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가가치를 창출한 성곡적 문화콘텐츠 사례 : 해리포터 시리즈
디지털 시대, 정전에서 콘텐츠로

우리 시대 삶의 양상을 한 단어로 규정한다면 그것은 바로 '디지털(Digital)'일 것이다. 디지털이라는 용어는 인터넷, 컴퓨터, 멀티미디어 등의 과학 문명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 시대 삶의 모습을 축약해 보여준다. 디지털 기술 문명은 우리 삶에 엄청난 변화와 속도를 가져와, 이전 시대의 양상과 뚜렷이 구분해주고 있다.

아날로그에 비해서 디지털이 갖고 있는 장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우선 그 속도와 정확성을 들 수 있겠다. 디지털로 대표되는 오늘날의 과학 문명과 정보 교류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또한 그것이 아날로그에 비해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물리량을 계량화하는지는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바로 이런 디지털의 속성이 무조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속도에서 벗어나 있는 사유와, 계량화를 벗어난 구체적 질감의 획득까지 디지털이 무조건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초고속, 최첨단 등으로 규정되는 과학 문명과 정보화의 물결 속에서, 너나없이 속도에 몰입하는 경향은 분명히 제어되어야 한다.

디지털 시대는 인간의 향유해온 문화 양상까지도 달라지게 만들었는데, 그중에서도 매체의 다각화와 콘텐츠의 다양화를 획기적인 변화로 들 수 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무성했던, 이른바 문학의 죽음에 대한 논의는 영상문화로 인한 독자층의 감소를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었다. 1990년 '문학의 죽음(The Death of Literature)'을 선포한 앨빈 커난(Alvin Kernan)은 더 이상 '책 속에 진리가 있다'가 통용되지 않는 압도적 TV의 위력을 그 사례로 들었었다. 물론 문자라는 단일매체에서 다양한 미디어 매체로 바뀌고 있지만 문학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문학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았던 진단을 다른 시각에서 보면 결국 활자라는 매체가 미디어 매체로 다각화된 것일 뿐이라고 가볍게 응수할 수도 있다.

콘텐츠라는 단순한 용어가 널리 유행하면서 다양한 의미로 쓰이게 된 것도 디지털 시대가 낳은 현상이다. 그중에서도 왜 문화콘텐츠인가. 사실 따지고 보면 콘텐츠(contents)라는 용어나 문화콘텐츠(culture contents)라는 용어는 국적불명의 용어다. 단어의 축자적 의미 이상의 의미로는 영어권에서 쓰이기 시작한 용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 문화나 예술이라는 영역은 일반 대중이 가까이 하기 어려운 분야였으며, 그래서 대중과 엘리트를 가르는 지표의 하나였다. 그런데 디지털은 다수에게 열려 있으며 쌍방향으로 소통한다. 이런 시대에 문화나 예술 작품들 역시 고답적인 정전에서 벗어나 대중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며 쌍방향으로 소통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는 정전의 성격이 강했던 작품(work)이라는 용어가 텍스트(text)라는 용어로 대체되다가 다시 콘텐츠(contents)라는 용어로 그 명칭과 개념이 다소간 달라지면서 널리 통용되고 있는 요즘의 경향과 관련을 맺고 있다. 문화콘텐츠 혹은 예술콘텐츠 등의 용어 역시 다수의 대중들과 함께 쌍방향에서 자유롭게 소통하는 디지털 기술과 함께 받아들여져 널리 쓰이게 된 것이다.

 

스토리텔링, 문화콘텐츠의 기반

문화콘텐츠는 문화 산업과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 문화콘텐츠란 유형·무형의 문화유산을 산업화시켜 대중 매체를 이용해 널리 보급하는 상품화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 문화콘텐츠는 산업과 연계시켜 경제적 수익 실현을 목표로 한다. 흔히 말하는 OSMU(One Source Multi Use)란 문화콘텐츠의 부가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콘텐츠를 변화시키거나 파생상품을 활성화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그리고 오늘날 문화 산업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아져서 국가경쟁력의 핵심으로 인정될 만큼 중요해졌다. 문화와 산업을 별개로 생각하던 패러다임은 이미 무너졌으며, 문화 산업이 다른 자연과학기술 산업들과 함께 당당히 주요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일찍이 롤프 옌센(Rolf Jensen)은 정보화 사회가 지나면 소비자에게 꿈과 감성을 제공하는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의 도래를 예견한 바 있다. 그리고 드림 소사이어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며 미래사회의 지도자는 능숙한 이야기꾼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정보화사회가 지나기도 전에 우리는 지금 '이야기'와 '감성'을 중시하는 문화적 관심을 목도하고 있다.

오늘날 스토리텔링은 문화콘텐츠만큼이나 흔하게 사용되는 용어가 되었다. 문화콘텐츠의 핵심으로 지목되고 있는 스토리텔링은 이제 모든 인문학과 문화 담론에 있어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스토리텔링은 어떤 단어와 연결시켜도 어색하지 않다. 영화 스토리텔링, 광고 스토리텔링, 취업 스토리텔링, 법정 스토리텔링, 게임 스토리텔링, 미술 스토리텔링, 음악 스토리텔링, 사진 스토리텔링, 음식 스토리텔링, 축제 스토리텔링 등, 그야말로 스토리텔링은 어떤 용어와 연결해도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왜 그럴까. 스토리텔링이 갖고 있는 속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원래 스토리텔링 자체가 낯선 개념이 아니다. 이른바 '옛날 옛날에-'로 시작되는 친근한 스토리텔러의 존재를 어릴 적의 기억으로 누구나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에서는 18, 19세기에 이미 직업적인 이야기꾼이라 할 수 있는 전기수가 존재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오랜 세월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구비전승이 바로 스토리텔링의 전형적 사례이다. 이런 점에서 21세기는 새로운 구비 문학의 시대라는 규정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유형·무형의 문화유산을 대중매체를 이용해 상품화시켜 널리 보급하는 것이 문화콘텐츠인데, 이 문화콘텐츠의 내용은 스토리텔링 방식이 주축을 이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화콘텐츠의 스토리텔링이란 간단히 말해 '(문화)이야깃거리의 이야기화'라는 정의가 가능하다. 결국 스토리텔링은 문화콘텐츠의 기반이자 1차 자료인 셈이다. 스토리(story) 말하기(tell)를 함께 하는(-ing) 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정전에서 텍스트를 거쳐 콘텐츠라는 용어가 유통되고 있듯이, 스토리텔링 역시 내러티브를 대체하여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전 시대의 내러티브(narrative)라는 용어가 완결적인 서사의 속성을 갖는다면,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라는 용어는 상호작용적인 재현의 속성을 더 부각시켜 준다. 

 

디지털 시대의 항체의 역할

기호학자에게는 세상이 모두 기호로 보이듯이, 스토리텔링의 창작자에게는 세상이 모두 스토리텔링의 소스 콘텐츠로 간주될 수 있다. 한 자료에 대해 간단하지만 다양한 시놉시스가 생성되고 이들이 서로 결합하거나 분절되는 과정을 통해 다양한 에피소드가 창조될 수 있으며 이 에피소드들의 선택과 조합, 재배열 등에 의해 다양한 스토리텔링 가능해진다. 또한 디지털시대의 강점 중의 하나로 언제 어디서든 정보를 쉽게 취득하고 공유할 뿐만 아니라 개인이 재창조하여 유포할 수 있다는 것(UCC :User Created Contents)을 들기도 하는데, 이 역시 스토리텔링의 무한 확산을 가능하게 한다.

그런데 왜 이야기에 열광할까. 예전처럼 전기수가 필요한 시대, 즉 여가가 없었고 글자도 모르고 읽을거리도 적었던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고립 속에 단절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제각기 고립에서 벗어나 소통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소통의 욕구가 새로운 시대의 스토리텔링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확실히 인간은 서사적인 존재인 것이다.

디지털 기술 문명은 우리 삶에 엄청난 변화와 속도를 가져왔다. 이전 시대와는 확연하게 달라진 이러한 삶의 양상에 대해 한 철학자는 “디지털 시대의 존재론적 정서는 불안을 내포한 가벼움”(김상환, 문화와 정보 사회: 기술, 언어, 실재에 대하여)이라고 규정한다. 디지털 시대의 무지막지한 진군을 주춤거리며 목도하고 있는 상황에 처해 우리는 왠지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불안을 내포한 가벼움 속에 부유하고 있다. 우리 삶을 더 여유롭고 풍요롭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욱 바쁘고 고달프게 몰아세우고 있다는 것, 이러한 현실이 바로 디지털 시대가 갖고 있는 불안의 중심 요소가 아닐까. 어쩌면 이런 생각조차 우리에게 여전히 남은 아날로그적 사유 때문인지 모른다.

오늘날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지 않고서는 문화콘텐츠를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문화콘텐츠는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면서도 디지털 시대의 부정적 요소를 제어하고자 하는 측면이 있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진보와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세상 모든 것을 물질화, 계량화, 수치화하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모든 것을 디지털의 깜빡거리는 LCD 계기판 숫자로 드러내는 무지막지한 용량과 능력 앞에서, 아날로그적 인간의 정신적 가치와 인간성에 대한 사유는 맥없이 무화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이 바로 불안을 내포한 가벼움의 본질적 정체는 아닐까. 그리고 그 불안을 문화콘텐츠를 통해 위로받거나 대응하고 싶어진 것은 아닐까.

이런 점에서 21세기에 문화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의 부각은 문화 산업적인 측면에서만의 요구가 아니다. 일련의 인과관계의 연쇄인 이야기는 자기를 인식하고 정체성을 찾아가는 중요한 방식이다. 문화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을 통해 우리는 지금 디지털 시대의, 불안을 내포한 가벼움과 단절을 극복하고자 한다. 문화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면서도 디지털 시대의 부정적 요소에 대한 정신적·문화적 항체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강연호 교수(문예창작학과)

<필자소개>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계간 『문예연구』 편집주간, 계간 『시와정신』 편집위원

-<현대문학이론학회> 부회장

-저서: 『시창작이란 무엇인가』(공저), 『한국 현대시의 미적구조』 등의 연구서와 『비단길』, 『잘 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 『세상의 모든 뿌리는 젖어있다』 등의 시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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