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와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 원고를 번갈아 싣습니다. 특히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에는 2012년 1학기부터 새로 개설된 글로벌인문학강좌의 내용도 게재합니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들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시대가 잘못 가고 있다
 시대가 궤도를 벗어나 잘못 가고 있다(The Time is outof joint). 셰익스피어는 『햄릿(Hamlet)』에서 시대와 세계가 잘못 움직여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우리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우리 시대에는 인간소외(비인간화), 환경위기, 지구화(세계화), 지구적 빈부의 양극화, 전쟁 및 공격성의 증가, 신자유주의의 문제 등 실로 많은 현안이 놓여 있다. 밖으로는 미국의 9 11테러사건과 뉴욕 세계무역센터(WTC)건물의 붕괴, 아프카니스탄전쟁과 이라크전쟁, 일본의지진과 후쿠시마원전사고, 이슬람권과 미국/서양의 충돌등 많은 사건이 있었고, 국내와 대학에서도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반값등록금, 대학구조조정 등 많은 사건이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혼란과 변혁의 와중에 우리 시대는 무조건 빠른 속도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속도강박증과 절차적 합리성을 무시한 채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는 강박신경증을 앓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근대 이후 지속되어 온 물질주의는 앞으로도 우리의 삶을 계속 지배하며 현대인을 물신주의로 이끌고 갈 것인가? 경제적 지표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이 시대는 병들어 있는 것이 아닐까? 물질적 풍요와 속도강박증 속에 행복을 찾는 현대인의 모습은 과연 건강한 것일까? 인간의 삶에 관한 성찰을 하는 인문학은 경제적 풍요와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위기의 시대에 시대적 위기를 진단하고 성찰하는 인문학이 더욱 필요한 것일까?
 
 
 
 인문학, 21세기에 왜 문제가 되는가?
 
 인문이란 본래 인간의 삶의 무늬 를 의미하며, 인문학(humanitas)이란 이러한 인간의 삶의 무늬가 그려진 철학, 역사, 문학, 예술, 제도와 문물 같은 각종 문화적 양식을 통해 구현되는 인간의 존재 의의나 인간다움의 가치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철학이나 문학, 역사 속에서 인류의 지혜를 길어 올리며, 이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을 성찰하며 인간의 가치와 문화적 동력을 미래적 상상력을 통해 새롭게 발굴하는 작업이다.
 헌팅턴에 따르면 21세기 문명의 핵심은 단순한 자연과학의 발전이나 산업생산 혹은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삶의 질이나 문화적 가치의 실현이다. 그는 1990년에 한국이 가나에 비해 1인당 GNP가 15배 이상이 된 원인을 분석하며 그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문화에 있다고 말한다. 즉 한국인들이 지니고 있던 검약, 투자, 근면, 교육, 극기정신 등의 가치가 사회적 경제발전을 일구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물량적 물질주의로 질주하며 정신의 가치를 저버리고 돈의 물신주의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학생들은 인문학적 교양에 무관심하고, 대학은 돈 버는데 직접 연관되지 않는다고 인문학의 학과들을 폐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문학이나 철학이 과연 그 시대적 효용성을 다한 것일까? 인문학은 과연 기업이나 경제적 삶과는 무관한 것일까?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내 모든 경영기법은 논어에서 나왔다 고 말하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인문학이 없었다면 나도 없고 컴퓨터도 없었을 것이다 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상상력은 IT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에 기초한다고 밝히면서,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애플이 가진 모든 기술을 내놓겠다 고 말한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을 주는 인류 지혜의 보고인 인문학 속에서 인간과 시대를 읽었고, IT기술과 인문학적 상상력과 결합될 때 새로운 미래적 가치가 생산된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20세기 최고의 역사학자 토인비(Arnold J. Toynbee)는 자신의 마지막 저서 『미래를 살다(Surviving the future)』(1971)에서 인류의 미래 가능성은 인문정신의 함양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인류가 지금까지 낳아온 가장 위대한 문학작품, 시각예술, 음악, 고등종교, 철학을 연구하는 일에서 시작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우리가 미래에 생존하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인문학이나 예술, 문화적 가치는 폐기의 대상이 아니라 21세기 인간다운 삶(neo-humanitas) 을 만들어주는 새로운 생존조건인 것이다.
 
 21세기와 인문학의 가치
 인문학은 시대나 문명, 사회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읽는 능력을 계발한다.
 문학은 인간의 삶의 의미나 행위의 가치뿐만 아니라 세계와 시대를 통찰하고 비판하는 힘을 준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인간의 삶을 억압하는 문명의 이념이나 제도를 밝혀내며 그것에 저항의 힘을 인문학적 자원 속에서 발견하고, 문학을 통해 주변부로 밀려나 배제된 삶의 다양한 변방의 이야기를 조명해 억압된 것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능동적 기억의 글쓰기 를 시도하며, 철학을 통해 삶과 사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가치 있고 이상적인 미래사회를 그려낸다.
 전자네트워크, 예술, 문학, 음악 등이 중시되는 지식혁명의 시대에 인문학은 지식과 정보를 재구성하고 코스모폴리타니즘의 공감적 감성과 다문화적 의식의 성찰언어를 통해 시대 문제를 비판적으로 읽는다.
 
 인문학은 자아성찰의 힘을 제공한다.
 
 
 인문학은 시대와 사회를 비판하고 문명이 나가야할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삶을 통찰하고 우리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고 삶을 의미 있게 이끌어가는 자아성찰의 힘을 제공하기도 한다.
 우리가 왜 사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인지, 바람직하고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 무엇이 정의인지, 절차적합리성이란 왜 중요한지 등의 물음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면서 묻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우리는 공자나 맹자, 노자, 장자, 불교에서, 또는 아리스토텔레스나 칸트, 니체, 프로이트, 롤즈 등에서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다양한 답을 모색할 수 있다.
 자아성찰의 능력은 삶의 경직이나 무기력에서 탈출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며, 자율적으로 자신의 삶과 미래를 설계하도록 이끄는 힘의 원천이 된다.
 얼 쇼리스(Earl Shorris)는 인문학이 정신적 삶의 뿌리를 제공하며 희망의 인문학 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1995년 노숙자, 빈민, 마약중독자, 죄수 등을 대상으로 정규대학 수준의 인문학을 가르치는 클레멘트 코스 를 열고, 철학과 시, 미술사, 논리학, 역사를 가르침으로써 삶에 대해 성찰하는 법을 가르치며, 사람들로 하여금 정신과 영혼의 힘을 얻고 진정한 자존감을 회복하는 법을 가르친 것이다. 인문학은 돈을 버는 직접적인 방법이 아니라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성찰을 제공하며 인간다운 삶의 자존감을 찾는 영혼의 능력을 길러준다.
 인문학은 '다르게 생각하기'와 생산적 대화능력을 제시해 준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인간의 삶의 의미를 반추하고, 소설을 읽으면서 삶의 부조리나 역설을 느끼며, 철학을 하면서 수많은 사유와 조우하며 자신의 생각의 언어를 찾아낸다. 인문학은 이러한 맥락에서 삶과의 만남이자 의미와의 조우이며 자기 자신과의 생산적 대화이다. 인문학의 훈련은 삶의 의미와 무의미, 모순과 역설, 보이는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 걸린 인간의 영혼의 줄 위에서 삶을 균형 있게 바라보고 유지하는 훈련이자 생산적인 자기 만남의 훈련이다. 이러한 인문학적 소양이야말로 자기를 생산적으로 표현하고 타인과 진정으로 소통할수 있는 능력과 사태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다.
 인문학은 기존 사유의 패러다임을 의심케 하고 새로운 사유의 길을 이끌어내는 창의적 사고의 원천이 된다. 자신을 끊임없이 낯설게 하는 야생의 사고 에 젖어들 때 절박한 현실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다르게 생각(Andersdenken)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보게 될 때 우리는 자신의 기존 사고의 틀을 넘어 보다 생산적이고 창의적으로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다르게 생각하기는 생산적 의사소통의 소양을 배양하게 된다.
 
 네오 휴마니타스 시대의 인문학적 관심
 인문학은 사회나 문명, 시대에 대한 통찰뿐만 아니라 자아에 대한 성찰을 제공한다. 인문학은 인간
의 삶의 무늬가 그려놓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통시적 의미 해석학이며, 공감생존의 방식을 탐구하
는 사회 문화 인식의 공시적 기억술이다. 이러한 인문학적 공부는 삶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영위하
며, 타인과 공감적 소통을 확대하고 행복하게 사는 능력을 길러주며, 자신을 생산적으로 표현하는 상상력과 창의력의 원천이 된다.
 오늘날 미국의 160개 대학에서는 인문고전 100권 독서프로그램이 전개하며 인문학적 소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21세기는 타인에 대한 배려, 자연과의 교감, 자신의 삶의 질에 대한 관심, 세계와의 감성적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이다. 인문학의 가치는 바로 성찰, 소통(공감), 창의성에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세계와 자연, 인간과 자기 자신의 내면세계를 의미 있게 열어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우리는 인문학을 통해 잘못 가고 있는 시대와 인간의 삶을 깊이 성찰하고 이것을 통해 미래를 새롭게 여는 정신적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인문학적 소양교육은 아집과 불통을 넘어 소통과 공감속에서 타인을 인정하고 미래를 생산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한 인간적 관심이다. 네오 휴마니타스의 시대에 인간답게 사는 것에 대한 성찰은 인문학이나 예술, 문화에대한 관심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시대의 잘못된 궤도 위에 서지 않고 미래의 비전 위에 21세기를 발전적으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성찰과 창조의 학으로서 인문학과 예술정신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김정현 교수(원광대 철학과)
 
<필자소개>
- 고려대학교 철학과 졸업.
-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교 철학박사.
- 현재 원광대 철학과 교수, 한국니체학회 회장.
- 세계표준판 니체전집 편집위원 역임.
- 저서: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 기술 시대의 의
사 , 니체, 생명과 치유의 철학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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