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 같이 일하다 보면 공유하게 되는 것이 많다. 그중 하나가 독감이다. 원대신문 기자들은 지난 겨울방학 합숙 중 지독한 감기를 공유하게 됐다. 우리는 해결방안을 찾았다. 공간을 분리할 수는 없으니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자. 그래서 지금 신문사에는 2개의 항균 스프레이가 있다. 며칠 전 오랜만에 이 스프레이를 사용할 일이 있었다. 신문사 안에 금세 약품 냄새가 찼다. 하지만 그것은 '데톨', 즉 '옥시' 제품이었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의 기자들은 "괜히 사용했네!", "진작 환기할 걸!"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불매운동이 일고 있다. 그 대상은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로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법인이다. 옥시는 생활용품 제조 및 판매업체로 세제, 의약품, 가습기 살균제 등을 취급했다. 그런데 2011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영유아, 임산부, 노인 등 많은 이들이 피해를 보거나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중 대다수는 옥시 제품 사용자였다. 옥시는 이러한 사실을 외면·은폐했고, 이에 분노한 사람들이 불매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한 가지 의문인 것은 '왜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큰 관심을 받게 된 것인가?'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세상에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은 2011년 8월 31일이다. 정부가 1차 판정에서 발표한 옥시 제품 피해자 수는 177명, 그중 사망자는 70명이었다. 하지만 실제 피해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보건시민센터 공동대표 황정화 변호사는 "정부가 (피해자) 4차 접수를 중단한 상태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가 4차 재접수를 했다. 이 수치를 전부 합치면 정부 판정을 기다리고 있는 피해자는 1천여 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중 옥시 제품 피해자는 80% 이상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2011년부터 5년간 묵묵부답이었던 옥시는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아타 사프달 대표는 "충분하고 완전한 보상안을 마련하느라 공식 입장을 발표하는 게 늦어진 것"이라며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에 전적인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검찰에서 관계자를 소환하겠다고 하니, 이제야 사과하는 것 아니냐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옥시가 비판을 받는 것에는 그들의 이중성도 포함된다. 제품에 대한 유해성을 인지하고 관련 안전 규제가 설정돼 있지 않은 한국에만 제품을 출시한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 본사는 가습기 살균제를 자국(유럽)에 출시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들은 범죄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기업 형태를 주식회사에서 유한회사로 바꾸기까지 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원인 미상의 폐 질환이 가습기 살균제와 관련이 있다고 밝힌 것이 2011년, 피해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2011년, 임신한 실험용 쥐로 실험해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파악한 것도 2011년이다. 하지만 아직 바뀐 것은 없다. 피해자들은 아직도 2011년에 멈춰있다.
   2016년 5월, 늦게나마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불매운동이 퍼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얼마나 오래갈지 의문이다.
   우리나라에는 몇 차례 보이콧 바람이 불었었다. 일본 기업 논란과 경영분쟁 '롯데', 갑질 논란 '남양유업'이 그 예다. 하지만 롯데는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등의 행사로, 남양유업은 신제품 출시 등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돌렸고 매출 복구를 넘어 증가를 기록했다.
   기업이 아무리 뛰어난 경영 전략을 세워도 결국 선택은 우리에게 주어진다. 철학자 플라톤도 "정치에 무관심하면 가장 저질스러운 세력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비윤리적인 기업에 대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무관심은 곧 자신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다.

저작권자 © 원광대학교 신문방송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