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9월 미국에서 국가기밀유출 혐의(로버트 김은 휴전선 부근의 북한군 배치실태와 북한의 무기 수출입 현황, 북한 해군의 동향 등 한반도 관련 정보를 당시 주미 한국대사관 해군 무관이었던 백동일 대령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았다)로 구속됐다가 지난달 4일 완전한 '자유인'이 된 로버트 김(한국명 김채곤)씨가 10년여 만에 부인 장명희씨와 함께 6일 우리나라에 도착하였다.

 도착 직후 김씨는 "사건 초기 과한 형량을 부과했던 미국 정부나 구명에 소극적이었던 한국 정부에 매우 섭섭한 마음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스파이도 아니었고 한국정부가 고용한 사람도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저는 한번도 스스로 애국자나 영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단지 조국을 잊지 않고 살아왔을 뿐입니다. 한국인이라는 긍지를 갖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로버트 김이 조국을 사랑한 대가는 너무 가혹하였다.

 그는 오랜 옥살이로 심신이 지친 데다 1998년 파산선고를 받아 아무런 재산이 없다. 연금 혜택도 못 받고 고정적인 수입이 없어 생계를 걱정할 정도다. 또한 아들의 석방을 애타게 기다리던 부친의 사망 소식을 교도소에서 들어야만 했다.

 로버트 김이 체포될 당시 상황은 북한의 무장잠수함 침투사건 발생 직후로 국내에선 미국의 핵 관련 대북 협상정책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던 때였다. 로버트 김이 희생양이라는 당시 소문은 한-미간에 조성된 이런 미묘한 긴장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

 문제는 한국정부의 무관심이었다. 로버트 김 체포 후 김영삼 대통령은 워싱턴포스트지와의 회견에서 "이 사건은 개인의 문제다. 우리와는 관계도 없고 관심도 없다"고 말함으로써 로버트 김은 단순 기밀누설죄(31개월)만 선고받을 수 있었음에도 대사관 직원과 공모한 혐의가 추가돼 9년이란 중형을 선고받았다.

 이스라엘 정부가 미국에서 간첩죄로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받은 유대계 미국 시민권자 폴라드에게 국적을 부여하고 총리가 바뀔 때마다 미국 대통령에게 석방을 요청했던 것과 너무 대조적이었다.

 우리는 그가 뒤늦게라도 조국의 사랑과 푸근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정부는 이제라도 로버트 김의 희생에 대한 보상 방안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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