장편소설은 1934년 8월1일부터 12월22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이기영의 『고향』, 한설야의 『황혼』과 함께 식민지시대의 사회주의 리얼리즘문학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손꼽힌다. 『인간문제』가 이룬 최고의 성취는 식민주의와 자본주의의 내적 연관을 생활의 실감 속에서 섬세하게 그려낸 점에 있다. 적어도 이 점에 관한 한 『인간문제』가 『고향』이나 『황혼』보다 윗길에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순수한' 자본주의란 역사상 한 번도 없었으며, 언제나 󰡐특수한' 자본주의로 존재해왔다. 다시 말해 지정학적 조건과 역사적 특수성에 의해 자본주의의 성격은 부단히 유동하고 변이되는 법이다. 식민지시대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성은 무엇보다 식민성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었다. 『인간문제』는 바로 그 점을 날카롭게 포착한 작품인 것이다.


 이 소설의 주요 무대는 용연이라는 농촌마을과 인천이다. 따라서 작품의 구성 역시 크게 용연에서의 이야기와 인천에서의 이야기로 나누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두 지역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첫째, 선비, 신철, 간난이 등 소설의 주요 인물들이 용연과 인천을 연결시켜준다. 이들의 행로(行路)는 자본주의의 초기 단계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농촌으로부터 도시로'의 과정을 보여준다.


 용연에서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인물이 지주인 정덕호이다. 첫째, 선비, 간난이가 용연을 떠나 인천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이가 정덕호이다. 선비와 간난이는 정덕호에게 겁탈 당한 후 인천으로 가게 되며, 첫째는 정덕호의 횡포에 반대했다가 인천으로 뜨게 된다. 정덕호가 주요 인물들의 운명을 바꾸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신철 역시 정덕호의 딸과 혼사 문제로 엮여 있다는 점에서 정덕호의 자장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런 점에서 정덕호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은 이 작품의 전반부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관건이 된다. 『인간문제』가 그리고 있는 정덕호는 전형적인 󰡐친일' 지주이다. 정덕호의 친일적 성향은 그가 마을의 헤게모니를 쥐는 데 있어 결정적 기반이 된다. 그는 마을의 다른 지주들보다도 더 큰 권력을 갖고 있다. 한치수라는 지주의 논까지 차압할 정도이다. 지주의 논마저 차압할 정도의 권력 행사가 가능했던 것은 정덕호가 일제와 유착했기 때문이다.


 정덕호와 일제의 유착은 그가 면장이 된 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말하자면 정덕호는 면장이라는 직위를 이용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집달리와 순사를 동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군수의 힘을 빌릴 수도 있으니, 지주라도 똑같은 지주가 아닌 셈이다. 그런 점에서 정덕호는 적어도 용연 마을에서는 󰡐지주 위의 지주'로 군림하고 있다. 이러한 엄청난 권력을 그가 쥘 수 있었던 것은 일제와의 유착 덕분이었으니, 정덕호의 친일성이 소설의 전반부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이다.


 『인간문제』는 이를 '법'이라는 말로 상징한다. 정덕호가 친일하고 면장이 된 것이 왜 권력이 되는가. 그것은 그가 󰡐법'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근대는 '법의 지배'로 표상되는 시대이다. 그런 만큼 누가 법을 지배하느냐에 따라 권력의 향배가 결정된다. 정덕호는 일제와 유착하고 면장이 됨으로써 법을 지배하게 되었고, 그 결과 '지주 위의 지주'라는 절대 권력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정덕호는 더 이상 전통적인 의미의 지주가 아니다. 그는 식민지 체제가 낳은 독특한 유형의 지주, 곧 제국주의와의 유착을 통해 󰡐법적 권력'을 행사하는 식민지 근대형 지주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문제』는 식민지 근대의 한 본질을 꿰뚫어보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문제』의 두 번째 무대는 인천이다. 강경애는 한때 인천에서 품팔이를 하면서 산 적이 있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문제』는 인천의 이런저런 면모들을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 특히 이 소설의 숨은 주제가 드러나는 결정적 대목이 대동방적 여공들이 집단으로 "신궁에 참배인가를 하러" 가는 장면이다. 신사참배가 조선인을 󰡐황민화'하기 위한 대표적인 식민정책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더구나 그것을 국가나 공공기관이 아닌 대동방적이라는 일개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은 심상치 않은 의미를 갖는다. 작가가 심사참배 가는 장면을 슬쩍 끼워넣은 의도는 인천으로 표상되는 조선 자본주의의 식민성을 환기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이 장면은 조선의 자본주의 근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기본 시각과 긴밀히 결부되어 있다. 그러한 시각은 가령 '일본인' 감독이 노동자들에게 일표를 나누어주면서 "어서 빠리빠리 하라"고 고함치는 모습이라든가 여공들이 "식은 밥 쪄놓은 것같이 밥에 풀기가 없고 석유내 같은 그런 내가 후끈후끈 끼"치는 안남미를 억지로 먹는 장면에서도 은밀하게 암시된다. 어째서 조선인 노동자들은 다른 곳도 아닌 조선 땅에서 일본인 감독에게 쩔쩔매는 것일까. 왜 조선인 여공들은 우리 쌀 놔두고 맛없는 '안남미'를 억지로 먹어야 하는 것일까. 『인간문제』는 이러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민족적 차별과 식민주의적 수탈에 대해 생각할 계기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인간문제』는 일반적으로 계급문제를 주제로 한 소설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서사의 기본 축 또한 계급적 착취와 그에 대한 저항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기본 축에서 뻗어나온 가지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들이 직간접적으로 식민주의와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식민성의 문제는 용연에서부터 인천에 이르기까지 분명한 서사적 일관성까지 갖추고 있다. 그런 점에서 첫째, 선비, 간난이, 신철 등 작품의 주요 인물들이 인천에서 모이게 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용연에서 인천으로'라는 이들의 동선(動線)은 식민지 근대의 중심부로의 이동이라는 서사적 의미와 함께 자본주의와 식민주의의 내적 연관을 환기해주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신사참배를 강제하는 주체가 대동방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대동방적이 일본인 기업이라는 추정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1934년에 동양방적이라는 대규모 공장이 일본 자본에 의해 인천에 세워졌다는 사실까지 감안하면, 대동방적이 일본인 회사라는 추정은 더욱 현실성이 있다. 실제로 신태범의 『인천 한 세기』에 묘사되어 있는 동양방적 여공들의 모습은 소설 속 대동방적 여공들의 모습과 똑같다. 여기서 우리는 자본주의와 식민주의의 내적 연관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거니와 식민주의의 궁극적 목적이 자본의 지배에 있음도 이로써 보다 분명해진다.


 이처럼 『인간문제』는 자본주의 근대와 식민주의의 상호관계를 끈질기게 추급함으로써 ;식민지 자본주의'라는 상을 축조해내고 있으니, 여기에 카프문학이 빠져 있던 관념적 국제주의와 『인간문제』의 결정적 차이가 놓여 있다. 인천을 무대로 해서 벌어지는 노동운동을 계급운동으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한 것도 그런 연유에서이다. 작가가 굳이 정덕호라는 '친일' 지주를 전반부의 중심인물로 설정한 의도를 감안하면, 인천에서의 노동운동이 민족해방운동의 성격도 갖는다고 보는 것이 훨씬 일관성 있는 해석이라 할 수 있다. 노동운동의 주요 타깃 가운데 하나가 대동방적이라는 점을 보더라도 작품에서 노동운동이 갖는 의미는 중층적이다. 대동방적과의 싸움이란 자본과의 싸움인 동시에 식민주의와의 싸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간문제』만의 고유한 성취가 집약되어 있다.


하정일 교수 (한국어문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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