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잔한 눈빛. 그 눈빛들을 잊을 수가 없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다녀 온지 10여일이 지났지만 그 곳에서 만난 많은 아버지들의 눈빛을 말이다. 그것은 애처롭고, 참았던 눈물 방울을 이내 떨어뜨릴 듯이 보였다. 
 독립국가에 살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외국인들의 자가용 운전사, 외국인들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하며 20만원에서 5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고 있는 그들. 뙤약볕 아래에서 관광객들에게 몇 백 원어치 물건을 팔려고 굽신거리는 아버지들. 매연이 자욱한 도로에서 하루 종일 세발 자동차를 운전하는 아버지들, 공사장에서 맨살을 드러내 놓고 일하는 아버지들. 한결같이 측은하고 먹먹해 보였다. 
 인도네시아의 아버지들은 이처럼 죽도록 일하고 있는데도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차가운 시선이 많았다. 대다수가 운전사를 두고 있는 현지 교민들 사이에서 떠도는 말은 인도네시아에서 잘 지내려면 운전사 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운전사를 잘 못 만나면 아이들 학비를 위해 가불을 부탁하는 등 귀찮게 한다는 것이었다.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몇몇 교민도 유사한 말을 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죽도록 일해도 그 수입이 얼마 되지 않아 힘겹기만 한 모습. 우리나라도 과거에 그랬다. 그 시절 그 고통 속에서도 아버지들은 죽도록 일했고, 자녀들을 교육 시켰다. 그 결과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뤘다. 자식들은 어렵지 않게 취업했다. 결혼도 했고, 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걸어도 아버지 보다 수입이 많아졌다. 시련과 수차례 경제 위기를 거쳐 왔지만 아버지들이 누리지 못했던 경제적인 여유로움도 즐기고 있다.
 그런 지금의 아버지들을 마음 아프게 하는 것들이 있다. 금쪽같은 아들과 딸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자책도 해보고, 삶을 되돌아보기도 하지만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저 아들, 딸 세대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울 뿐이다. 특히 교육 현장에 있는 아버지의 마음이 더욱 그렇다. 
 인도네시아에서 보았던 수많은 아버지들의 눈빛. 어쩌면 지금의 우리나라 아버지들의 눈빛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겉은 멀쩡하지만 자녀들의 교육, 취업, 결혼 등에 대해 마음 졸이고, 아버지로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어도 어쩌지 못하는 현실에서 나오는 그 눈빛. 그래서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많은 아버지들의 눈빛을 잊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인도네시아 아버지들의 애잔한 눈빛은 희망의 눈빛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대학생들을 둔 지금의 우리나라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그것을 희망으로 바꿔왔듯이 수많은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자식들을 위해 더 나은 세상으로 바꾸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나 학생으로 머무를 것 같은 세대들 또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고, 그의 자식들을 위해 더 좋은 세상으로 바꾸려고 하는 노력이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희망을 품고, 나를 비롯해 아버지들은 자식 세대의 취업난 등 암울한 현실의 벽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부모가 될 대학생들 또한 자신과 다음 세대를 위해서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더욱더 노력할 것으로 기대한다.

허북구 교수(원예산업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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