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면 <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와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원고를 번갈아 싣습니다.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는 지금 우리 시대의 학문과 사유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화두나 이슈를 짚어보고 이를 통해 미래의 방향까지 가늠해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세계고전강좌》는 고전과의 대화를 통해 시대와 문명, 인간과 자신을 이해하고 오늘의 현실을 사유하는 열린 정신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우리대학뿐만 아니라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 두 가지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현대의 우리들은 많은 문화의 범람 속에 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인간의 속성상 결코 소멸될 수 없는 것이 ‘성(性)’문화이다. 눈을 뜨면 각종 방송매체를 통하거나, 거리에 나서서는 온갖 광고물과 전단지들을 통해서 접하게 된다. 이처럼 우리와는 밀접한 관계를 지닌 “성”은 고대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예술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한다. 중국의 많은 문학 소설 작품 중에서도 “성‘을 소재로 한 것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는 작품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금병매(金甁梅)』일 것이다.

『금병매』는 『삼국지(三國志)』·『수호전(水滸傳)』·『서유기(西遊記)』와 함께 중국의 명대 사대기서(四大奇書)로 일컬어진다. 『삼국지』가 역사소설(歷史小說)로,『수호전』이 협의소설(俠義小說)로,『서유기』가 신마소설(神魔小說)로, 그리고 『금병매』는 중국의 대표적인 염정소설(艶情小說)로 각각 분류된다.

 금병매에 대한 평가
 내용은 15세기 중엽 明代 사회를 배경으로 서문경이라는 한 남자와 여섯 여인이 벌이는 애정 행각이다. 그들의 사랑행위를 표현함에 있어서 그 당시의 사회적인 분위기로 보아 너무나 충격적일 만큼 생생하고도 적나라하게 표현하였기에 호평과 함께 악평을 동시에 받고 있는 것이다. 작자가 가명을 써서 발표 할 만큼 표현이 충격적이다. 성에 대한 표현의 생동성 못지 않게, 명대 사회의 각 계층의 부정과 부패를 마치 한편의 다큐멘트 영화를 보듯이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러한 표현의 적나라함과 내용의 선정성과 당시 정치·사회묘사의 생동성으로 인해, 작품이 처음 출현하였을 때부터 『금병매』가 과연 어떠한 작품인가에 관해 의론이 분분하다. 명대의 심덕부(沈德符)는 ‘당시의 세상 일을 질책’한 작품으로, 또한 이 작품의 작자로 알려져 있는 난릉소소생(蘭陵笑笑生)과 비슷한 시기의 사람인 동오농주객(東吳 弄珠客)이라는 사람은 작품의 서문에서 ‘음서(淫書)’로, 후기의 포송령(蒲松齡)은 ‘음사 (淫史)’로 평을 하였다. 청대의 장죽파(張竹坡)는 그것을 다시 ‘기서(奇書)’에 포함시켜 새롭게 그 가치를 인정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청대의 역대 황제들은『금병매』를 여전히 민간의 풍속을 해치는 음서로 보아 전후 세차례(1687년, 1708년, 1725년)에 걸쳐 출판과 유포를 금하는 령을 전국에 내렸다. 그래서 이러한 감시의 눈을 피하기 위해 그 서명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본래의『금병매』라는 이름을 피해 단지『繡像八才子詞話』,『四大奇書第四種』, 『多妻鑒』, 『校正加批多妻鑒全集』等으로 바뀌어 전해지기에 이르렀다. 최근에 이르러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소설『아Q정전(阿Q正傳)』의 작가인 노신(魯迅)은 『중국소설사략(中國小說史略)』에서: ‘ 명대 인정소설(人情小說) 가운데에서 금병매가 제일 유명하다.’라고 평을 하며, 주성(朱星)같은 사람은 이 작품이야말로 진정한 ‘사회소설( 社會小說) ’이라고 말한다. 최근에는 종전까지 연구하던 『금병매』의 작자·판본·쓰여진 과정은 물론이고, 작품의 사상내용·미학가치·소설발전사상의 지위 및 정치·경제·철학·종교·민속·언어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1985년 강소성 서주시(江蘇省 徐州市)에서 거행된 제 1차 『금병매』학술토론회와, 1989년에 거행된 제 1차 국제 『금병매』학술토론회를 전후하여,‘『금병매』의 성가는 『수호전』이나『홍루몽』아래에 있지 않다.’ 라는 재인식 하에 『홍루몽』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홍학(紅學) ’에 버금하여, 단순히 작자나 판본의 문제를 연구하던 종전의 것에서 벗어나 그 예술적 가치를 밝히려는『금병매』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금학(金學)’의 붐이 중국을 비롯하여 국제적으로 크게 일고 있다.

 

 한국에서는 연구 미미
 한국에서는 이러한 국제적인 추세와는 달리 아직까지도 전통이라는 굴레에 갇혀 그에 대한 학술적인 전문 연구는 물론이고 변변한 번역서조차 없는 실정이다. 조선시대에 이미『삼국지』·『수호전』·『서유기』등의 번역서가 있으나 『금병매』는 그 번역서가 거의 눈에 뜨이지를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 이상익(李相翊)교수는 『금병매』가 금서였으며 조선시대가 지나치게 도덕을 숭상하는 전통사회였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광해군년간의 허균(許筠)이 『한정록(閑情錄)』에서 『수호전』과 『금병매』가 매우 뛰어난 작품이라고 이미 언급을 하고 있고, 또한 다른 문집에서도 그 작품명이 거론되는 것으로 추측컨대, 그것이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내용의 음란성 때문에, 비록 공개적으로 공공연하게 널리 읽혀지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적어도 사람들이 그 작품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하겠다. 그것은 이덕무(李德懋)가 그의 문집인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금병매』가 한번 나오자 음탕함을 조장(助長)함이 적지 않았는데 당시 나이 어린 사람들은 이 책을 보지 못한 것을 수치로 삼았다.”에 서 그것을 알 수 있다 하겠다. 그러나 그  내용의 선정성으로 인해 우리 선조들이 이 작품에 대해 직접 언급한것은 매우 적다. 간혹 기재해야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금병매(錦屛梅)’·‘병매(屛梅)’· ‘금병매(金屛梅)’ 등으로 대체해서 표기를 하고 있다. 책은 대개 1775년을 전후해서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다고 보고 있다. 

 현대 시각에서 재조명 필요
 인간에게 있어 성생활은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활동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맹자(孟子)는 「고자(告子)」편에서 ‘ 식·색(食·色)은 성야(性也) (먹는것과 색욕은 인간의 본성이다) ’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것은 바로 ‘수오지심(羞惡之心) ’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인간은 이러한 성생활을 윤리나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은폐하거나, 대개 규방안에서 행하고  이것이 밖으로 알려지게 되면, 사람들은 부끄럽게 여기고 그것을 더욱 더 숨기려 하였다. 이같은 인간의 본능적 심리에 대해 혹자는 금병매 서문에서 이르기를 “예컨데 규방의 일은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좋아 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소위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좋아한다(人皆好之)’는 대개 인간의 본성이 그러하도록 한 것이며, 바로 ‘식·색(食·色)은 성야(性也).’가 그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모두 그것을 싫어한다(人皆惡之)’는 바로 인간의 ‘수오지심(羞惡之心)’의 발로인 것이다. 사실 ‘음(淫)’이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고(過)’, ‘넘치는 것(溢)’이다. 색정(淫欲)이 인간의 자연행위라고 하지만 만약 그것이 규방의 범위를 넘어서게 되면 그것은 ‘음(淫)’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금병매』에서 서문경을 ‘배부르고 따뜻하면 음욕을 생각하는(飽暖思淫欲)’ 인물로 묘사한 것은 그를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대표하는 인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비단 서문경만의 생각이 아니라, 인간이 지닌 본성이기에 우리는 작품속의 이야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것이다. 이런 본성을 지닌 인간들이 과연 “성”이라는 문제를 앞에 두고 ‘성인(聖人)’이 될 수 있는지? 아니면 ‘성인(性人)’이 되는지는 스스로 자문해 볼 문제라 하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우리에게 던져주는『금병매』가 과연 지탄을 받을 “음서(淫書)”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인간의 내면세계에 감추어져 있는 “성(性)”이라는 본능을 소재로 삼았다고 해서, 혹은 그 표현이 너무 적나라하다고 해서 그러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지나치고 편견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을 감상하는 후세의 많은 사람들이 작자인 소소생이 소재로 쓴 “성(性)”이라는 것에만 현혹이 되어서는 작자가 말하고자하고, 밝히고자하는 당시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이나 인간의 내면세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명대뿐만이 아니라 중국을 대표하는 ‘성소설(性小說) ’로 알려져 작자의 의도가 크게 오인되고 있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명대 사회의 가장 정확한 ‘사회사(社會史)’인 동시에, 인간의 내면세계를 스스로 반성해 볼 수 있는 ‘교훈서(敎訓書’)라 할 수 있는 본 작품이 제대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때문에 현대의 시각과 관점을 가지고 본 작품을 새롭게 재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하겠다.
강태권 교수 (국민대 중어중문과)

<필자소개>
- 연세대 중어중문 졸업, 국립대만대 중문연구소에서 문학석사, 연세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취득
- 중국문제 연구소 소장 역임
- 현재 국민대 중어중문과 교수이며 성곡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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