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은 5.18 민주항쟁이 34년을 맞는 날이었습니다. 이번 원대신문은 이를 기념하고 있는 5.18 자유공원에 다녀왔습니다.
   작전명 '화려한 휴가', 많은 사람들이 영화제목으로 알고 있는 '화려한 휴가'는  5·18 광주 민주항쟁 당시 계엄군의 비공식적인 작전명으로 추정된다. 
 5.18 광주 민주항쟁은 광주에서 일어난 10일 동안의 민주항쟁이다. 전라남도 및 광주 시민들은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퇴진, 김대중 석방 등을 요구하여 민주항쟁을 벌였고 전두환 정권은 민주항쟁을 저지하기 위해 광주에 군부대를 보낸다. 사망자는 606명. 엄청난 희생자를 낸 이 민주 항쟁은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비극으로 남아있다.
 기자는 지난 10일 광주에 위치한 5.18 자유공원을 다녀왔다. 광주에서 518번 버스를 타면 5.18 민주항쟁과 관련된 장소들을 속속들이 갈 수 있다. 5.18 자유공원 또한 518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자유공원에 도착하니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다. 5.18 자유공원에는 해설사가 상주하고 있다. 기자는 해설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해설사는 기자에게 5.18 민주화항쟁에 대해 아느냐고 물어봤다. 
 기자는 수능선택 과목으로 근현대사를 선택했다.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기자는 책으로 배웠던 5.18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해설사에게 들은 1980년 5월의 광주는 더 처절했고 잔혹했다.
 5.18 자유공원 또한 그 처절했던 역사의 한 페이지다. 5.18자유공원은 5.18 당시 군부대였던 상무대, 법정·영창 등을 약 100m 이전해 그대로 복원해 놓은 곳이다.
 이곳 영창에서 광주 시민들 약 3천 500명 정도가 구금생활을 한다. 구금생활을 하는 도중에 구타와 기합, 그리고 고문은 일상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80년 8월 군부대 내에 광주시민재판을 위한 법정이 들어선다. 군대 내에 위치한 법정은 모든 재판을 단심으로 해결했다. 판결이 나면 항소 조차 할 수 없는 인권 유린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슬픈 역사를 가진 곳이지만 5.18 자유공원이라 이름 붙여진 이유는 그 당시 아팠던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는 이런 역사를 반복하지 말고 자유를 누리자는 뜻이라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모래 위에 머리를 박고 있는 사람들의 모형이었다. 현재는 잔디가 깔려 있지만 그 당시에는 잔디가 없이 모래와 자갈만이 깔려있었다. 머리를 박고 있는 사람 모형뿐만 아니라 군용 차에 수송되는 시민들의 모습도 생생하게 표현돼 있었다. 
 기자는 헌병대 본부사무실에 들어갔다. 헌병대 본부사무실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였으며 끌려온 시민들을 조사했던 곳이다. 이곳 또한 그 당시 본부사무실의 내부를 그대로 재현해놨는데 곤봉을 든 군인 앞에서 팔이 결박된 채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헌병대 식당은 취조실로 사용 했던 곳인데 물고문을 받는 모습을 재현해 놨다. 각 건물에 들어갈 때 마다 상황에 대한 설명이 나왔는데 고문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신음소리도 같이 나왔다. 소름 끼치면서 무서운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이 교차했다.
 기자는 다음으로 영창을 구경했다. 영창은 6개의 방이 있었고 부채꼴로 돼있다. 방 하나 당 적정인원은 30명이었지만 당시에는 120~150명을 수용했다고 한다. 수감자 모두는 하루 16시간씩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어야 했다. 부채꼴로 펼쳐진 모양의 방 앞에는 감시헌병이 있었는데 가부좌가 흐트러지는 수감자가 있으면 몽둥이질을 했다고 한다. 
 다음으로 법정에 들어갔다. 이 법정에서는 80년 8월 만들어진 후 10월 하순부터 421명에 대한 약식재판이 진행됐다. 당시의 법정을 그대로 재현에 놓은 내부에는 재판관 5명이 앉아 있었으며 죄수복을 입은 채 재판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마치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 같았다. 법정 뒤에는 그 당시 실제로 재판을 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태극기 아래 행해지는 말도 안 되는 모든 일들이 불과 30여년 전의 일이라는 것 또한 믿기 힘든 현실이었다.   
 자유공원 내에는 5.18 민주항쟁 당시 찍혔던 사진들을 전시해 놨다. 구타를 당하고 있는 시민들, 항쟁을 위해 주먹밥을 만드는 부녀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자유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렇게 자유공원을 나오니 바로 옆에서 화목하게 캐치볼을 하고 있는 부자가 눈에 띄었다. '이런 소소한 행복은 5.18민주화 운동의 희생에서 비롯된 민주화로부터, 정의로부터 나오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5.18 민주화 운동이 34주년을 맞이한다. 우리에게 숨 쉬는 자유를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자.
 
 신수연 기자 shinsud@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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