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와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 원고를 번갈아 싣습니다. 특히 <우리 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에는 2012년 1학기부터 새로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강좌의 내용도 게재합니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들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1. 역사의 의미

역사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그 어디에도 현존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역사가는 현재의 시점에서 자신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제한된 유물들과 기록들을 근거로 하여 과거를 구성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사실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역사가들이 파악한 주관적인 역사이다. 그리고 기록들이란 대부분 승리한 자들이 남긴 것이므로, 이것들을 근거로 하여 재구성된 역사는 결국 승리한 자들의 역사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존의 모든 서술된 역사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어야만 한다.
그런가하면, 역사가 실제로 일어났었다는 것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그 역사를 인간은 어떻게, 무엇으로 이해해왔던가?
고대시기에는 인간은, 역사 속에는 신과 인간이 함께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그것도 중요한 계기는 신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사고했다. 이러한 神話的 역사사고가 극복된 것은 B. C. 5세기에, 역사란 인간 행위의 결과라고 정의되면서부터였다. 여기에서는 인간성은 불변하는 것으로 이해되었고, 따라서 역사는 반복적인 진행으로 파악됨으로써 그리스·로마 시기의 인간주의적 역사이해와 함께 역사의 循環論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로마제국 말기에 기독교가 세계종교로 확대되면서부터, 역사는 하느님이 인간을 최후의 심판으로 인도해가는 救援의 과정이라는 역사이해가 강요되었다. 그리하여 중세시기에는 역사는 신의 의지에 의해 영원의 帝國을 향해 나아가는 직선적인 발전으로 사고되었다. 따라서 이 시기에는 역사는 神을 정당화하는, 神學의 시녀였다. 이러한 神學的 역사사고는 14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르네상스시기에 회의에 부쳐졌다. 이 시기에 인간은 자신의 자연적 본성과 현존재를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이상적 목적을 설정하는 인문주의 문화 속에서 인간주의적 역사사고를 다시금 회복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제 2의 인문주의의 공적이다. 이 새로운 역사사고는 15-16세기에 확대된 지리적 세계와 다른 민족들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통해, 또한 17세기의 과학혁명을 통해 확보된 자연질서들에 대한 지식을 통해 더욱 확고해졌거니와, 나아가서는 인간에게 역사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의식시키면서 새로운 과제를 부과하게 되었다. 즉 자연질서에 대한 합리적 사고는 모든 인간의 自然權을 인정하는 自然法 사상을, 그리고 확대된 세계에 대한 지식은 세계 모든 민족들을 兄弟愛로써 포용하는 세계시민주의를, 그리고 이 兄弟愛와 이성을 근거로 하여 역사를 더욱 평화롭게 발전시킬 수 있다는 진보사상을  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이성주의, 세계시민주의, 진보사상은 바로 18세기 계몽사상의 3대 기본원리들이다. 이제부터 인간은 역사창조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으며, 역사가는 세계사를 서술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제 3의 인문주의의 공적이다.
19세기에는 역사의 개념이 더욱 복합적인 것으로 되었다. 즉 18세기 중엽부터 전개된 산업혁명을 통해 인간의 힘 이외에도 많은 다른 요소들의 공동작용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역사현실을 정신현상으로 파악하는 Hegel적인 관념주의적 역사사고가 제시되었고, 경제구조의 법칙적인 질서와 그 힘들을 역사의 동력으로 강조하는 Marx의 물질주의적 역사사고가 등장했던 것이다. 또한 자연과학적 사고와 함께 환경 및 자연적 조건들의 힘과 그 법칙적 질서를 강조하는 Comte의 실증주의적 사고가 역사의 개념을 구성하는 데 함께 기여했다. 이 3가지 사고들을 종합해보면, 역사란 인간이 자연적 조건 속에서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는 가운데 형성시킨 물질적 구조로부터 제약을 받기도, 또는 극복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본질과 이상을 실현시켜 나가는 과정이라고 정의될 수 있겠다. 이를 압축해서 역사란 필연과 자유의 종합이다 라고 정의될 수 있겠다.
19세기 말까지는 역사가들은 이상의 3가지 역사사고들을 수용하면서 여러 영역들의 역사들을 연구 및 서술해왔으나, 주로는 정치사 중심의 오랜 전통이 계속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초부터는 정치사 중심의 역사파악을 극복하는 연구경향들이 등장했고, 20세기 중엽부터는 역사생활의 모든 영역들을 종합하여 파악하는 경향이 확고해졌다.
이제 역사는 그 모든 영역들이 종합된 全體史로서 이해되고 있다.

2. 역사적 인간 - 역사 속에 서 있는 인간의 의무

 우리가 주목해야할 바는 全體史로서의 역사의 개념에서는 제 2의 인문주의의 인간주의적 역사사고와 제 3의 인문주의가 각성시켜준 역사에 대한 인간의 책임의식이 어느덧 망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영역들과, 작용요소들에 동일한 권리를 부여하고 나면, 인간은 해방감에 빠져 일탈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금 의식해야할 바는, 역사의 가장 강력한 동력은 역시 인간의 정신이라는 사실이다. 즉 새로이 형성된 조건과 체제가 아무리 새로운 모순을 불러일으킨다해도, 인간정신은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문제는 이것이 극복된다 해도, 새로운 모순이 다시금 등장하여, 인간의 노력은 徒勞로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시지프스(Sisyphous)에 비유되기도 하며, 역사진행을 비관주의적으로 파악하는 역사가들, 철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와 인간의 바로 그러한 모습을 낙관주의적으로 수용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다음의 모순을 항상 극복해왔으며, 이러한 점에서 역사는 또한 "끊임없는 해방의 과정"이라고 정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긍정적 사고는 역사창조에 대한 책임의식에서 이며, 이 의식은 결국 역사진행에 대한 참여를 요구한다. 이 참여는 역사 속에 서 있는 인간의 의무이다.
역사에 대한 참여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역사는 과거와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항상 새로운 시작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 이룩되어 온 바에 머무른다면, 역사는 정체해버리듯이, 인간도 역시 이룩한 바를 향유만 하고 있거나, 기존 체제의 압박과 그 메카니즘을 탓하기만 하고 있을 때, 그는 기존 체제의 기계적 부속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므로 인간은 역사의 새로운 시작에 항상 함께 참여해야만 한다. 실로, 인간의 역사적 의미는 그가 역사진행에 얼마나, 어떻게 참여하면서 항상 새로이 시작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새로운 시작이 항상 일정한 방향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진행은 때로는 보수적, 진보적 방향을, 때로는 자본주의적, 사회주의적 방향을, 또는 혁명적 방법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어느 한쪽에 과도하게 치우치지 않는 中庸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방향들의 중간에 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태도라고 볼 수는 없다. 중간이라는 것, 평균치에 선다는 것은 역사를 정체시킬 수 있으며, 흔히는 퇴보마저 초래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여러 방향들을 종합하되, 그 위에서 현재가 추진시켜야만 할 방향을 세우고서, 그 실현에 매진해야만 한다. 이러한 방향을 세운다는 것은 물론 고도의 지식인의 과제이다. 그러나 일반 교양인들에게도 그것은, 그가 자신의 현재를 인식하고 있을 때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현재는 그 자체 속에 과거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그의 현재인식은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어떠한 관계에 서 있는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현재인식은 극대화되고 있는 모순과, 그것의 극복방향을 알 수 있게 만들어준다. 그렇다면 이제 두 번째의 결론은, 인간은 항상 정확한 현재 인식 위에 미래를 위한 방향을 의식하면서 항상 새로이 시작되고 있는 역사진행에 함께 참여할 때, 그는 역사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역사적 인간이 된다는 점이다.

3. 세계시민적 인간 - 오늘의 과제 

이제 우리가 세 번째로 숙고해보아야 할 바는 인간은 자기 시대의 경향성을 인식하면서 그 성격에 상응하여 자신을 항상 새로이 설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의 21세기는 세계화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막강한 세계화 경향성으로부터 이제는 어떠한 지역 국가나 민족도 벗어날 수 없으며, 어떠한 중요 문제도 개별 국가들의 지역문제로서만 해결될 수는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자신을 세계시민으로서 인식해야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설정하면서 역사를 세계시민주의적으로 사고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어떤 문제도 극복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지역 국가적인, 배타적 민족주의적인 관점으로 역사를 사고해서는 안 된다.
세계화 현상은 필요한 방향이며, 결국 인류가 지향해야할 목표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전개된 세계화 현상이 지금까지 보여주고 있는 문제점은, 그것이 특정한 강대세력들의 월등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근거로 하여 패권주의적으로, 세계자본주의 체제화를 향해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모든 민족들이 자신들의 역사적 전통과 권리를 존중받으면서 인류공동의 번영과 이상을 위해 기여하는 것으로 되어야만 할 세계시민주의와는 어긋나는 방향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세 번째  결론은, 세계화 경향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인 것으로 수용하되, 각 민족생활의 역사적 권리와 고유한 문화를 보존 및 계발하면서, 이를 억압하는 획일화된 세계체제와 그 방향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대립하면서, 모든 문제를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따라 사고하면서 임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 또한 오늘날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현재의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기술·산업자본주의 체제는 역사생활의 한 영역인 경제생활일 뿐인데도 다른 모든 영역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실로 인간성마저 상실하도록 만드는 鐵則과 같은 자체의 법칙을 갖고 있다. 그것이 이제는 자본주의의 역사 속에서 가장 反국민경제적, 反인륜적인 비정규직 제도마저 확산시키고 있지만, 어떤 다른 영역도 이 현상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기대하면서 실현시켜야 할 바는 정치, 문화, 종교의 영역들이 자신들의 역사적, 사회적 기능을, 즉 反사회적 경지로까지 나아가버린 기술·산업자본주의의 지배력을 제어하는 기능을 회복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정치영역이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에는 바로 그러한 역할을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과거에 정치가 경제와 유착되었던 과정을 거쳐서, 이제는 전자가 후자에 종속되어 버리고 있다. 이제 정치는 본래의 기능을 회복해야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치의 도덕화가 시급히 필요하다.


  이상신(고려대학교 명예교수)
 

 <필자소개>
· 고려대학교 사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 독일 빌레펠트(Bielefeld)대학 역사학부 수학, 철학박사.
·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 역임.
· 현재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 저서: 『개정 서양사학사』, 신서원, 1993.
· 역서:『세계사적 성찰(개역개정판)』, 신서원, 2010
  (J. Burckhardt, Weltgeschichte Betrachtungen, 1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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