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영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33개 국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450만부 이상 판매된 라우라 에스키벨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기존의 남성중심 문학에서 '요리'란 여성의 의무이자 책임에 불과했다. 부엌 역시 가사노동에 필요한 공간일 뿐이었다. 그러나 요리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기쁨이며 눈물이고, 욕망이며 그 사람의 확장이다. 에스키벨은 이 소설로 이제까지 도외시되었던 부엌과 음식이라는 소재를 전면에 부각시켜 '요리문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

이 소설의 원제목 <Como agua para chocolate>는 '초콜릿을 끓이는 물처럼'이란 뜻이다. 멕시코의 초꼴라떼 음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카카오 열매에서 가공된 카카오 고형이 필요한데, 끓는 물이어야만 녹는다. 그래서 󰡐초꼴라떼를 끓이는 물'이라는 스페인 관용어 표현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극한의 심리상태를 일컫는다고 한다. 알폰소 아라우(Alfonso Arau)가 감독한 이 영화의 여주인공 티타는 삶의 고통과 괴로움을 요리라는 행위를 통해 인내하고 극복한다. 이 영화에서 음식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티타의 자기표현 수단이자 사랑과 슬픔과 욕망을 전달하는 매개체이다.

20세기 초,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멕시코의 한 작은 마을. 큰 농장의 여주인 마마 엘레나에게는 헤르트루디스, 로사우라, 티타의 세 딸이 있다. 티타는 부엌일에 뛰어난 아름다운 숙녀로 자라나 마을의 젊은이 페드로와 "끓는 기름에 도넛 반죽을 넣었을 때와 같이"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막내딸은 평생 결혼하지 않고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가족의 전통에 따라, 티타는 사랑하는 페드로와 결혼하지 못한다. 결혼할 수 없더라도 평생 티타 가까이 있고 싶었던 페드로는, 티타 대신 언니 로사우라와 결혼하라는 마마 엘레나의 제안을 수락한다. 원작소설은 언니와 페드로를 22년 동안 곁에서 지켜 볼 수밖에 없는 티타의 슬픔과 고통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12장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12달을 의미하는 각 장마다 '장미 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 '차벨라 웨딩 케이크' 같은 요리를 하나씩 정해놓고, 요리법과 티타의 사랑이야기를 절묘하게 섞어 풀어나가는 독특한 형식이 사용되었다.

가족의 전통 요리법에 능통한 티타가 만든 음식은 마술적 힘을 지니고 있다. 이 영화에서 티타가 음식을 어떤 마음으로 만들었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예컨대 언니와 페드로의 웨딩케이크를 만들 때 티타는 슬픔에 못 이겨 눈물을 흘린다. 다음날 티타의 눈물이 섞인 웨딩케이크를 먹은 손님들은 모두 역겨워 하며 구토를 한다. 또한 티타가 만든 '장미꽃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를 먹은 헤르트루디스는 그동안 억눌러왔던 성적 욕망을 분출시키며 가슴 속의 불꽃이 목욕탕에 옮겨 붙고 나서 알몸으로 혁명군 대장과 떠난다.

부엌이라는 공간에서 티타는 자신만의 은밀하고 신비로운 세계를 창조한다. 그녀는 요리를 통해 자신을 속박하는 가족의 인습이나 폭압적인 어머니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느낀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에는 중남미문학에서 유래한 마술적 사실주의(magic realism)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 영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티타의 음식부분도 예외는 아니다. 마술적 사실주의란 현실세계에 적용하기에는 인과법칙에 맞지 않는 문학적 서사를 의미하며 예측불허의 스토리로 구성되거나, 적어도 묘사하는 사회가 매우 특별하다. 마술적 사실주의의 이야기들은 리얼리티를 완전히 고정적인 것으로 다루지 않는다. 이야기 속의 인물들도 그러한 상황을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마술이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가정에서 이 영화는 시작하며 이러한 마술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로부터 생겨난다. 비극적인 소재와 사랑/죽음과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생동감 있고 유머러스하다. 멕시코 요리의 화려한 색깔과 달콤한 냄새가 시종일관 관객의 오감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티타의 음식 맛에 반해 요리법을 묻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을 넣어 만든 거랍니다."

"재미있고, 외설적이고, 관능적이고, 낭만적"이라는 평을 받은 이 영화는 전미 비평가협의회 선정 우수외국영화상, 92년 '멕시코 영상예술아카데미'에서 11개 부문 수상, 92년 시카고 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 등 경력이 화려하다.

윤시향 (유럽문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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