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호기 / 『수련』 / 문학과지성사

 그 여자는 어쨌든 이뻤다.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라면 내 생애를 두고 '변태'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을지언정 꼭 한번 집착해보고 싶었다.

 그녀가 사는 곳으로 찾아갔던 때는 공교롭게도 새벽이었다. 새벽안개가 걷히기 전에 간다면 발치에서나 겨우 그녀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녀는 이제 막 잠이 깨어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를 맞았다. 그녀 주위의 공기, 이제 막 멀리서 동쪽 하늘을 부끄럽게 만들며 구름에 가려진 아침 해, 심지어 내 소심함을 가려줄 줄 알았던 새벽안개마저 그녀의 몸에 달라붙어 반짝거리고 있었다. 황금보다도 더 빛났지만 또한 그렇게 몽롱할 수가. 아, 나는 정말로 내 목적을 달성한 것이었다. 그녀의 실체는 '관능'이었다.

 도톰한 입술과 촉촉이 젖어 더 빛나는 피부에 사로 잡혀 내가 혼몽을 거듭하고 있을 때, 그 여자는 조용히 자신의 이름을 알려 주었다. 그녀가 말해준 발음을 내가 제대로 알아먹었을지 어떨지는 그 당시의 내 정신 상태로 봐선 확신할 수 없어서 독자여러분께는 미안하다. 다만 그럭저럭 내가 알아먹은 대로 말하자면, 그녀의 이름은 '시'라고 했다.

 수줍게 웃듯이 살짝, 입술을 오므렸다 벌린 짧은 순간에 정말로 어울릴 법한 이름이 아닌가. 이름이 특이하긴 하지만 당신에겐 정말 어울린다고 말하려는 순간, 그 여자의 몸에선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온갖 '말'들이었다. 처음에 그것은 도무지 내게 하는 말 같지가 않았다. 아직도 그녀의 곁을 어슬렁거리는 안개들, 여린 금실 같은 햇빛 줄기, 바람에게 건네는 말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 그녀의 '몸'을 '듣고' 있었더니, 내게도 들리기 시작했다. 그 말은 정녕 사랑과 유혹의 메시지였다. 맙소사. 나는 생애 처음으로 새벽안개와 햇빛과 바람에게 질투를 느꼈다.

 이전까지는 그저 아름다운 여자일 뿐이었지만 그녀는 이제 내게 완벽한 여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그 여자는 떠났다. 한그루 나무처럼, 녹색 줄기처럼 그녀가 있던 자리는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는 풍경의 한 구석이 되고 말았다.

 한 권의 시집을 읽고 나서 그녀의 이름이 '수련'이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날 새벽 나에게 속삭였던 사랑의 말을 똑똑히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것은 이런 말이었다.

 '이 종이 위로 올라와야 한다. 종이를 맞바라보면서 거기에 찍힌 글자들을 읽으려 하지 말고, 어서 이 흰 종이 안으로 들어오기 바란다… 글자들의 몸과 비비고, 글자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그 소리를 듣기 위해서… 수련을 사랑했던 모네/ 모네는 수련의 육체를 가졌다' 「수련의 육체」

강 건 모 (문예창작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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