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한 손글씨로 적힌 편지를 읽고 있노라면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집니다. 친근함, 뭐 이런 느낌입니다. 한글 문서 '바탕체'에서 찾아볼 수 없는 느낌이죠. 21세기 감성시대가 도래하고 손글씨체는 재조명 받고 있습니다. 시대에 발맞춰 캘리그래피(Calligraphy)나 POP 등 예쁜 손 글씨를 배우려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죠. 글자도 디자인이 되는 시대입니다. 이번 '현장을 간다'는 '아름답게 쓰다'라는 의미를 가진 캘리그래피를 배워보고자, 시민교양강좌의 일환으로 캘리그래피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모현도서관에 다녀왔습니다.
 
 

 

 
 '아름다운 글씨체'를 배우기 위해 지난 3일 익산시 모현동에 위치한 익산시립모현도서관에 다녀왔다. 캘리그래피는 야간수업이기 때문에 직장인들이 주로 찾는다. 궂은 날씨에도 캘리그래피를 배우기 위해 대다수 수강생들이 참석했다. 강좌에서 사용하는 도구는 붓이다. 기자에게 붓 5자루와 구면지 몇 장이 주어졌다. 구면지는 양면의 질감이 달랐다. 한 면은 매끄러운 반면 다른 면은 거칠었다. 글씨는 매끄러운 면에 쓴다. 
 캘리그래피는 느낌이 가장 중요하다. 개인의 감정을 글자에 투영하는 과정인 것이다. 필법을 달리하면 같은 단어라도 전해지는 느낌이 다르다. 강하게 그어진 획은 거친 느낌을 남기는 반면 둥글게 말아 올린 획은 부드럽다. 박경자 교수(전주비전대 평생교육원)는 "글자에 어떤 느낌을 담을지 생각하고 써야한다"며 붓을 들었다. 이윽고 다양한 필법으로 '삶'을 적었다. 한 번은 거칠게, 한번은 부드럽게 적혔다. 그리고 분명 느낌이 달랐다.
 박 교수는 "사람에 따라 삶은 고단함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평온함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에게는 삶이 즐거움일 수도 있다"며 "멋스러운 글씨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의 느낌을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캘리그래피는 느낌의 표현이 중요한 만큼 도구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캘리그래피라고 하면 붓이나 펜촉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실제 사용되는 도구는 무궁무진하다. 이쑤시개나 나뭇가지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들은 거친 느낌을 줄 때 주로 사용하는 재료라고 한다. 
 본격적으로 캘리그래피를 배우기 위해 붓을 쥐었다. 붓글씨는 자연스러움을 위해 한두 번의 획으로 글자를 완성한다. 붓 끝이 종이 위에서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자음과 모음 사이에 불필요한 선이 그려지기 마련이다. 이때 불필요한 선이 최대한 얇게 그어질 수 있도록 힘을 빼는 것이 중요하다. 강조할 부분은 굵게 표현하고 불필요한 부분은 얇게 처리하는 것이 캘리그래피의 기초다. 박 교수는 기자에게 물결그리기를 제안했다. 위·아래 볼록하게 튀어나온 부분에서 힘을 주고, 위·아래를 이어주는 선은 힘을 빼고 최대한 얇게 긋는 것이다. 
 물결그리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볼펜을 쥐고 무작정 꾹꾹 눌러쓰던 버릇이 오른손에 배어있었고, 간만에 잡아보는 붓은 어색했다. 좀처럼 유연하게 움직이지 못하는 오른손이 애꿎었다. 물결그리기로 구면지 몇 장을 채우고서야 조금 익숙해질 수 있었다. 곧바로 단어쓰기에 돌입했다. 막상 단어를 쓰려니 '진도가 빠르다'는 느낌도 들었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초급과정 수강생 중에는 단어가 부담스러워 자음·모음부터 시작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물론 선긋기부터 시작해 자음·모음으로 뻗어가는 교육방식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권장하는 방법은 아니다"며 "문구의 테마나 분위기를 생각하면서 자유롭게 써나가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몇몇 사람들에게는 캘리
가 낯선 개념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캘리그래피는 이미 일상 속에 자리잡고 있다. 메뉴판부터 시작해서 달력, 제품상표, 영화 로고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지금도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화이트진로의 '참이슬' 로고 또한 캘리그래피의 대표적인 사례다.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직업선택의 폭도 한층 넓어졌다. SNS를 활용해 개인 사업을 벌이거나 과거 등한시됐던 만화가들은 웹툰 작가로 다시 태어났다. 개성은 단순히 '존중받아야할 개념'을 넘어서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승격됐다.
 하지만 대학생에게 개성은 버겁게 다가온다. 서울시에서 지난달 28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9급 공무원 경쟁률은 103:1인 것으로 밝혀졌다. 현대 대학생들의 진로는 컴퓨터 바탕체만큼이나 획일적이다. 
 퇴계이황은 "글씨의 법은 마음의 법을 따라 나오는 것이니, 글씨를 쓸 때 유명한 글씨만을 따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캘리그래피는 곧 개성의 표현이다. 그것은 '대학생다움'이기도 하다. 
 김정철 기자 dokr9318@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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