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사'나 '미술의 이해와 감상' 수업 첫 시간에 학생들과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보는 이미지가 있다. 바로 지난주 이 칼럼란에 언급된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란 책에 나오는 이미지이다.

 남성용 변기와 신원불명의 인물상이라는 두 미술품을 상상 속의 전시장에 나란히 놓고 본 것이다. "뭐라고, 변기가 미술이라고?"라고 말하기 전에 잠깐만 생각해 보자. 이제까지 온갖 '미술교육'을 통해 배운 모든 지식과 선입견을 보따리에 싸서 잠시 치워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보라. 진솔하게 어느 쪽이 아름다운가? 이 두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선입견을 못 버리겠다면 이렇게 가정해 보자. 가령 지구가 멸망했다. 당신은 수만 년 후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이다. 지구탐사 고적답사를 하다가 뜻밖에 이 두 물품을 발굴했다. 당신은 지구인이 이를 제작한 의도를 모르면서도, 십중팔구 당신네 행성에 가져가서 박물관에 고이 보존하고 '지구인의 예술품'으로 명명하고 감상할 것이다. 박물관을 찾아오는 '무지한' 대중에게 무엇이라 설명하겠는가. 혹시 당신이 하나를 개인 소장하도록 허락된다면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당신이 생각하는 미술의 개념에 어느 쪽이 적합한가'

 강의 시간에 어느 쪽을 택할지 물어보면 거의 절반씩 선호도가 나누어진다. 가령 변기를 원하는 쪽은 '흰 색의 유선형 물체가 상당히 우아하고 세련된 곡선미를 지니고 있어서 꽃을 담기에도 아름다운 작품이다'고 하고, 여인상 쪽은 '아무래도 지구인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추정되어 문화사적 고증품으로 가치가 있겠다'는 식이다. 흥미롭게도 이런 견해는 유물과 추정을 근거로 선사시대의 역사를 쓰는 역사가들을 연상시킨다.   

 그럼 이 두 예술품의 정보검색을 해보자. 21세기 기준에 '뚱뚱한' 여인은 소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조각'으로 일컬어지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이다. 대략 2만5천년 전에 만들어진 11cm크기인 이 상의 얼굴형태는 두루뭉술한 반면 기형적으로 유방과 배, 엉덩이, 허벅지, 생식기가 강조되었다. 곱슬머리는 멋있지만 요즘 성형외과에서 '견적'을 받으면 비용이 막대하게 나올 것임에도 '비너스'로 명명된 것은, 누드 여성이미지를 비난받지 않고 즐기기 위해 미의 상징 '비너스'란 이름으로 포장하여 감상했던 역사상 오랜 풍습 탓이다.

 그 제작의도와 수량은 확신할 수 없지만 많은 학자들이 '풍요와 다산'의 상징물로 추정한다. 하지만 만일 누군가 이는 선사시대에 어린아이들을 위해 대량생산된 수천 개의 장난감 중 우연히 발굴된 하나가 '인류최초의 조각작품'으로 간주되어 오스트리아 빈의 박물관에 고이 모셔진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가 이를 예술작품으로 보는 것을 안다면 구석기인이 무덤 속에서도 웃을 일이라고 주장하면 어떻겠는가? 과연 미술작품인가?

 남성용 변기는 마르셀 듀샹(Marcel Duchamp)이 반예술(anti-art)과 레디메이드(ready-made)라는 새로운 개념에 근거하여 이미 만들어진 대량생산품을 기존의 미학적 선입견과 규범(canon)을 무시한 채 선택하여, 1917년에 '미술작품'으로 전시한 것이다.

 변기를 '샘'으로 명명하고 사인했고, 용도를 미술품으로, 위치를 화장실에서 미술관으로 옮겨서 조각으로 전시했다. 당시 시대가 용납하지 않아 파손되었다가 40년 후에야 마침내 사람들이 이해하고 듀샹한테 복제품을 부탁하여 다시 미술관에 '미술작품'으로 전시된 작품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전히 변기인가?

조 은 영 (서양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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