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불교역사박물관의 전시장 내부 모습
   지난 16일, 기자는 한 중 사생서화 교류전<한원교유(翰苑交遊)> 개막식에 참석했다. 이번 전시회는 지난 6월 중국 절강대학교 서계미술관에서 개최됐던 교류전의 연장선으로 우리대학 서예문화예술학과가 주관했다.
   우리대학의 서예문화예술학과는 2012년부터 중국 절강대학교와 협약을 맺고 2년 간 활발한 교류를 해왔다. 현재 서예문화예술학과는 폐과가 결정됐지만 교수와 학생들은 '학과가 없어져도 예술은 계속된다'는 신념으로 전시회 준비를 해왔다. 작품 수에 비해 전시관의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원불교역사박물관과 우리대학 숭산기념관 두 곳에서 전시가 이뤄졌다. 개막식은 원불교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회는 서예 분야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국제적인 규모의 교류전으로 김효명 교수, 임여 교수 등 중국 작가들도 참여했다. 따라서 교류전의 의의, 귀빈소개, 축사 등의 진행이 한국어와 중국어로 이뤄지는 등 여느 개막식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개인 및 단체 퍼포먼스 또한 눈길을 끌었다. 첫 번째 퍼포먼스는 전시에 참여한 교수들과 강사들의 현장 휘호였다. 휘호란 붓을 휘두른다는 뜻이며 붓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말한다. 사람마다 글씨체가 다르듯 그들의 휘호도 다를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글씨체라기 보단 '선'이었다. 가늘고 유연하게 붓을 놀려 가벼운 느낌을 주는 휘호가 있는 반면 굵직하고 거친 선으로 강한 느낌을 주는 휘호도 있었다. 작가들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동안 관람객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 작가가 직접 작품을 만들어 내는 순간을 관람하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이고 작가들의 휘호가 시작되는 순간 엄숙함이 감돌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퍼포먼스는 교수들과 강사들 그리고 대학원생들의 단체 현장 휘호였다. 세워져있는 넓은 천에 각자의 서예를 조화롭게 표현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그런데 천이 먹을 흡수하지 못하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작가들은 그에 당황하지 않고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먹이 흡수되지 않아 휘호는 회색으로 흐리게 이뤄졌지만 선의 느낌으로 각자의 개성은 확연히 드러났다. 특히 여태명 교수(서예문화예술학과)는 흡수되지 않고 흘러내리는 먹을 줄기 삼아 꽃을 그렸고 다른 작가들은 물감을 물에 풀지 않은 채 점을찍어 꽃잎을 표현했다. 단체 휘호가 개인 휘호에 비해 볼거리가 많았던 이유 중 하나이다. 또한 개인 휘호에는 없었던 한글 서예를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넓은 면이 자유롭게 주어지다보니 작가들이 표현한 선의 느낌을 보다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개막식이 끝난 후 자유롭게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기자에게 보이는 것은 하얀 종이 위의 검은 선 몇 개 였다. 그만큼 서예에 무지했다. 그중 서예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가지런함과 엄숙함이었다. 그렇다보니 여러 작가의 작품을 보아도 깊은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게다가 작품 대부분이 한자였기 때문에 작품의 내용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개막식에 참석했던 선주선 교수(서예문화예술학과)가 관람을 도와줬다. 기자는 서예 작품들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 지 질문했지만 이해할수 없었다. 서예는 감상하는 방법이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서예는 감상하는 방법이 없다. 또한 절대 아무런 노력 없이는 볼 수 없다. 한문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그 내용을 알 수 없고 한자를 알더라도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예를 감상하려면 우선 서예를 공부해야 한다. 서적을 통한 지식 습득으로는 부족하다. 직접 붓을 들고 써봐야 한다. 그러한 내공이 수십 년 쌓이면 비로소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이때 말하는 감상이란 필체와 글자의 구성 등 외적인 것과 작가의 생각과 성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내적인 것이 포함된다. 그 중에서도 작가의 좋은 성품은 좋은 예술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되어 작품의 가치를 상승시킨다. 따라서 좋은 의미를 갖는 글은 서예의 가치와 비례한다. 그러므로 서예에는 死(죽을 사)와 같은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글자는 쓸 수 없다.
   붓을 잡고 직접 서예를 공부해 본 사람만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문장을 떠오르게 한다. 선주선 교수는 작품에 깊게 감명을 받아 3일 동안 그 작품 앞을 떠나지 않았던 어떤 한 교수의 일화를 들려줬다. 그 교수가 깊은 감명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가 그 분야에 대한 내공을 깊게 쌓아왔기 때문이다.
   선주선 교수의 작품 설명이 시작됐다. 그 때 기자의 눈에 띈 작품이 있었다. 송수영 작가의 아 라는 작품이다. 한글과 한문이 공존했는데 아 라고 크게 한글이 쓰였고 비교적 좁은 공간에 한문이 쓰였다. 해석을 모르고 작품을 봤을 땐 '아'를 뜻이 없는 단순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한문은 '이 글자가 품고 있는 뜻은 대체 감탄하는 것인가 한탄하는 것인가. 이것은 곧 너로 말미암아 구별된다'로 해석이 됐다. 의미를 안 후 이 작품이 감상자가 가진 감정의 깊이에 비례하게 의미의무게도 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글자와 그림이 어울려 구성돼 있는 작품들, 글자로만 이루어진 작품들 중 도장만 찍혀있는 작품이 있었다. 이 작품은 인주에 주목을 해야 한다. 인주는 주사 라는 빨간 흙으로 만들어지는데 금보다 값이 나갈 정도로 가치가 크다. 우리가 보기엔 단순해 보이는이 작품도 많은 내공이 쌓인 사람의 눈에는 다르게 보인다고 했다.
   작품 관람이 끝날 때 즈음 전시장 출입구로 갔다. 그곳에는 전시장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 있었다. 2층에서부터 매달려 있는 두 작품 중 하나는 선주선 교수의 작품이다. 그 작품은 폐과가 결정된 우리대학의 서예문화 예술학과를 반영하고 있다. 작품은 기울어지려는 낡은 집이더라도 그 기초는 견고하다 는 뜻을 담고 있다. 선주선 교수는 "서예문화예술학과의 폐과가 결정돼도 서예는 크고 깊은 뿌리가 있기 때문에 끄떡없다"며 "서예의 본질은 살아있다 고 해석해줬다. 또한 예쁜 꽃의 꽃잎이 다 떨어져가더라도 그 속에 남아있는 씨앗은 향기를 품고 있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서예는 다른 분야의 예술에 비해 전통적인 이미지가 강하고 서예에서 한글보다 글자마다 뜻을 품고 있는 한자를 더 많이 다룬다. 때문에 사람들은 서예에 어려움을 느끼고 쉽게 다가가질 못한다. 하지만 서예도 대중적인 이해와 관심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작가들의 노력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비록 이번 전시회는 끝이 났지만 앞으로 서예와 관련한 전시회가 열리면 한 번쯤은 방문해 보는 것이 어떨까?
 
조윤지 수습기자 duftlal14@w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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