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기자는 평생교육원 '바리스타 자격증반' 취재를 하며 카페에서 일했던 작년 여름이 떠올랐다.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그려진 내용은 환상이었다. 다 마신 커피가 맛이 없다며 다시 만들어달라는 진상 손님과 심한 악취에 코를 막고 하던 커피 머신 청소, 탈의실 구석에서 쭈그려 먹던 식사가 현실이었다. 하지만 수업을 들으며 걱정이 기우였다는 걸을 깨달았다. 
 밤 10시, 60주년 기념관 5층 502강의실에서 열린 바리스타 자격증 수업은 평생교육원 내에서도 인기 강좌로 꼽힌다. 바리스타 자격증반은 대학생, 주부, 직장인과 같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돼있다. 오후 7시에 시작되는 수업이었지만 직장인이 많아서 10여 분이 더 지나고 나서야 모든 수강생이 모였다. 
 이날 수업은 '커피 추출법에 따른 맛의 변화'를 주제로 진행됐다. 책상 위에는 평소에 알던 커피 머신이 아닌 생소한 기구들이 놓여 있었다. 본격적인 수업에 앞서 이전 수업에서 다뤘던 오래된 원두와 신선한 원두 구분법에 대해 복습했다. 신선한 원두는 맛있는 커피를 만들 확률이 높지만 오래된 원두는 그 반대였다. 이렇듯 커피의 맛은 원두의 신선도가 좌우한다. 하지만 바리스타의 능력에 따라 오래된 원두커피가 맛있는 커피가 될 수 있다는 것 역시 알 수 있었다. 
 맛있는 커피를 만드려면 날씨, 가공 온도, 가압 조절(힘 조절)이 중요했고 그 외에도 많은 변수가 존재했다. 커피 한 잔을 만들기 위해서는 10g의 원두, 90℃의 가공 온도, 적당한 힘 조절이 필요했다. 그보다 많은 양을 만드려면 복잡한 계산법이 적용됐다. 커피의 맛은 정해져 있지 않다. 같은 조건의 원두도 마시는 사람의 취향과 추출법에 따라 다른 커피가 되는 것이다.   
 강사는 수업 재료로 사용할 원두를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수업은 1조와 2조로 나뉘어 진행됐다. 수업에는 화열로 직접 커피를 끓여 우려내는 '체즈베(Cezve)', 열을 이용한 가압으로 원액을 추출하는 '모카포트(MokaPot)', 원두를 직접 분쇄하는 '핸드밀(Hand Mill)'과 여과지를 이용해 원액을 추출하는 '핸드 드립퍼(Hand Dripper)', 열을 이용한 진공흡입으로 원두 가루를 적시는 '사이폰(Siphon)'이 활용됐다.
 1조가 사용할 원두의 원산지는 남미에 위치한 엘살바도르다. 엘살바도르는 전 국토의 15% 정도가 커피 농장으로 조성된 국가다. 커피에 대한 조예가 깊은 나라인 만큼 커피 열매를 교배시킨 파가마라(Pacamara)와 같은 품종도 존재한다. 엘살바도르 원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즐기는 커피처럼 무난한 맛이었다. 체즈베를 이용해 추출한 커피는 쓴맛과 신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강사는 입안에 커피를 머금고 음미하라고 했다. 수강생들은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모두가 머그잔을 들고 커피를 음미하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강의실 내에는 그윽한 커피향이 가득했다. 강사는 커피의 맛을 수강생들에게 물으며 추출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사용한 커피 추출 도구 체즈베는 커피 전문가와 마니아 사이에서 '터키쉬 커피'라고 불린다. 체즈베는 기호에 따라 분쇄한 원두를 물과 함께 넣고, 불에 직접 달궈 커피를 우려내는 추출도구다. 체즈베는 쇠로 된 용기이며 문양이 각각 달라 예술품의 가치도 지닌다. 
 2조가 사용할 원두의 원산지는 아프리카에 위치한 에티오피아다. 에피오피아 역시 '커피의 나라'라고 불린다. 커피는 에티오피아 수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수출품이다. 에티오피아는 아라비카(Arabica: 세계 커피 생산량의 60~70%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커피 품종)의 원산지다. 에티오피아에는 전국적으로 약 33만 개의 소규모 자영 커피 농가가 있다고 했다. 약 1만 9,000개의 국영 농장이 있으며 약 1,200만 명의 인구가 커피 산업에 종사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들의 원두도 에티오피아산이 많다고 했다. 
 에티오피아 원두는 원액을 추출했을 때, 쓴맛과 신맛이 교차하는 독특한 향이 났다. 1조와 동일한 체즈베를 이용해 원두를 우려냈다. 강의실 안에는 이전과 다른 커피향이 가득했다. 커피를 입안에 머금고 에티오피아 원두만의 특이한 향을 음미했다. 수강생들은 담소와 함께 커피 한 잔을 즐겼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수업 방식이 아닌 커피 한 잔의 여유가 있는 수업이었다. 
 강사는 체즈베에 이어 모카포트를 꺼냈다. 모카포트는 이탈리아 가정에서 많이 쓰이는 에스프레소 추출도구다. 기구 아래쪽에 물을 채우고 가열하면 압력이 증가하며 증기가 위로 치솟아 에스프레소 원액이 추출되는 원리다. 웬만한 이탈리아 가정집에는 모카포트가 있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는 아메리카노 대신 에스프레소라고 해야한다. 아메리카노는 미국인의 입맛에 개량된 커피라고 한다. 미국의 스타벅스 창업자인 하워드 슐츠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줄서서 커피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창업 아이템을 착안했다. 아메리카노는 에스프레소에서 시작됐다.
 모카포트는 외형도 아름다웠지만 이를 통해 우려낸 커피의 맛 역시 깊었다. 모카포트를 이용해 커피를 즐기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모습이 상상됐다.  
 다음은 핸드밀과 핸드드립퍼를 이용한 추출 수업이 진행됐다. 수강생들은 책상 위에 놓인 핸드밀로 원두를 갈기 시작했다. 강의실 안은 커피 공장처럼 요란한 소리로 가득했다. 핸드밀로 원두를 분쇄하는 과정이 번거로웠지만 정성이 들어간 만큼 향이 더 깊은 듯 했다. 
 마지막으로 사이폰을 이용한 추출 수업이 진행됐다. 사이폰을 이용한 추출은 일단 눈이 즐거웠다. 과학실에서 볼법한 기구로 추출을 했다. 사이폰의 원리는 하단 유리용기에 압력이 차면 물이 위로 빨려 올라가(진공 흡입) 분쇄한 원두를 적시면서 커피를 추출하는 것이다. 젖은 커피를 도구로 섞는 요령 역시 필요했다. 
 
▲ 커피 추출 도구들, 왼쪽부터 체즈베(Cezve), 모카포트(MokaPot), 사이폰(Siphon)
 
   수강생들은 과학 시간처럼 사이폰 추출 방식을 관찰했다. 세 시간 가량 수업을 들으면서 학생들의 참여도가 높은 수업이란 걸 느꼈다. 수업은 실습 위주로 진행됐지만 틈틈이 자격증 대비 과정에 대한 강의도 있었다. 이론과 실습을 겸한 알찬 수업이었다. 
 평생교육원 김종민 강사는 "커피는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추출이 더욱 재밌는 것"이라고 말했으며 "바리스타 자격증반은 일반적인 수업과 달리 학생들의 참여가 80% 이상 이뤄진다"고 말했다.
 수강생 중 한연옥 씨(익산시 모현동, 48세)는 "집에서 자주 커피를 마시는데 깊은 맛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수강했다"며 "직접 체험해보니 수업 방식이 매우 만족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수업이 모두 끝난 후, 수강생들은 책상 위에 어질러진 추출 도구들을 정리했다. 수업 내내 강의실 안에는 커피 향기가 가득했다. 강의실을 나서며 몸에 배인 짙은 커피향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당신의 손에는 커피 한 잔이 들려 있을지 모른다. 무심코 사 먹는 커피를 남들과 다른 독특한 방식으로 마셔보는 것. 가을밤에 진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양수호 수습기자 soohoo6588@wku.ac.kr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