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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의 『통치론』 , 국가의 기원과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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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1.17  17: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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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론』의 시대적 배경
로크(John Locke: 1632-1704)는 근대 국 역사에 있어 서 가장 정치적 굴곡이 심한 격변기에 일생을 보냈다.그 가 청교도와 의회주의를 신봉한 중산층 법률가의 아들로 태어 날 당시 의회는 해산상태에 있었다.그는 생애에 청 교도혁명(1640)과 명예혁명(1688)이라는 두 차례의 혁명 을 경험했다.
 1690년 출간된 로크의 정치이론서인 『통치론』은 명 예혁명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저술된 것으로 오랫동 안 사람들은 인식하여 왔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에 따라 오늘날 이 저술은 1679년 집필이 시작된 것으로 받아들 여지고 있다. 당시 로크는 런던 상업자본가의 정치적 이 익을 대변했던 새프츠베리(Shaftesbury)와 교분을 가졌으 며, 그로부터 많은 향을 받았다.그러던 중 새프츠베리 는 가톨릭과 접한 관계를 가져온 왕실과 싸움을 전개 했으며, 이 때 그가 로크에게 절대군주제를 지지한 필머 (Robert Filmer: 1588-1653)의 이론을 반박하는 을 쓰라 고 부탁했다는 추정이 맞는 것 같다. 그 시대에 필머의 가부장권설은 절대적 왕권을 지지한 왕당파 사이에 유행 하여 인기가 높았다.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지배적 권력 을 왕국에서의 군주의 절대적 권력으로 발전시킨 필머의 가부장권설은 결과적으로 왕권신수설을 기반으로 한 절 대군주제를 옹호하는 이론과 다름이 없었다.
 로크의 『통치론』(Two Treatises of Government)은 두 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 논문은 로버트 필 머 경 및 그 추종자들의 잘못된 원칙과 근거에 관한 지적 과 반박 , 그리고 제2논문은 시민정부의 참된 기원, 범 위 및 목적에 관한 소론 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서양 의 근대 정치사상에서 큰 향력을 발휘한 위대한 로크 의 정치이론은 제2 논문에 담겨있다.
 로크는 그의 생애에 여러 통치형태를 경험했다.즉, 그 의 조국 국에서는 전통적인 절대왕정으로부터 공화제 로 이행되었고(1649년 크롬웰의 공화정 수립), 그리고 공 화정의 지나친 진전에 대한 반동으로 왕정이 복고되어 전제정치가 부활했으며(1660), 마침내 명예혁명을 통해 국민주권에 기초를 둔 제한군주제가 확립되었다. 주지하 다시피, 로크가 주장하는 통치형태는 제한군주제(온건군 주제)이다. 이런 측면에서 명예혁명의 승리는 곧 로크의 승리라 할 수 있겠다.
 
국가기원
국가의 기원에 관한 제 학설은 역사적 기록에 의존하 는 것이 아니라 그랬을 것이라는 역사사회학적 가정에 입각한다. 로크 시대에 국가기원에 관해 여러 이론들이 경쟁했다. 국가의 기원을 가족에서 찾는 가부장권설은 가장의 지배권이 발달하여 군주권이 되었다고 역설했다. 보댕(1530-1596)과 같은 사상가들이 주장한 왕권신수설 은 왕은 하느님으로부터 권력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신성 불가침하며 절대적이라고 보았다. 필머의 가부장권설은 왕권신수설을 뒷받침하여 절대왕권을 옹호했다. 사회계 약설은 국가가 생성되기 이전에 인간과 자연법이 존재했 다는 사실에 주목했으며, 국가는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인간 상호간의 합의와 동의(즉, 계약)에 의 해 성립되었다고 보았다. 홉스(1588-1679)가 사회계약설에 입각하여 절대왕정을 옹호했는데 반하여, 로크는 사 회계약설을 가지고 제한군주제를 변호했다. 로크의 『통 치론』이 필머가 아닌 홉스를 겨냥하여 저술되었다는 일 부 주장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로크에 의하면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자연법의 테두리 안에서 스스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서 자신의 행동을 규율하고 자신의 소유물과 인신(人身)을 처분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의 상태 으며, 모든 권력과 권한 은 호혜적이며 무릇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지지 않는 평등의 상태 에 놓다는 것이다. 자연상태 에서는 그것을 지배하는 이성의 표현인 자연법이 있었으 며, 그 법은 모든 사람을 구속했기에 자연상태는 자유 의 상태이지, 방종의 상태는 아니었다 고 그는 보았다. 그리고 자연상태에서 자연법의 집행은 모든 사람의 수 중에 맡겨져 있었다 고 덧붙다.즉, 사람들은 위반자를 처벌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으며, 자연법의 집행자가 되 었다는 것이다.
 로크는 하느님이 사람들에게 세계를 공유물로 제공했 으며 또한 그들에게 삶의 이득과 편의를 위해 이를 이용 할 수 있는 이성을 주었다고 보았다.그리고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의 인신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소유권을 가졌으 며, 각자 자신의 신체를 이용한 노동의 결과물은 그 자신 의 소유다는 것이다. 자연상태에서 어떤 사람이 향유 하여 소비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적은 양에 불과했으며, 이웃에 피해가 될 정도로 소유권을 취득하는 것은 불가 능했고, 혹시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면 자연법에 위반되 며 처벌을 받게 되었다 고 그는 보았다.
 로크가 바라본 자연상태 초기는 자유스럽고 평화스러 웠다. 그런데 인간이 언젠가 금, 은, 다이아몬드와 같은 상하지 않는 귀중품에 가치를 부여해 이를 교환수단인 화폐로 사용하게 되면서 사정은 변했다는 것이다.즉, 화 폐는 사람들에게 재산을 지속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 회를 제공했으나, 반면에 불평등한 사유재산제를 초래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또한, 세월이 흘러 자연상태 후기 에는 사유재산이 축적되고 한정된 토지와 자본에 대한 싸움이 치열해지면서 사람들 간 갈등이 증폭되었기에, 화폐경제가 지배한 사회는 이제 더 이상 사유재산을 보 장할 국가의 설립 없이는 지탱할 수 없게 되었다고 로크 는 인식했다.
 로크는 사람들이 국가의 설립을 통해 보존하려는 대상 을 총칭하여 소유물(property)이라는 용어로 표현했으며, 이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를 생명 자유 재산(lives, liberties and estates)으로 이해했다. 그는 국가설립의 목 적을 사람들의 소유물 보존에서 찾았다. 자연상태에서는 유감스럽게도 확립된 법률의 부재, 무사공평한 재판관의 부재, 판결을 이행하는 권력의 결여로 사람들의 소유물 을 보장할 수 없었다는 것이 로크의 관찰결과이었다. 
 
국가권력
 로크는 "일정한 수의 사람들이 서로 결합하여 하나의 사회를 형성하고 각자 모두 자연법의 집행권을 포기하여 그것을 공공체에 양도하는 곳에서 비로소 정치사회가 존재" 한다고 보았다. 구체적으로 "입법부에 법률제정권을 위임하고, 집행부에 조력을 제공하며, 침해를 보상해 줄 권위를 가진 재판관을 지상에 설정함으로써 비로소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국가의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는 것이다. 그는 재판관은 입법부이거나 그것이 임명한 위정자 라고 표현함으로써 입법부와 집행부가 정부를 구 성하는 국가권력의 이권분립(二權分立)을 구상했다. 로크 는 절대군주는 혼자서 입법권과 집행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상정되며...일부 사람들에 의해서 세계의 유 일한 지배형태로 간주되는 절대군주제는 시민사회와 양 립이 불가능하다 는 점을 분명히 했다.
 로크는 사람들이 사회를 결성하게 된 목적은 소유물 을 안전하게 향유하는 것이며,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 이 확립된 법률 이라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그는 모든 국가의 기본은 입법권을 확립하는 일 이라 지적하면서 입법부에게 국가의 최고 권력 이라는 지위를 부여했다. 그런데 입법부가 제정하는 법률은 단기간에 만들어질 수 있기에 입법부는 상시적으로 열려있을 필요가 없으나, 제 정된 유효한 법의 집행을 담당하는 집행부는 상시적일 필 요가 있다는 것이 로크의 생각이었다. 외국과 전쟁 및 강 화, 동맹 및 교섭을 하는 연합권(federative power)과 법률 의 지시가 없이도, 또는 법률을 위반하면서까지 공공선을 위해서 재량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이른바 대권(大權)은 집행권에 위임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저항권
 로크는 인간이 자기보존을 위해 자연상태에서 가졌던 권리를 자기 의지에 의해 국가권력에 위임했다고 보았 다. 이러한 위임은 신탁을 한 인민과 신탁을 받은 국가권 력 사이에 형성된 신뢰관계에 의해 유지되는데, 이 신뢰 관계가 무너지면 원래 주인인 인민이 국가권력을 소환 (면직)하거나 변경시킬 수 있다는 것이 로크의 저항권(혁 명권) 사상이다.
 예컨대, 인민이 임명하지 않은 권력이 법률을 제정하면 입법부의 변경이 야기될 수 있으며, 최고의 집행권을 가 진 자(즉, 왕)가 자신의 임무를 게을리하고 방기함으로써 제정된 법률이 더 이상 집행될 수 없을 때 정부는 해체될 수 있고, 입법부와 군주 중 어느 한편이 인민의 신탁에 반 해서 행동하여도 정부는 해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로크의 영향
국에서 발생한 명예혁명(1688)과 권리장전(1689)은 로 크의 정치사상을 승인한 셈이었다. 그의 사상은 18세기 북미와 프랑스에 급속히 전파되었다. 미국 독립선언서(17 76)의 서문은 로크 정치이론의 핵심을 담았다. 그의 이론 은 프랑스 혁명에도 강하게 향을 미쳤으며, 이는 1789 년 프랑스 국민의회의 헌법초안 과정에서 잘 드러났다.
 로크는 국 경험주의 철학의 아버지 , 자유주의적 정치이론의 창시자 , 또는 위대한 민주주의 이론가 라고 다방면에서 칭송을 받는다. 그 중 그가 현대 민주주의에 미친 향이 가장 돋보인다.그가 역설한 국민주권, 입헌 주의, 대의정부, 권력분립, 국가권력의 제한 및 저항권, 법치주의, 법 앞의 평등, 다수결원칙, 사유재산의 보호와 복리 추구, 적법성의 기초로서 민주적 동의와 신뢰 등이 바로 그 예이다.
 
한종수 교수(정치외교학과) 
 
<필자 소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독일 튀빙겐대학교 정 치학 석사 박사. 현재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저서로 『유럽연합(EU)과 한국』,『현대정치학의 이해 』, 『정치학개론』, 『현대유럽정치』(공저), 『국제기 구와 한국외교』(공저)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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