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면 <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와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원고를 번갈아 싣습니다.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는 지금 우리 시대의 학문과 사유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화두나 이슈를 짚어보고 이를 통해 미래의 방향까지 가늠해보자는 의도를 담고 있습니다. 《세계고전강좌》는 고전과의 대화를 통해 시대와 문명, 인간과 자신을 이해하고 오늘의 현실을 사유하는 열린 정신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우리대학뿐만 아니라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 두 가지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도덕의 계보』는 니체가 6번째로 Sils-Maria에 체류하던 1887년 6월11일부터 약 두 달여에 걸쳐 저술한 작품이다. 니체는 이 글을 통해 자신의 철학적 작업의 초반부터 진행해 왔던 도덕과의 전쟁을 진지하게 재개하고 있다. 유럽의 철학과 사회가 철저하게 도덕에 의해 각인되어 있음을 체계적이고 일관적으로 서술하려는 시도가 여기서 처음으로 행해지고 있다. 그는 도덕의 발생사에 주목하며 도덕이 표면적으로 제시하는 목적과 대립되는 어떤 다른 실제적인 목적이 도덕의 배후에 있다는 것을 밝히려 한다. 이러한 각성을 통해 도덕이라는 전례의 환상을 깨려는 것이 니체의 의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도덕적 환상을 깨려는 니체의 전략은 이제껏 주어진 것으로 당연시 되어온 가치들의 가치를 묻는 것이다. 이를 위해 던져져야할 질문들이 바로 계보학적, 발생학적 질문들이다. 이 질문들을 통해 그가 밝히려는 것은 도덕적 "가치들이 성장하고 발전하고 변화해온 조건과 상황에 대한 지식"이다. 이 계보학적 질문의 기저에는 이렇게 생성된 도덕적 가치들이 삶의 퇴락의 징후인지, 충만함과 긍정의 징후인지, 그리고 이 가치들이 인간 속에 잠재한 가능성들을 촉진시켜 가장 강력하고 탁월한 타입의 인간을 달성시킬 수 있는지, 아니면 인간을 축소시켜 왜소하고 유약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물음이 깔려있다. 이러한 시선의 변화, 즉 "새로운 물음과 새로운 눈을 가지고 오래된, 판독하기 어려운 인간도덕의 과거사라는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것이 니체가 말하는 도덕과 가치의 자연 발생사를 탐구하는 일이다.
『도덕의 계보』는 세 편의 논문으로 구성돼 있고 각각 ‘선과 악(gut-b?se)’, ‘좋음과 나쁨(gut-schlecht)’; ‘죄’, ‘양심의 가책’ 그리고 그와 유사한 것들;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제목이 달려있다. 니체는 이 세편의 연관된 논문을 각각 기독교의 심리학, 양심의 심리학, 성직자 심리학이라 칭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그 첫 번째 논문인 '선과 악', '좋음과 나쁨'의 내용을 소개하기로 한다.
 제 1논문이 다루고 있는 것은 가장 일상화된 가치구분, 즉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도덕의 탄생경로와 ‘선과 악의 도덕’, ‘좋음과 나쁨의 도덕’ 사이의 차이이다. 이와 더불어 이 두 가지 도덕들이 삶과 인간을 고양시키는지 아니면 퇴화시키는 것인지가 함께 물어지고 있다. '선과 악', '좋음과 나쁨'이라는 두 개념 쌍은 각각 노예도덕과 주인도덕의 가치판단 기준으로 설정돼 있다. 전체적인 논문의 구도는 '선과 악'이라는 개념 쌍이 '좋음과 나쁨'이라는 개념 쌍을 대체하게 된 것에 대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니체는 영국의 도덕 심리학자들이 '좋음'이라는 개념과 판단에 있어 비이기적 행위를 좋은 행위라고 여긴 것은 그 행위를 통해 이익을 얻게 되는 수혜자의 입장에서 판단하여 좋다고 여기게 된 것이고, 이후에는 이 사실을 망각하고 습관적으로 비이기적 행위자체를 좋은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는 '좋음'이라는 개념의 본래적인 발생지가 '좋은 인간' 자체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즉, 니체는 저급하고 비속한 천민에 대해서 자신들의 행위를 좋고, 고귀하고, 강하다고 느끼고 평가하는 사람들의 거리의 파토스에서 좋음과 나쁨의 대립을 본다. "고귀함과 거리의 파토스, 좀 더 높은 지배 종족이 좀 더 하위의 종족, 즉 '하층민'에게 가지고 있는 지속적이고 지배적인 전체 감정과 근본 감정 - 이것이야말로 '좋음'과 '나쁨'이라는 대립의 기원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니체가 주인도덕과 노예도덕의 차이를 그 가치판단의 능동성과 수동성을 기준으로 가르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과 자신의 행위에 대한 긍정에서 나온 '좋다는 감정'과 '나쁘다는 감정'의 구분은 자신을 가치 창조자로 여기는 귀족적 문화의 특징으로 표현된다. 니체는 반면에 이웃사랑을 전하는 기독교적 도덕의 기원을 강자와 주인에 대한 약한 자들의 원한감정(Ressentiment)에서 찾고 있다. 그는 유태교와 초기 기독교가 다른 삶의 형태와 싸우며 자신들의 규범을 도덕으로 삼기 시작한 것을 보이려 한다. 이들을 통해 고상한 도덕에 대해 철저한 가치 전도가 일어나 "비참하고, 가난한 자, 무력한 자, 비천한 자만이 착한 자이며, 고통 받고 궁핍한 자, 병든 자, 추한 자가 유일하게 경건하고 신에 귀의한 자이며, 축복받는 자"로 해석되게 됐다는 것이다. 반면에 고귀하고 강한 자들은 "영원히 사악한 자, 잔인한 자, 음란한 자, 탐욕스러운 자, 무신론자, (…) 저주 받을 자, 망할 자"가 된다. 니체가 말하는 도덕에 있어서의 노예의 반란이 성공한 것이다.
 도덕에서의 노예반란이 시작된 때는 "원한(Ressentiment) 자체가 창조적으로 되어 가치를 낳게 된" 순간이다. 노예의 도덕은 나보다 우월한 타자의 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부정이 바로 이 도덕의 창조적 행위이다. 반면, 강자는 그 힘의 충일함과 “조형하고 치유하고 쉽게 망각하는 힘”때문에 원한을 잘 느끼지도 않거니와, 설령 느끼더라도 바로 힘의 실제적인 행사를 통해 원한을 방출해 원한을 통한 중독이 일어나지 않는다. 노예의 창조성은 그들이 상상을 통해 ‘사악한 적’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서로 간에는 예의를 지키고 존중하는 고귀한 강자들도, 그들 바깥으로 나가 이방이 시작되면 야수로 변한다. “고귀한 종족의 기저에는 금발의 야수가 있어 먹이감과 승리를 찾는 본성이 때로 방출돼야 한다”는 니체의 문구는 고귀한 자의 자연에 맹금 같은 야수의 본성이 있어 아무런 가치의 개입 없이 그 광포한 힘이 자연스레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야수를 길들여 문명화된 짐승, 즉 인간을 만드는 것이 문화의 의미일까? 야수는 두렵지만 그를 경탄하며 두려워하는 것이 두렵지 않은 대가로 병들고, 반쯤인 덜된 인간들, 쇠약하고 중독된 자들을 보며 견뎌야 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 니체의 답이다.
 “우리는 인간 때문에 괴로워한다”라는 그의 진술이 대변하듯이 니체가 평생의 테마로 삼은 것 중의 하나가 노예 도덕의 승리로 인한 “인간의 왜소화와 평준화”를 뜻하는 현대 유럽의 병이다. 고귀한 종족이 멸종돼 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력 넘치는 자기긍정과 위대함을 향한 도약, 가끔은 모든 것을 파괴할 만한 두려운 힘을 가졌으나 그 힘 자체가 새로운 지평을 열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고귀한 종족은 다 제거되고, 현대의 길들여진 평균적 인간만이 남아 인류는 이제 퇴락과 병약화의 길을 걷고 있다.
 니체가 주인의 도덕, 강자의 도덕을 통해 추구하고 있는 것은 그 인간의 위대성 때문에 인간에 대한 믿음이 지속될 수 있는, 선악을 넘어선 완성된 인간의 가능성이다. 니체는 인간의 왜소화와 평준화를 통해 나타나는 현대와 허무주의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공포와 더불어 우리는 또한 인간에 대한 사랑과 경외심, 인간에 대한 희망, 아니 인간에 대한 의지도 잃어버렸다. 이제 인간의 모습은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이것이 허무주의가 아니라면, 오늘날 무엇이 허무주의란 말인가?....우리는 인간에게 지쳐있다.”
 

 첫 번째 논문의 마지막을 니체는 세계사를 관통하는 상술한 두 도덕 간의 큰 싸움들을 정리하며 맺고 있다. Rom에 대한 Judea의 승리로 노예도덕이 확립된 후, 르네상스기에 Rom의 옛 고귀한 가치들이 잠시 부활하는가 했더니 다시 종교개혁을 통해 유대가 승리한다. 프랑스 혁명(자유, 평등!, 박애)을 통해 다수와 노예도덕의 승리는 더욱 견고해진다. 비인간Unmensch(짐승)과 초인의 종합인 나폴레옹의 등장이 마지막으로 나타났던 주인도덕이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하지만 이걸로 정녕 모든 싸움은 끝난 것인가? 니체의 희망과 기다림을 공유하며, 가치의 창조자인 강자와 주인 도덕의 재등장을 원하는 이들은 그의 후속 논문들을 읽어야 할 것이다.
<추천도서> 책세상 출판사 니체전집 14권: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김정현 옮김,
양대종 교수 (마음인문학 연구소 HK 연구교수)

<필자소개>
- 고려대학교 철학과 졸
-독일 레겐스부르크(Regensburg)대학(석사), 독일 훔볼트(Humboldt)대학(박사)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
-저서 『Die Problematik des Begriffs der Gerechtigkeit in der Philosophie von F. Nietzsche(Duncker & Humblot, 2005)』, 『Was ist der Mensch?(de Gruyter,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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