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면 <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와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원고를 번갈아 싣습니다.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는 지금 우리 시대의 학문과 사유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화두나 이슈를 짚어보고 이를 통해 미래의 방향까지 가늠해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세계고전강좌》는 고전과의 대화를 통해 시대와 문명, 인간과 자신을 이해하고 오늘의 현실을 사유하는 열린 정신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우리대학뿐만 아니라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 두 가지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Ⅰ. 출판의 동기
『인간과 무의식의 상징』은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 편집하여 런던의 Aldus Books에 의해 1964년에 출판된 『Man And His Symbols』를 이부영 등이 번역하여 출간한 저서다. 다른 번역본으로 도서출판 열린책들에 의해 출판된 이윤기의 『인간과 상징』이 있다. 이 책은 융의 생애 마지막 저작인데 융이 공공의 장소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강연하는 중요한 꿈을 꿈으로써 출판하려 하지 않았던 처음 결정을 바꾸게 한 이상한 동기로 세상에 나오게 되어 흥미롭다.

Ⅱ. 칼 구스타브 융
융은 그의 자서전의 첫머리에서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自己實現)의 역사이다(Mein Leben ist die Geschichte einer Selbstverwirklichung des Unbewußten)."라 했듯이   1875년 스위스 동북부 투루가우州의 작은 마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1961년 퀴스나하트의 호반(湖畔)에서 물새들에게 모이를 주기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여 집필하던 중 애제자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한 영면을 맞기까지 그의 생활사는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의 역사이며, 그의 모든 관심은 꿈 등의 상징에 나타나는 집단무의식의 자기원형(自己原型:Selbst Archetypus)을 살펴 실현하는 데에 있었다.

Ⅲ. 『인간과 무의식의 상징』 - 무의식에의 접근 : 칼 구스타브 융 -
의식과 무의식으로 양분된 인격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은 현대인이 치루고 있는 큰 곤욕의 하나다. 그것은 상징을 통해서 알려지고 있다.

인간의 영혼 : 소위 문명화된 의식은 그 바탕인 본능에서 계속 떨어져 나왔다. 그러나 이들 본능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우리들의 의식과의 접촉을 잃었을 뿐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그 자체의 존재를 주장하게 되었다. 신경증의 경우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나거나 또는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나 생각치 않은 망각 또는 말의 실수나 꿈 등 여러 종류의 사건으로 나타난다.
사람은 그가 자기 영혼의 주인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가 그의 기분이나 정동(情動)을 조절할 수 없는 한, 그리고 무의식의 요인들이 그의 계획과 결정에 교묘하게 끼어들고 있는 은밀한 방법들을 의식할 수 없는 한 그는 결코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될 수가 없다. 이들 무의식적 요인要因이 존재하게 된 것은 원형적 심리의 자율성 때문이다.
현대인은 자신의 분열 상태에 직면하지 않기 위해 칸막이를 쓰고 있다. 즉 외부생활과 자신의 영역은 별개의 서랍 속에 보관해 두고 결코 대면시키지 않는다.
자유 서방은 신경증 환자처럼 분열의 상징선(線)을 표시하는 ‘철의 장막’으로 해리(解離)되어 있다. 자유 서방이 은밀히 그리고 약간의 수치심을 안고 참아 왔던 외교적인 기만, 조직적인 사기, 은근한 협박 등이 그들이 투사한 동구 공산세계로부터 공개적으로 대량 되몰려와 서방세계를 신경증적인 매듭에 묶어 놓고 있다. ‘철의 장막’ 저편에서 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그들 자신의 사악한 그림자의 얼굴인 것이다.
공산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신화를 가지고 있는데 모든 것이 누구에게나 풍족하게 돌아가며 위대하고 공정하고 현명한 추장이 인간 유치원을 지배하는 ‘황금시대’ 또는 ‘에덴동산’의 아주 오랜 원형적인 꿈이다. 자유 서방 역시 복지국가를 믿으며 세계의 평화와 인간의 평등, 영원불변하는 인간의 권리와 정의를 믿으며, (큰 소리로 외치지는 않지만) ‘지상의 하나님의 왕국’을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전자 망원경으로 하늘에서 하나님의 왕좌를 발견하거나, 사랑하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여전히 어느 정도는 생전의 육체를 가지고 우리 주변에 체류하고 있다는 것을 확증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와 같은 관념이 “진실이 아니다”라고 한다. 그러나 증명 여부를 떠나 인간은 적극적으로 그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로 하여금 우주 안에 자기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도록 하는 보편적인 관념을 필요로 한다.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종교적인 상징의 역할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보다 넓은 의미를 느낄 때, 인간은 단순히 소유하고 소비하는 존재 이상으로 자신을 들어 올린다.  만일 이런 느낌이 없다면 그는 방황하며 불행하다. 성(聖)바울(St. Paul)의 참되고 의미 깊은 인생은 그가 하나님의 사자(使者)라는 내적 확신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를 사로잡은 신화는 그를 단순한 양탄자 직조공 이상의 어떤 것이 되게 만들었다.

                                   지난 21일 세계고전강좌에서 강연하는 김성관 교수

상징의 역할 : 현대인은 ‘합리주의’가 인간이 신성력을 지닌 상징과 관념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파괴하면서 그를 얼마나 정신적 ‘지하세계’의 처분에 떠맡기도록 했는지를 알지 못한다. 현대인은 ‘미신’으로부터는 자유로워졌으나(혹은 그렇다고 그가 믿지만) 그 과정에서 그의 정신적 가치들을 극히 위험할 정도까지 상실하였다. 그의 도덕적이며 정신적인 전통은 와해되었고 그는 지금 이러한 붕괴에 대한 대가를 전 세계적인 방황과 분열로 치루고 있는 중이다. 과학적 이해가 발달함에 따라서 우리의 세계도 비인간화 되었다. 인간은 그 자신이 우주에서 고립되었다고 느끼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더 이상 자연에 관여하고 있지 않으며 자연에 내포된 상징적 의미를 서서히 상실하면서 자연 현상들과 그의 ‘무의식적 동일성’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 막대한 손실은 우리의 꿈의 상징에 의해 보상되고 있다. 꿈의 상징은 우리의 본래의 특질 즉 본능과 특이한 생각들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것은 우리에게 낯설고 이해 불가능한 자연의 언어로 그 내용을 표현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자연의 언어를 합리적인 언어와 개념으로 번역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분열의 치유(治癒): 우리의 지능은 자연을 지배하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고, 그 세계를 기계로 가득 채웠다. 그 기계들이 너무나 유익하다 보니 우리는 그것을 버린다든가 우리가 그것에 예속될 가능성이 있음을 생각조차 못한다.
우리가 구원을 청하여 기구(祈求)할 신들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이 세상의 위대한 종교들은 점점 심해지는 빈혈증을 앓고 있다. 왜냐하면 도움을 줄 힘인 신성력(Numina)은 숲과 강과 산, 그리고 동물에서 도망쳐 버렸으며 신인(神人:God-Man)들은 무의식의 지하세계로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위대한 종교들을 과거의 유물에 싸인 수치스런 생활을 유도하는 것이라고 바보 취급을 하고 말았다. 우리들의 현재의 삶은 이성(理性)의 여신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어떤 변화가 어디서든 시작되어야 한다고 볼 때 그 변화를 체험하고 그것을 계속해서 수행해나가는 사람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이다. 변화는 실로 한 개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렇게 시작하는 사람이 우리들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좋은 것이다. 아무도 그자신이 하기에 귀찮은 일을 누구 다른 사람이 해주지 않을까 주위를 둘러보고 기다릴 수는 없다. 어떤 위대한 종교도 어떤 다양한 철학도 세계의 현재 상황에 직면해서 인간이 필요로 하는 안정감을 줄만한 강력하고 고무적인 관념을 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의식의 마음도 이런 점에서는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할 수 없는 것 같다.
아무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으니 혹시 자신의 무의식이 상징을 통해 우리를 도와줄 무엇을 알고 있지 않을지 우리 각자가 자신에게 물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김성관 교수 (철학과)

<필자소개>
-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와 동대학원 졸업.
- 원광대학교 인문학연구소의 초대과 2대 소장직을 거쳤으며, 인문대학 학장, 열린정신포럼 회장, 도덕교육원 원장을 역임.
- 현재 원광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저역서 : 저서에 『융心理學과 동양종교』, 『心性說에 관한 硏究-圓佛敎思想과 융思想의 比較考察을 中心으로-』 등이 있고, 논문에 「阿賴耶識과 無意識-불교사상과 체. 게. 융사상의 비교고찰을 중심으로-」, 「寂護의 『眞實綱要』에 나타난 世界起源論 批判」, 「유식과 무의식에서 본 열린정신-아뢰야식과 집단무의식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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