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란에는 원대신문사의 연속기획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와 글쓰기센터의 연속기획 <세계고전강좌> 원고를 번갈아 싣습니다. 특히 <우리시대 사유의 지평과 미래>에는 2012년 1학기부터 새로 개설된 '글로벌인문학' 강좌의 내용도 게재합니다. 국내외 여러 석학들이 함께 참여하는 이들 연속기획을 통해 인간 이해와 사유의 깊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1.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위상
 현대인은 정보화사회 또는 기술지배사회라고 불리어지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현대인은 너무나 단편적으로 생각하고 기계처럼 행동한다. 그래서 현대인은 단편화되고 자기 소외된 나머지 비인간화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생태학적 위기, 지구온난화, 자원고갈, 배금주의, 양극화현상, 개인주의 발호 등은 바로 비인간화의 결과다. 현대인은 대체로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으로 되고 있고 공허감에 빠져 있다. 대중매체는 소비경향과 대중화현상을 촉진시켜 대중들이 황금이라는 유령의 노예로 전락되는 것을 더욱 조장한다. 그 결과 도처에 알콜 및 마약중독자, 정신질환자가 속출하고 짐승보다 못한 짓을 하는 성범죄가 증가일로에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기반성을 하도록 되어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올바른 자기반성을 통하여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다면 인간성 상실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의 비인간화원인을 규명하고 그 대안을 모색해보아야 할 것이다.
 
 2. 기술이 지배하는 사회의 비인간화
 과학기술은 지난 2세기 동안 전례 없는 발전을 해왔으며, 인류에게 많은 혜택을 가져다주었다. 공중위생, 질병퇴치, 영농기술의 발전에 의한 식량증산, 통신 및 교통의 편리 등은 과학기술의 순기능이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기계기술의 우수성에 도취한 나머지 자신의 행동마저도 기계의 작동과 일치시키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인격, 즉 개성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지신의 인간성도 쉽게 상실하게 된다. 인간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기계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기계의 요구에 인간이 복종하게 되고, 자기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기술지배이다. 기술지배는 인간의 본질인 생각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만들고, 인간도 물건처럼 그때그때의 이용성과 효용가치에 따라서 계량적으로 취급한다. 
 기계의 자동화와 신속화는 인간으로 하여금 무사려(無思慮)한 자로 만든다. 그래서 인간은 그이 본질인 자기반성과 비판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또 계량화와 물량화는 모든 사물을 교환가치로 가늠하는 의식을 인간에게 심어 준다. 그래서 인간도 필요에 따라 물건 가치처럼 대치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며 사물화(事物化)된다. 그 결과 물질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상업주의와 결탁된 과학기술과 정보화는 개인의 개성이나 고유성을 무시하며 질보다는 양적 팽창만을 중시하며 노동의 신성성을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며 물질만능주의와 배금주의를 조장한다.
 인간은 이제 잠시도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기술숭배는 전통적 도덕과 종교의 가치를 대신하면서 인간을 기계의 노예로 귀착시킨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소외(疎外)를 느끼게 되고 비도덕적으로 되며 인간의 정서는 황폐화되고 오로지 효용에 의거해서 살아갈 뿐이다. 기술의 발전의 역기능은 중요한 자원을 급격하게 소모시키고 생태학적 위기를 초래함으로써 지구파멸의 위기에 봉착하게 만들고 있다.
 
 3. 정보화 사회에서 인간의 비인간화
 오늘날 사람들은 시시각각으로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정보의 지령에 따라 일을 하도록 되어 있다. 컴퓨터가 사람이 직접 할 수 없는 일은 정확히 해내고 특히 엄청난 속도로 계산을 한다든가 놀라운 기억력을 발휘하는 등 순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컴퓨터는 자율적으로 인격적 가치를 창조하거나 이를 실현시키지는 못한다. 디지털 언어는 인간의 자연언어를 전적으로 대체할 수 없을 뿐더러 인간의 복잡하고 미묘한 삶의 의미를 기호화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기계를 지배할 수는 있어도 기계의 지배를 받거나 자기의 주체적인 책임의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디지털 언어의 사용자는 컴퓨터의 정보처리의 능력과 그 기술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자율적인 가치판단을 소홀히 하고 있다.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다보면 사람들은 컴퓨터의 지령에만 따르게 되고 스스로 생각하고 결단을 내리는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스스로 사고를 하지 않게 될 위험이 있다. 컴퓨터 작동에 익숙한 사람들은 화면에 나타나고 있는 컴퓨터 언어에만 관심을 가지며 인간과 직접 만나서 인간의 풍부한 표정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려고 하지 않으며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개인적이 되며. 인격적인 만남을 잃게 된다. 정보의 양(量)이 풍부하고 정보의 입수나 전달이 신속하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항상 최선의 사고판단을 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보기술의 윤리문제들의 해소방안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
 
 ① 책임의 문제 : 개인들이나 단체들은 중요한 결정을 정보기술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므로 정보를 다루는 사람은 자신에 의해 개발된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의 작용 및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책임의식을 심어 줄 수 있는 윤리교육이 요청된다.
 
 ② 윤리적 회의주의의 극복 : 사람들은 갑자기 많은 상이한 문화적·사회적 정보를 접하게 되면 당연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던 가치관에 의문을 가지게 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 가치상대주의에 빠지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변하는 상대적 가치(평가)와 불변하는 절대가치를 엄격히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인격가치는 절대 불변하는 가치이며 어떤 경우에도 상대적 가치로 전락될 수 없는 가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치상대주의가 야기하는 윤리적 회의주의를 극복할 수 있어야한다. 
 
 ③ 정보의 조작과 날조의 문제 : 거짓과 참의 구분이 불분명해진다. 정보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이 정보를 날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할 것이다.
 
 ④ 정보의 상업화의 문제 : 정보가 상업화되고, 시장기능에만 맡기게 되면 정보는 편향(偏向)성을 띠게 되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샴 법칙이 성립하게 되고 올바른 정보의 흐름이 경색되고 종내에는 정보의 불신이 초래되고 소통이 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적 소유권의 보호와 정보의 공유(共有)문제의 적절한 조화를 강구해야 할 것이다.
 
 ⑤ 사생활 보호의 문제 : 개인의 모든 정보가 익명의 누군가에 의해 샅샅이 관찰 당할 수 있다. 따라서 제도적으로 개인의 사생활이 보호될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제는 해킹의 방지문제와 관련되며, 법적 제재는 기술적으로 한계가 있음으로 올바른 가치교육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⑥ 불건전한 정보의 유통의 문제 : 반윤리적인 정보가, 예컨대 폭력과 마약과 성문란에 대한 정보가 각종 메디아를 통해 여과 없이 쉽게 전달되고 있으며. 인간성을 파멸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인간성을 파괴하는 불건전한 정보유통을 근절시켜야 할 것이다.
 
 ⑦ 정보 분배의  불평등의 문제 : 정보를 빨리 얻을 수 있고 주어진 정보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강자가 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약자가 될 것이다. 정보배분의 불평등 문제는 한 나라 안에서 개인과 개인 간에, 집단과 집단 간에도 사회정의구현과 상관될 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가 간에도 중요한 사회정의의 문제가 된다.
 
 4. 현대사회의 비인간화를 극복하는 길
 정보통신매체의 발달로 말미암아 정보의 양과 그 신속성은 상상을 초월 할 만큼  엄청나지만, 우리 사회는 자기소외로 말미암아 의사소통의 단절되고 불신과 사회해체현상이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먼저 소통의 선결요건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소통을 원활히 하려면 정보를 주고받는 당사자들이 상호신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제공자는 이기적 자기 합리화 또는 자기정당화를 획책하거나 타자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타자에게 주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신뢰를 주고받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소통의 전제조건을 고려해 볼 수 있고 이를 충족시켜야 할 것이다.
 
 ①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소통하려는 사람이 그의 진실한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소통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자신을 전적으로 개방하면서 동시에 상대방의 개방을 촉구하는 것은 소통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② 타자를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남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존중하여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나와 생각을 달리하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아량을 가져야 하며, 자기중심적으로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고 남을 배격하지 마라야 하며, 다른 사람을 수용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③ 상대와 나를 구분하는 2분법적 사고를 내 버리는 것이다.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나와 너를 구별하거나 차별하지 않는 소위 불이(不二)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너 없는 내가 없고, 내가 없는 네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가 되기 위해 서로 존중하면 소통할 수 있다. 
 
 ④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남이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성경). 또 "네가 싫어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마라."(논어)는 황금률은 처지를 바꾸어 생각한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가리키는 말로서 바로 소통의 원리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이를 지킬 때 우리는 서로 소통한다.
 우리는 앞에서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인간성을 상실하고 비인간화 되는 원인을 인간의 왜곡된 기술의식에 의한 기술지배와 정보화 사회의 소통의 부재와 무사려증(無思慮症)에서 규명해 보았다. 결론적으로 현대사회의 비인간화극복의 길은 우리가 항상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사회윤리의 근본원리인 공동선, 연대성, 정의를 구현하는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진교훈(서울대 명예교수)
 
  <필자소개>
 · 경희대 교수, 중앙대 철학과 교수,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 역임.
 · 서울대 중앙도서관 관장, 한국철학회부회장, 한국생명윤리학회 회장, 한국 철학적 인간학회 회장 역임. 
 ·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저서로『철학적 인간학(I)』,『철학적 인간학(II)』,『 환경윤리』,『현대사회윤리연구』,『의학적 인간학』등과 공저 60권, 번역서 7권, 그리고 230편의 논문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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