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 넓고 다양한 미에 대한 학습 필요

 요즈음 우리나라의 모든 지자체에서는 문화와 예술과 미술의 바람이 매우 거세다.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적당히 먹고 살만한 경제의 선취가 이루어졌다고 생각해서인지, 여기저기에서 문화와 예술을 통해 그동안 국민들의 시각과 청각과 촉각에 못 다해준 '호사'를 위해 여러 가지 행사들을 꾸미고 있다. 또 곳곳에서는 문화와 연계된 영화제, 연극제, 만화제 등이 봇물 터지듯 생겨나고 또 골치 아픈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미술 비엔날레도 생겨나고, 서예비엔날레도 생겨나고 사진비엔날레도 생겨났다.

 다소 비아냥거릴 요소가 듬뿍 담겨있는 이러한 행사들은, 그러나 '제 3세계'라는 딱지를 갓 벗은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여실히 당연하다. 최근 IT산업과 자동차 산업이 경쟁력을 가지면서 우리의 G.N.P는 2만 달러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참으로 감개가 무량한 일이다. 따라서 이처럼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서 드러나는 허점은 우리 국민들의 시각과 청각과 촉각이 문화 예술적으로 세련되지 못했음이다.

 그동안은 좀더 많이 가진 자들을 중심으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사회의 한 부분을 답습하려 몸부림쳐왔다. 먹고 마시는 것을 비롯해서 걸쳐 입고, 보고 수집하는 모든 분야의 기준이 서구 중류사회였던 것이다. 하여, 부지런히 해외로 여행을 가고, 그곳에 가서 쇼핑과 수집을 해오면서 일부층의 욕구가 충족되어왔다. 그러나 그 욕구가 보편화되어야 한다는 우리 중산층의 욕구는 지금 이렇게 각 지방의 문화 예술 사업의 과잉으로 번져 가고 있는 것이다.

 딴지를 걸 생각은 없다. 다만 리윰(Leeum, 삼성 이건희씨의 성을 따서 Lee와 박물관을 뜻하는 Musem의 um을 붙여 만든 조어, Lee+um= Leeum)이라는 자신의 성을 딴 박물관을 만들어 스스로 수집한 미술품과 같이 그 박물관 안에서 박물이 되어가는 어느 성공한 기업인처럼 되어서는 아니 되겠다는 것이 나의 생각일 뿐이다.

 이 희대의 웃지 못 할 발상과 결정은 그동안 우리나라에 문화와 예술에 대한 올바른 학습이 부재했다는 또 다른 증거이니 그러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그동안 자주 미술이라는 용어에 대해 오해를 갖고 있었다. 워낙 경제가 고르게 배분되지 못하고 편중된 나라이어서도 그러하겠지만, 초, 중, 고등학교 시절을 거치면서 교육 시스템 안에 있는 미술시간에 그저 크레용으로 풍경을 그리거나, 혹은 교탁 위에 올려놓은 주전자나 꽃병 정도를 그리는 학습을 미술교육이라고 생각해 온 까닭이다.

 이는 점차 높은 학년으로 올라 갈수록 대학 입시에 짓눌려 그나마 희미해지는 특징이 있다. 하여, 우리 국민 대다수는 미술이라는 것을 단지 '무엇인가 그리는' 그림에 국한해서 이해하고 있다. 미술은 그러니까 '회화'라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 그것은 온전치 않은 생각이다. 미술이란 미(美)를 다루는 기술(術) 전반을 모두 다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오직 그리는 행위에 국한해서는 안 된다. 조각도 미술이요, 공예도 미술이요, 디자인도 사진도 건축도 판화도 혹은 일종의 춤사위도 그것이 아름다움을 전제한 것이라면 미술인 것이다. 그러니까 미술의 영역은 단지 어떤 하나의 틀로 국한해서는 안 되는 보다 넓은 영역을 지칭하는 것이고, 그림이란 그리움을 외현하는 하나의 동작에 불과하다.

 따라서 미술대전, 혹은 미술시장, 혹은 미술교육과 같은 용어가 사용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폭넓고 다양한 미에 대한 학습이 전제되어야 바르게 이해할 수도, 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는 미술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예술을 이야기 할 때 쓰는 이 예(藝, 심다, 기예, 궁극)라는 용어는 의미심장한 뜻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미와 큰 다름이 없이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예술을 말할 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뜻으로의 예술은 이미 '17세기' 말 영국의 존 로크를 시작으로 미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있었던 시기를 지나, 순전히 미가 미만을 위한 행위를 할 때 사용하는 언어임을 알 필요가 있다. 즉, 일반적인 예술(art)은 공예를 지칭하는 뜻이고, 그 예술이 예술 그 자체를 위한 행위인 Fine Art로써의 예술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예술(fine art)의 의미인 것이다.

정 주 하 (백제예술대학 교수 /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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