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답답하다고들 한다. 그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배우는 요즘 대학생들, 그 대학생이 되기 위해 낮밤을 가리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만 하는 중․고등학생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찌 그리 똑같을까' 라는 생각이다.


 아노미(anomie)란 말이 있다. 이 사회를 이루는 어떠한 규범이 더 이상 사회 구성원들의 중심이 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뚜렷한 규칙이 흐려졌기에 사람들은 우왕좌왕 그들의 위치를 찾을 수도 없고 변화하는 삶의 환경에 적응하는 데에도 고생을 한다. 이것이 차례로 불만, 좌절, 갈등 그리고 일탈로 이끈다. 도덕적 해이로 갈팡질팡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욕구는 생래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습이나 문화적 전통에 의해서 형성되는 것이며 개인적인 욕구충족의 정도에 따라서 그 욕구의 수준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런데 문화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기회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정도로 충분하지 않으며 모든 사회집단에 공평하게 나누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다소간의 불일치가 야기된다.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목표는 지나치게 강조하는 반면 제도적 수단으로 그 목표를 꾀할 수 있는 기회는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긴장 속에 우리는 살아간다.


 살아가기 위해 대학에 가야하고, 대학에 가기 위해선 젊은 시절의 모든 것을 양보해야만 하는 이 틀이 예나 지금이나 어찌 그리 똑같을까. 다양한 생각이 어울릴 수 있어야 하모니를 이끌어 낼 수 있음에도, 하나의 목표만을 하나의 생각만을 강요하는 이 틀에서는 결국 갈팡질팡일 수밖에…. 그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여야만 하는가?



대학의 추억: 낭만에 대하여
 요즘의 대학생과 예전의 대학생을 단순하게 비교한다는 것은 무모하다고 할 수 있다. 컴퓨터 앞에 들러붙어 스타크래프트에 열을 올리는 요즘 아이들과 리포트도 직접 손으로 써야했던 예전의 대학생은 이미 꾀하고자 하는 가치도 다르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리'를 듣던 예전의 대학생은 요즘의 대학생을 보고 과연 낭만이란 것을 느끼기나 할까 싶다. 참 낭만이란 말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것들이 많은 예전의 대학생이다. 텁텁한 막걸리를 수저로 퍼마셔야 했던 예전의 신입생 신고식.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원서나 베개 삼기 딱 좋은 두툼한 법전을 옆에 낀 채 괜스레 폼잡던 예전의 대학생. 제발 부모님이 아니라 여자 친구가 직접 받아주길 기원하며 공중전화 박스에서 다이얼을 돌리던 예전의 대학생. 그 아련한 추억들이 낭만이 되었다.


 핸드폰으로 여친의 가족이 옆에 있든 없든 직접 걸어 보고 싶다는 말을 전할 수 있는 요즘 아이들. 폼이라도 두툼한 책을 끼고 돌아다니는 것은 천연기념물이 되어버린 요즘 아이들. 󰡐술은 못 마시는데요'라며 새우깡을 집어 드는 요즈음의 신입생 신고식. 이들도 언젠가는 이러한 모습들이 아련한 추억거리가 되어 낭만으로 남겠지.



하나는 웃고 다른 하나는 운다: 브람스의 <대학축전서곡>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는 대학생활의 낭만을 음악으로 남겼다. 독일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당대의 최고의 음악가인 브람스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한다. 그 학위 증서에는 라틴어로 'Artis musicae severioris in Germania nunc principi' 라는 문구가 있다고 한다. '현재 독일에서 가장 진지한 음악을 작곡하는 예술가'라고 새길 수 있다.


 명예학위에 대한 답례로 브람스는 <대학축전서곡>(Akademische Fest Ouvertiire, Op.80)을 작곡한다. 자신의 대학시절 낭만이 배어 있다. 목로주점에서 친구들과 술잔을 높이들며 고래고래 소리치며 불렀던 노래들을 밝고 화려한 축제의 선율로 담았다. 당시 대학생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를 기본 가락으로 하여 엮어낸 음악이기에 다소 산만한 듯한, 술 마시며 서로를 껴안고 흥에 취한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명예학위 증서에 브람스의 음악적 특징으로 지칭했던 '진지한'이란 이미지는 <대학축전서곡>에서는 찾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박사학위의 위엄에 맞는 엄숙하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작품이 더 적절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대학축전서곡>은 전체적으로 진지하다기보다는 밝고 생기에 차있다.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던 대학생활을 그린 곡이 아니던가? 대학생의 낭만을 묘사한 곡이 아니던가? 그래서 <대학축전서곡>은 엄격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선율을 풀어낸 것이다. 그의 '진지함'은 모처럼 그 두툼한 옷을 벗어젖힌 것이다.


 브람스는 이 시기에 또 다른 서곡을 남겼다. <비극적 서곡>(Tragische Ouvertiire, Op.81)이다. 작품번호가 연이어져 있듯이, <대학축전서곡>과 <비극적 서곡>은 자주 비교된다. '하나는 웃고, 다른 하나는 운다'고.
'웃는 곡'이라는 <대학축전서곡>은 '우는 곡'이라 이야기하는 <비극적 서곡>과 함께 명예학위를 수여한 대학에서 처음 연주된다. 울고 웃고, 웃고 우는 모습이 그려진다.

 

 장규원 (경찰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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