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득의 어려움

 전국시대 사람 한비는 한나라 귀족 출신으로 법가의 사상을 집대성한 인물이다. 말을 더듬어 유세에 서툴렀지만 글 쓰는 솜씨가 뛰어나 ≪세난(說難)≫ 등의 글로 후대에 영향을 미쳤다. 한비는 객관적이고 냉정한 이해관계에 따라 인간을 분석했고, 이를 근거로 유형별 설득법을 주창했다. 이천이백 년이 지난 현대에도 그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한비는 설득의 세 가지 유형을 비판한다. 가장 많은 유형은 '지식을 앞세우는 것'이다. 지식의 권위를 인용하여 주장을 펴는 부류 중에는 잘난 체하는 이들이 많다. 지식을 앞세우다 보면 진정성이 부족해 보인다. 또한 상대가 결정적인 자료를 제시할 경우, 설득에 실패한다.
 두 번째는 '변설로 뜻을 밝히는 것'이다. 논리로 무장한 글은 상대의 약점을 효과적으로 노출시켜서 자신의 주장을 우위에 서게 한다. 그러나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변설은 극단적 사례를 일반화시키기도 한다.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 변설이 스스로를 논리의 함정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변설의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하고 싶은 말을 자유자재로 다 말하는 유형'이다. 이 유형은 상대를 울리고 웃기며 자신의 주장을 전달할 수 있는 의사소통의 고급 단계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때론 진실보다 진심인 경우가 많다. 세상의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들어놓기 보다 경청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상대의 마음을 연다.
 지식을 앞세우는 사람은 권위로 억눌리고, 논리를 앞세우는 이는 자가당착에 빠질 위험이 있고, 말 잘하는 이에겐 믿음을 주기 어렵다. 한비는 설득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상대방의 심정을 통찰하여 그가 바라는 것에 맞추어 납득시키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른바 관심법(觀心法)의 경지다.
 
 ▲ 유형에 따른 설득법
 한비는 설득의 방법이 사람의 유형별로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분류에 따르면 사람(군주)는 첫째 명성을 얻고자 하는 자, 둘째 실리를 얻고자 하는 자, 셋째 겉으로는 명성을 속으로는 실리를 주장하는 자로 구분된다. 한비의 유형별 설득법은 현대에 들어 스카프 유형법(SCAF)으로 체계화 되었다. 스카프 유형법은 사람의 행동에 따른 설득법을 네 가지로 나누어 대처법을 제시한다. 첫째, 표출형(Speaker)은 자기표현이 활달하며 과시욕이 강한 스타일이다. 이 유형은 감성 설득에 약한 경향을 보인다. 둘째, 우호형(Carer)은 수긍을 잘 해주고 타인에게 감정이입을 잘 한다. 우호형에겐 호기심을 느낄 수 있는 제안을 할 필요가 있다. 셋째, 성취형(Achiever)은 자기 주장이 강하고 일에 대한 욕심이 많다. 따라서 경쟁심과 상대적 이익에 약하다. 넷째, 분석형(Finder)은 디테일한 데이터를 중시한다. 분석형에게는 감정호소 따윈 통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대안과 수치화된 자료를 근거로 설득해야 한다.
 문제는 한비의 설득법이나 스카프 진단법으로도 사람은 쉽게 판별되거나 설득되지 않는 데 있다. 설득의 달인 한비도 그 자신은 진나라에서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박태건 (글쓰기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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