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를 쓰려고 빈 종이 앞에 앉으니, 지난해 신년사에 올 한 해 많은 일들이 일어나길 바란다고 썼던 게 기억이 납니다. 생각하고 바랐던 대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부분도 있었고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사람 일이 다 그렇듯이 좋은 일도 있었고 좋지 않은 일도 있었습니다. 첫 번째 1년보다는 그 다음 해 1년이 더 중요했고 그런 의미에서 더 생각이 많이 납니다. 하지만 한 해를 되돌아 보면서 학교 안팎으로 일어난 큰 일들이 학생들 개개인의 문제까지 해결했나 하는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새해에 함께 우리 곁을 떠나는 학생들을 앞에 두고 '우리 학생들이 우리대학에서 배운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이 자꾸 떠오릅니다. 얼마 전 잡지 <뉴요커>에서도 '부메랑 칠드런(Boomerang Children)'이라고 하여 미국 청년 25세부터 34세 사이의 14%가 대학 졸업 후 바로 부모 집으로 들어와 무위도식하면서 함께 산다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어른'이라고 하면 '서로의 일에 간섭하지 않고 자기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하는 사람'이라는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대학생에게 주어지는 덕목도 어쩌면 '어른'의 그것입니다. 알아서 미래를 대비해야 하고 알아서 자신의 적성을 찾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게 학생들 자신들만의 문제일까요? 어쩌면 우리 학생들은 지금 자신의 재능을 믿어주는 '라즐로 라츠'같은 선생님을 필요로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원광대학의 현실은 어떠할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심히 하지만 불편한 진실들에 대해 침묵하고 있고, 자기들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정치 집단화 되어 불평불만만 퍼트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화려한 미사여구나 그럴 듯한 논리 속에는 다른 뜻을 숨기고 있습니다.

 이런 정치 집단화 되어 있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대학에 아노미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으며, 이는 반드시 바로 잡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擧世而非之 而不加沮). 탐욕으로 찌든, 겉은 어른이지만 어른이 아닌 사람들은 현재 상태로 머물게 되면 결국 말들의 지배를 받는 야후가 될 것입니다.

 교육이라는 건 매뉴얼의 법칙이나 자율적 태도라는 쉬운 말로는 실천할 수 없습니다. 교육은 좀 다릅니다. 대학에서 근무하는 교․직원들은 '교육'이라는 말 앞에서는 직업인의 태도보다는 교육 현장의 일꾼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어른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교육은 창조성을 만들어내는 도구로써, 어른들이 노력하는 만큼 그 노력을 믿고 학생들이 움직여주는 만큼 달라집니다. '내년'이란 건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으레 찾아오지만, '미래'라는 것은 우리들이 만들어가야만 찾아옵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크루그먼 교수조차도 미국의 자동차 3사도 없어질 것이라고 하니, 우리는 어쩌겠냐하며 지금의 경제위기로 인해 의기소침해진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경제위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의 의욕과 꿈마저 조금씩 가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 관습적인 무심함으로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그런 말은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나 어느 조직에 있어서도 언제나 위기만 있는 건 아닙니다. 위기가 있을 때도 있고 기회가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가 있을 때도 있습니다. 위기와 기회는 자신의 힘이 닿지 않는 부분에 있다고 느끼겠지만 미래는 다릅니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일수록 불신과 탐욕과 나와 우를 제거하면 우리는 미래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자라온 대한민국은 <뉴욕 타임즈>에 따르면 '공상과학소설이 현실이 되는 나라'이며, CNN보도에 의하면 '3년 이상 앞서 미래를 살고 있는 나라'입니다.
己丑년엔 원광대학 가족 여러분 모두 미래 안에서 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가정에 따뜻한 행복이 깃들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원광대학교 총장 나용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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